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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카르밀라 포스터.jpg

 

 

제작사 라이브러리컴퍼니와 네버엔딩플레이가 같이 제작에 참여한 뮤지컬 <카르밀라> 초연은 2024년 6월 11일부터 9월 8일까지 링크아트센터드림(구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카르밀라>는 당시 영국의 일부였던 아일랜드인인 셰리든 레 퍼뉴가 1872년 출간한 고딕 소설 『카르밀라』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2024년 초연이 올라오기 전 2017년과 2019년 2번의 리딩 쇼케이스를 거쳤을 만큼 내용의 수정과 각색이 많이 된 작품이다.

 

<카르밀라>는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끼는 뱀파이어 카르밀라, 겉보기에는 카르밀라의 동생으로 보이지만 카르밀라를 뱀파이어로 만든 일종의 ‘모체’이자 카르밀라에게 집착하는 닉, 아버지가 뱀파이어에게 당한 이후 혼자 집에서 살아와야 했던 순수한 소녀 로라, 로라를 챙겼던 성당의 부제 슈필스도르프(이하 슈필)가 나오는 4인극이다.

 

 

 

흡혈귀 소재 로맨스라는 장르의 공식


 

만약 뱀파이어 장르에 익숙하다면 <카르밀라>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소재들이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인간이 흡혈귀에게 적당량의 피를 빨린 후 흡혈귀의 피를 마심으로써 뱀파이어가 되는 과정, 은으로 만들어진 칼이나 말뚝이 뱀파이어의 심장에 박힘으로써 뱀파이어를 처치하는 것 등 뱀파이어 소재 창작물에서는 흔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반면 이러한 흔한 모습과는 다르게 <카르밀라>에서 닉은 뱀파이어가 마늘을 무서워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대사를 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차이에서 뱀파이어 소재 창작물이 묘사하는 뱀파이어에 대한 세세한 바리에이션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뮤지컬 <카르밀라>는 ‘뱀파이어물’이라는 장르 속에서 장르의 문법을 참조하고 동시에 이를 어느 정도 변형하며 존재하고 있다.

 

뮤지컬 <카르밀라>의 동명의 원작은 뱀파이어 장르의 효시로 알려지고는 하는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Dracula)』보다 20년 넘게 이른 시점에 쓰여진 작품이다. 브람 스토커가 쓴 동명의 원작을 각색한 영화(1992)를 바탕으로 창작한 프랑크 와일드혼의 뮤지컬 <드라큘라>가 한국 프로덕션에서 성공을 거둔 것을 생각하면 흡혈귀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매력적인 소재다. 여성 뱀파이어 카르밀라를 주인공으로 하는 뮤지컬 <카르밀라>와 뮤지컬 <드라큘라>의 공통점은 흥미롭다. 모두 빅토리아 시대에 쓰여진 고딕 소설인 원작에서는 최종 메인 빌런의 역할을 점했던 뱀파이어 캐릭터가 뮤지컬이나 영화로 각색되면서 인간과의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했다는 점이다.

 

근대화가 진행되어 사회계약이라는 해방적인 사상과 보수적인 성적 윤리가 공존했던 모순의 시대, 과학 기술의 발달 속에서 형이상학의 영역이었던 종교의 위력이 여전히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 속에서 고딕소설 속 뱀파이어가 상징하는 온갖 병리의 집합체였다. 흡혈귀의 매력적인 모습은 악마의 유혹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경계해야 할 대상이며, 뱀파이어라는 비인간 모티프는 비서구와 비이성애의 상징 등으로 독해되기도 한다. 이 지점 때문에 인간과 비인간인 흡혈귀와의 로맨스는 곧 스릴러의 공식과도 일치하며, 흡혈의 행위와 성애의 표현은 등치된다.

