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내가 사랑하는 ‘공연’을 장애인들은 어떻게 향유하고 있을까? 2024년의 어느 날, 문득 나에게 들었던 궁금증이었다. 그래서 인터넷 서치를 해보다, 어떤 블로그를 발견했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뮤덕이 청각장애인도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사업 일지였다. 그 당시 나는 한창 장애인의 문화 접근성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읽으면서 너무 흥미로웠고 공감도 많이 되었다.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이의 모든 글을 정주행했고, 응원의 댓글과 답글도 주고받았다.

 

그러다 2025년 봄, ‘그분’은 이제 다양한 공연에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눈여겨보던 공연 자막을 직접 경험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당일, 블로그 속 ‘그분’이자 사회적 기업 ‘오롯플래닛’의 대표 ‘최인혜’라는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친구들에게 맨날 무대 영상을 보여주며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을 영업하던 학생 뮤덕은, 이제 자막을 통해 청각장애인과 외국인까지 극장의 세계로 초대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인터뷰를 한 그녀지만, 나는 그동안의 인터뷰와는 조금 다른 부분을 묻고 싶었다. 공연을 마냥 좋아하기만 하다, 전공도 아닌 그것이 일이 된 사람은 어떻게 계속 공연을 사랑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그녀에게 공연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그걸 알기 위해, 우선 1n년 동안 공연을 좋아해 온 그녀의 ‘뮤덕’으로서의 자아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공연자막.jpg

 

 

처음 '뮤덕'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14살 때 공연을 처음 봤어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15년 전인 것 같아요. 그때 저는 지방에 살았고 부모님이 공연을 보는 걸 좋아하셔서 가끔 저를 데리고 다니셨거든요. 아마 작품이 뭔지는 잘 모르고 그냥 유명한 것들 보여주셨던 것 같은데, 그때 <엘리자벳>을 처음 봤어요. 그리고 가족들이 다 같이 충격에 빠졌어요. 너무 재밌으니까.(웃음) 그래서 청주로 내려가는 차에서 계속 노래를 유튜브로 들어보는데 엄청 심장이 뛰더라고요.

 

 

인혜 님의 삶에 가장 큰 궤적을 남긴 ‘인생작’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너무 어렵다. 솔지 님(에디터)은 뭐로 고를 건데요? 고를 수 있어요?

 

 

저는 약간 분야별로 다른데, 넘버로 치면 <렌트>고요…(고민) 아니에요. 두 개씩 골라야 할 것 같아요.

 

나한텐 하나 고르라고 그래놓고 자기는 두 개씩 고르고.(웃음)

 

그래도 <엘리자벳>이지 않을까요? 그것 때문에 공연을 좋아하게 됐고, 너무 많이 보기도 했고요. 저 혼자 유럽 여행 갔을 때도 ‘씨씨 코스’를 만들어서 혼자 다녔거든요. 씨씨 박물관 갔다가 카푸친 무덤이나 이런 코스들로요. 그래서 그 코스를 계속 노래 들으면서 혼자 다녔던 게 너무 좋은 기억이었어요.

 

 

그러면 엘리자벳이 인생작이자 입덕작이신 거잖아요. 처음 엘리자벳을 봤을 때 어떤 것 때문에 뮤지컬 자체에도 빠져들게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때는 그냥 옥주현 배우가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한 사람이 무대를 그렇게 확 채워버리는 경험이 처음이었어요. 그게 되게 오감으로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그 현장에서의 경험이 너무 강렬했어요. 아, 근데 인생작 질문에 이렇게만 대답하고 가는 거 너무 아쉽네요.

 

 

다른 거 또 있으시면 말해 주셔도 돼요!

 

<빌리 엘리어트>를 뽑을래요. 어떤 특정 배우 때문이 아니라, 극 자체로 너무 사랑하는 작품이에요. 영화는 개인 서사에 집중하는 느낌이라면, 뮤지컬은 시대상과 그룹의 연대에 대해서 엄청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재미있어요. 한창 사회복지 공부를 할 때 봤던 작품인데, 신기술 사회로 넘어가고 탈락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잘 담겨 있어요.

 

그리고 제가 1,2,3대 빌리를 보면서 뭔가 되게 마음으로 키우는 자식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저 홈커밍 데이도 봤었거든요, 2대 때 1대 빌리들이 오는 홈커밍을 진짜 피켓팅을 해서 갔었는데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게 너무 행복한 거에요. <엘리자벳>도 마찬가지로 10주년 공연 때 보러 가서 커튼콜 때 박수를 치는데, 거의 모든 시즌을 보기도 했고 너무 좋아했으니까 1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 '뮤지컬 왜 봐?'라고 묻는다면, 1n년의 경험을 담아 들려주고 싶은 답변은 무엇일까요?

 

마음속에서 설명이 잘 안되는 것을 표현해 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가치나 지향하는 점에 대해 오랜 시간 펼쳐서 설명해 주는 느낌이에요. 저는 ‘연대하다’의 의미를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처음 배웠던 것 같거든요. 제가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했으니까 그런 걸 배우잖아요. 처음엔 ‘연대’와 같은 단어들이 되게 모호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극 중에 ‘Solidarity’라는 넘버에서 경찰과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수만 가지가 교차되는 걸 보면서 ‘저것들의 교차 지점이 연대구나’라고 느꼈는데, 사실 이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죠. 그걸 보면서 뭔가 제 머릿속에 추상적인 것들이 선명하게 보여지는 게 공연인 것 같아요.

