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흘러온 상태에서 흘러오기

글 입력 2023.10.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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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 필명으로 글을 쓴 치사한 짓을 한 지 4년이 넘게 지났다. 글을 쓴 것만 계산해도 몇백은 훌쩍 넘긴 것 같은데, 왠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나의 글쓰기로부터는 조금씩 멀어져 온 것 같다. 정확히는 나는 나의 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왔던 것 같다. 그 결과, 나는 이제 내 이름으로 글을 쓰지도 않고, 나에 관한 이야기도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글을 쓰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어떤 단어와 논리를 강박적으로 조합하건 나 자신이 경계해왔던 것들로부터 가장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나야말로 팽배한 자기인식과 대단한 주관성에 절여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 지독히 주관적인 세계 안에서 작품, 음악, 사상, 그리고 그것들을 창작하는 인간들에게 해석이라는 무딘 플라스틱 칼로 파헤쳐왔다. 문화예술과 관련된 감상을 글로 옮기는 것도 비슷했다. 늘 그 경계는 아슬아슬했지만 그래서 아트인사이트는 내게 묘한 통제감과 전능감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한때 나는 내가 그것들을 해체하고 해석해놓고, 내가 '나만의 글'을 쓰는 것을 빈정거리는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이것은 꽤 기묘한 감각이다. 다른 사람의 '주관적인 언어'는 얼마든지 달콤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나의 '주관적인 언어'는 좀 다르게 느껴졌다. 그 뒤에는 언제나 무례하고 거만한 평가자의 시선-그리고 그 조악한 만듦새로 갈린 예리함-이 달라붙어 글자 하나하나마다 위선을 울컥울컥 토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몇 걸음 뒤에서 보면, 그것을 위선이라 부르는 행위마저도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하지만 남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나의 가장 나쁜 습관은, 가장 내밀하고 중요한 것을 빈정거리는 태도로 받아들인다는 데에 있다. 현실적인 관점을 걷어내고 보면 나는 온통 아트인사이트에서 내가 원하는 바와 정확히 반대되는 일들을 자행해왔다. 의식차원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필명을 통해 나를 발견해주길 원했고, 속에서 들끓는 거칠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언어를 위장하기 위해 평가자의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주제와 소재에 집착했다.

 

나는 아트인사이트의 존재의의를 다른 기댈 수 있는 이론들로 설명하길 원하지만, 사실 내게 이곳은 상당히 주관적인 공간이다. 나의 '나쁜 습관'이 이토록 적극 드러난 것은, 그만큼 이곳이 내게 호소하는 바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다른 사람들과 경연한다는 이 자리에 이런 살짝 고삐 풀린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트인사이트에서 정말로 쓰고, 교류하고 싶었던 것은 나의 '이런' 언어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군중 속에서 나를 찾지 못한다. 나도 군중 속에서 군중 이상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발견되길 원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한다. 원래 문화예술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정신적 탈출구였다. 우리 사회의 강박적인 구별 짓기나 '힙한' 판타지가 그 너머로 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아채기도 하지만, 어떤 콘텐츠를 하건 우리는 존재하고 존재함을 인정받고, 나아가 교류하기 위해 문화예술을 창작해왔다.

 

그리고 내 생각엔, 아트인사이트는 그럴 가능성을 열어둔 곳이다. 이번 아트인사이트 '백일장'에 올라온 글들을 오면서 나와 비슷한 감각을 느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게도 이곳은 그런 곳이다. 사람의 사고는 사람의 엉성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지만, 그래서 매력 있다. 약간은 느슨한 틀 속에서 개개인은 자신의 엉성함을 드러낼 자유를 얻는다. 하나의 시나리오나 장면으로 뭉치지는 않지만, 그 파편을 가끔 돌출시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해방감을 얻는다.

 

당신들과 나 역시 모순적인 글쓰기를 멈추지 못한다. 필명을 바꾸지도 못할 것이다. 아트인사이트는 분명 작품을 감상하는 어떤 감각들을 훈련했지만, '내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딱히 발전시키지 않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적절한 위치를 점유하면서 존재한다. 그래서 이 글도 뭔가를 비평하는 글보다 짧고, 좀 완결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람처럼 나도 나의 언어로 말하는데 통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이 분열된 목소리야말로 내가 이곳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쓰면쓸수록 '개인적인 글'에는 나라는 공허하고 막연한 소재밖에 없다는 사실에 묘한 부담감을 느낀다. 그런 내가 쓰는 이 글은 쓰면 쓸수록 진공청소기처럼 글자들이 파쇄되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갈 뿐이다. 이유야 어쨌건 앞으로 그러한 글들을 잘 쓰지는 못할 것이다. 문득 아트인사이트에서 읽은 책의 이름 중 하나가 생각난다.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불현듯 그 문장이 생각난 이유는 아마 내가 그 묘한 상태에 가까운 감각으로 아트인사이트에 접촉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쎄, 나는 이렇게 표현해보고자 한다. '흘러온 상태에서 흘러오기'.

 

어떤 접점과 욕구를 지니고 나는 이곳에 흘러왔고, 나의 군중 속에서 흘려내지 못한 나의 조악한 사고들은 다른 무언가와 접점을 가지고 또 기묘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사람의 말은 어떻게 해도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텍스트건 목소리건 참 귀찮다. 그것들은 어느 형태로든 제 맘대로 사회에서 흡수되지 못한 목소리, 하물며 자기 자신에게서도 흡수되지 못한 목소리들을 반영한다. 하지만 어떤 공간에서 누군가에게 공유된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은 정말로 괜찮은 것이 되어간다. 그래서 그것들은 흐를 수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영원히 말이다.

 

 

[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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