 

뮤지컬 <드라큘라>나 <카르밀라>처럼 고딕 소설을 각색한 작품은 작품 속 히로인을 유인하는 빌런이었던 흡혈귀를 불멸이라는 운명에 환멸을 느끼도록 하는 ‘인간적인’ 모습에 주목해 히로인과의 로맨스를 진행시킨다. 이 경우 비인간인 뱀파이어가 인간을 흡혈할 수 있다는 ‘위험’은 둘 사이 로맨스적 긴장의 동력이 된다. 로라를 다시 만나 영생의 환멸 속에서 욕망과 사랑이 되살아난 카르밀라는 꽃의 가시에 손가락이 찔려 피가 나는 로라를 순간 이성을 잃고 흡혈하려 하는데, 이 모습이 성애적 텐션의 전형적인 코드를 반영한 것처럼 말이다.

 

뱀파이어의 본능이 인간의 피를 원하는 것으로 제시된 상황 속에서, 어린 로라를 만난 후 인간이 아닌 짐승의 피만으로 연명해 온 카르밀라는 사랑을 위해 본능을 억제하는 것이다. 로라를 흡혈귀로 만들려고 했던 원작의 카르밀라와 다르게 로라를 계속 인간으로 남겨두기 위해 카르밀라는 자신의 본능과도 싸우고, 로라를 이용하려는 닉과도 대립한다. 이 작품 속에서 카르밀라와 로라가 인간애(‘우정’)와 성애의 경계 속에 있다는 것은 그나마 사랑으로 명명되었지만, 카르밀라에 대한 닉의 집착은 그 구체적인 색과 방향을 모호하게 남겨두었다. 따라서 닉 - 카르밀라 – 로라의 사랑과 흡혈을 사이에 둔 기묘하고 모호한 삼각관계는 닉에 의해 성에 갇힌 로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밝힌 카르밀라가 슈필과 협력하면서 서사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로맨스에서 뱀파이어라는 은유와 상징


 

뮤지컬 <카르밀라>에서 드러나는 카르밀라의 내면은 영생이라는 자신의 존재 조건에 대한 환멸, 주변 사람들과 로라에게 정체를 숨겨야 하는 것, 그로 인한 비인간화에 대한 고뇌와 갈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인간들을 속이며 흡혈을 즐기는 닉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카르밀라가 느끼는 소외와 배제의 정동은 마치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소수자의 내면과도 유사하다.

 

사실 그러한 내면의 서술에 사용되는 수사에서 이를 은유라고 표현하기에는 다소 직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퀴어가 연상되기 때문에 굳이 독해를 할 결심 없이도 자연스럽게 퀴어의 삶으로 읽힌다. 또한 뱀파이어가 ‘위험’한 존재인 이유도 누군가를 ‘감염’시켜 같은 뱀파이어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간염과 전염이 현대 사회에서 퀴어 혐오의 전형적인 수사라는 점은 꽤나 흥미롭다.

 

또한 카르밀라와 로라의 로맨스는 tv프로그램 <방구석 1열> 150회에서 그동안 한국 퀴어 문학을 창작해 온 박상영 작가가 영화 <트와일라잇>을 리뷰하며 금기라는 측면에서 뱀파이어와 소수자로서의 퀴어를 유비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즉 뱀파이어 로맨스 장르의 주요 안타고니스트인 이종 간의 사랑이라는 금기는 비퀴어중심적인 주류 사회에서의 억압과 유사한 지점이 있다. <카르밀라>는 직접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지만 두 금기들이 중첩되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뱀파이어이자 퀴어인 존재론적 지위가 주는 불안을 관객이 느끼는 정서와 서사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 작품의 결말은 닉이 죽은 후 그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죽어가는 카르밀라를 로라가 자신의 피 몇 방울을 통해 살린 후 자신도 뱀파이어가 되는 것이다. 이는 보통 뱀파이어라는 위협이 사라지는 것으로 결말을 맺고 이것이 사건의 해소로 의미화되는 (작품의 원작을 포함한) 흡혈귀를 다룬 고딕 소설이나, 뮤지컬 <드라큘라>처럼 사랑하는 히로인(미나)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죽음으로써 사랑이 종결되는 현대적 각색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뱀파이어가 된 로라와 카르밀라가 둘이서 떠나는 장면에서는 무대의 끝에서 (로라를 지키기 위해 닉을 처단했던) 슈필이 신에게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같은 축복과 자비를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이 작품은 막을 내린다. 사랑이 이뤄지는 대가로 소외된 자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는 로라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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