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글을 쓰는 시대.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먼저 AI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부터 말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AI는 나에게 두려움이다. 요즘 유독 ‘AI가 대체할 미래’를 주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과 뉴스 기사에 눈이 간다. 원래라면 열댓명의 스태프가 필요한 방송 영상 촬영도 AI에 명령어를 입력하면 한 시간이면 만들 수 있는 시대. 키워드 몇 개만 입력하면 세상에 없던 음악과, 그림을 창작해내는 시대. 세상의 어떤 정보도 가장 빠르게 수집해서 원하는 구조, 심지어는 특정 문체 혹은 말투로 설정 해 글을 완성할 수 있는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음을 체감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AI의 속도만큼이나 점점 존재 의미를 잃어가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여 내게는 조금 암울한 디스토피아 같이도 느껴진다.
그리고, 또 궁금함이다. 언젠가부터 눈에 띄는 숫자가 생겼다. 블로그의 누적 AI 인용수이다. 지금까지 내 블로그에 있는 글들은 총 1200회 누적 인용되었다. 소리 소문 없이 내가 쓴 글들이 AI의 참고서로 쓰였다니. 조용히 조금씩 늘어나는 숫자를 보고 있으면 왠지 묘한 기분이 든다. ‘만약 나의 블로그 글을 AI를 사용해서 작성했다면, 그걸 또 AI가 인용하게 되는 건가?’하는 머리 아픈 생각도 든다. AI가 AI가 쓴 글에서 정보를 얻고, 누군가 그것을 블로그에 올리면 또 다시 이상한 순환이 시작되는 건 아닐지.
AI는 나에게 두려움, 그리고 궁금함이다. 솔직히 긍정적이기보단 부정적인 느낌에 가깝다. 나는 자신이 없다. AI한테 ‘이길 자신’이. 제한 시간 내에 AI보다 더 논리적인 글을 써내는 것도, 하다못해 더 감수성을 자극하는 수필 혹은 소설을 써내는 것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백전백패하더라도 내게 글을 쓸 이유가 있다면, 그건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나의 인생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또, 내가 가진 창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투영해 보고, 그걸 다른 사람들과 기꺼이 나누기 위함이다.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 그리고 나의 일기장을 제외하고 내가 글을 쓰는 창구는 아트인사이트가 거의 유일하다. 매번 글을 쓰면서 마치 온라인 일기를 적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젯밤은 이런저런 생각들로 잠이 안 왔고, 바삐 길을 걷다가 문득 내 걸음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똑같아 보이지만 매년 다른 계절의 공기를 느끼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끝. 글의 주제를 그리 오래 고민해 본 적은 없다. 그저 글을 써야 하는 때 가장 내게 강렬하게 다가온 느낌. 그리고 가장 나를 지배하는 기분과 사건을 주인공으로 두고 그걸 기록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의 정형화되지 않은 느낌을 단어로 규정하고 나열하며, 또 그 단어를 고르는 과정에서 조금 더 나다운 것들을 고민한다. 그럴수록 더욱 다소 추상적이던 느낌과 생각이 분명해진다. 문장을 짓다 보면 그에 딸려 관련된 생각들도 정리된다. 결국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표현하고 또 표현한다. 글을 한 편 쓰고 나면 어느새 어디에서도 쉽사리 충족되지 않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채워짐을 느낀다.
“내가 어제 잠 들기 전에 느꼈던 공허함에 대해 평소 내가 사용하는 언어 수준을 고려해 허심탄회한 말투로 작성해줘. 또, 내가 공허함을 느끼게 된 이유를 나의 28년 인생의 기억에 기반해 찾아 논리적인 근거로 추가해줘.”
AI에게 부탁해 글을 작성했다면 아마 이런 프롬프트를 작성해야 하지 않을까.
또 다른,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면 이렇게 완성된 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이다. 우울했던 마음. 창피한 흑역사. 날아갈 듯 설레던 모든 순간들. 이러쿵 저러쿵 누군가 늘어놓은 이야기에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하고 느끼는 안도감. 혹은 철저히 누군가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내뱉은 생각들을 보고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하고 놀라는 새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 나는 글을 쓰고, 또 반대로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
AI 역시 차원이 다른 데이터 베이스를 기반으로 이런 안도감과 새로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크게 감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세상을 살고 있지만 세상의 반의 반도, 어쩌면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지식의 협소함, 계절성 우울을 앓을 만큼의 나약함. 논리적인 듯하다가도 때론 비약을 일삼는 비일관성. 애석하게도 인간이라면 기본 탑재한 이 기능을 AI는 갖추고 있지 않다. 그래서 더욱이 사람이 AI에게 동질감을 느끼기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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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대신 써줄 수 없는 글들이 내게는 아직도 너무나 많이 남아있다.
나는 나의 글이 AI의 거대한 정보 채집망에 잡혀 인용 대상이 되지 않길 바란다. 그만큼 무용하지만, 그래서 더 나에게, 또 누군가에게 특별히 유용한 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