 

 

 

 

요즘 관객들의 취향이 정말 다채로워졌는데요, 인혜 님만의 ‘뮤지컬 취향’이 궁금합니다.

 

저는 망한 사랑을…(웃음) 너무 좋아하고, 그래서 행복하게 끝나면 찝찝해요. 약간 비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비극적인데 아름다운 거요. 예를 들어 <팬텀>이나 <엘리자벳>을 너무 좋아해요.

 

아예 다른 거는 뭔가 주제의식이 명확한 것들, <헤드윅>이나 <빌리 엘리어트> 같이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는 것 같은 작품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럼 요즘 공연하는 것 중에서 제일 취향인 건 무엇인가요?

 

‘저건 봐봤자 마음에 안 들 거다’라고 생각이 드는 것들은 보러 가도 역시나 별로더라고요. 공연을 오래 좋아하다 보니 그런 게 저는 좀 뚜렷해졌어요. 공연 보면서 누가 어디서 나올지 다 알겠고, 암전이었는데 저기 있을 것 같아서 쳐다보고 있으면 거기서 막 나오고 이러니까 ‘이제 그만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좀 덕질이 재미 없어졌을 때쯤 <하데스타운>을 봤었어요. 너무 충격을 받은 거에요. ‘이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어떻게 저렇게 구현을 할 생각을 했지? 내가 아직 모르는 게 되게 많구나’라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다시 덕질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작년에 봤던 공연 중에는 <원스>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뭔가 진짜 다 덜어낸, 정말 자신감 있게 딱 그 이야기만 보이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저 진짜 소름 돋는 게 아까 오면서 <원스> 노래 들으면서 왔거든요. 진짜 노래 너무 좋아요. 특히 가을이나 겨울에 들으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쓸쓸하고 싶을 때.(웃음) 공연을 보고 영화를 보니까 중간중간 서사들도 맞춰지고 좋더라고요. 요즘 텍스트가 좋은 작품들한테 점점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그러면 요즘에 인혜 님이 관람하실 공연을 선택하는 기준이 어떻게 되시나요?

 

공연 자막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관객으로 인터뷰를 하는 분들이나 공연 관계자분들을 만났을 때, 그분들께 요즘에 ‘너무 좋았다’ 하는 공연들을 꼭 물어보고, 그거는 보러 가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작년에 어떤 직원분이 너무 좋았다고 소개를 해주셔서 <미러>를 봤었네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작품들이 어느 정도 작품성이 보장이 되는 것 같아요. 업계에서 일하느라 공연에 질려버린 사람한테도 좋게 다가오는 작품들이니까요.

 

 

지금은 다시 볼 수 없는 작품이나, 전설로 남은 ‘그때 그 캐스팅’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근데 2~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절대 안 온다고 했던 공연들이 생각보다 많이 돌아와서, ‘이거 진짜 한 10년은 버티면 결국에 다 오는 구나’ 싶어요. 그래도 요즘 다시 안 오는 작품 중에 제가 <황태자 루돌프>를 못 봤어요.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그거에 대한 그리움도 좀 있고, 저는 임태경 배우를 너무 좋아해요. 목소리를 좋아해서요. 근데 다신 안 오실 것 같고.. 나이의 한계로 넘어간 배우들이 좀 많으니까요. <쓰릴미>를 최재웅 배우와 김무열 배우로 봤었는데, 그것도 너무 좋았어요. 다신 안 올 것 같아요. 사실 그래서 나이 때문에 못 보는 공연 캐스팅이 있을 때 좀 아쉬운 것 같아요.

 

 

관극하는 날, 공연 전후로 꼭 지키는 인혜 님만의 루틴이 있나요?

 

이제는 진짜 너무 짬이 차서 한 10분 전에만 도착하게 가요. 화장실 어디로 가는지 다 아니까. 이런 것들 때문에 시간을 좀 아끼게 된 것 같고, 되게 좋았던 공연이 있으면 집에 와서 꼭 위스키 한잔하면서 노래를 다시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원스> 보고 와서 노래 한참 다 듣고 옛날 영상도 봤어요.

 

 

뮤지컬을 이렇게 오랫동안 좋아할 수 있는 이유 혹은 원동력이 뭔가요?

 

진짜 열성적인 분들 많잖아요. 일기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배우들의 모든 스케줄을 꿰고… 저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좀 시니컬한 편인 것 같아요.

 

사실 저도 공연을 한참 좋아하다가 어느새 흥미가 좀 떨어져서 한 3년 정도는 클래식 공연을 훨씬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사실 좀 뮤지컬이랑 겹치죠. 크로스 오버나 기악, 오케스트라도 있고요. 그런 걸 보다 보면, 뮤지컬을 좋아하다가 그 음악이 좋아서 오케스트라를 좋아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솔리스트도 듣고 싶고, 막 이래서 결국에는 뺑뺑 도는 것 같아요.

 

공연 예술이라고 했을 때 그 안에서 엄청 장르가 많이 갈리잖아요. 상업 뮤지컬과 국립극단의 작품은 수요층이 전혀 다른 것처럼요. 무거운 공연 보다가 또 돌아와서 가벼운 공연 보고. 이렇게 공연의 다양한 장르를 번갈아가며 보면서 환기를 하는 것 같아요.

 

*

 

다음 편에서는 '뮤덕'을 넘어 '오롯플래닛 대표' 최인혜로서, 덕질이 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자세히 알아본다. 또한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드는 한 사람의 고민과 비전도 들어본다. 뮤지컬이 좋아서 자막까지 달아버린 1n년차 뮤덕이 극장에서 시선을 두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명함 임솔지.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