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야 스윙이 된다 - 재즈 레터
재즈를 처음 듣는 사람에게 재즈가 무엇인지 설명하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블루스를 비롯한 다양한 음악적 전통이 만나 탄생한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고, 스윙과 비밥, 모달 재즈 등 여러 갈래로 끊임없이 변화해 온 장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재즈를 가장 재즈답게 만드는 요소를 하나만 꼽으라면, 많은 이들은 아마도 '즉흥성'을 떠올릴 것이다.
재즈 연주자들은 같은 곡을 수십 번 연주해도 매번 다른 음악을 만든다. 정해진 악보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그날의 기분과 공간의 분위기,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의 호흡에 반응하며 새로운 선율을 만들어낸다. 얼핏 보면 본능과 감각에 몸을 맡긴 채 자유롭게 노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는 잘 보이지 않는 역설이 있다. 재즈의 즉흥성, 그 자유는 수천 시간의 훈련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책에 나오는 비유가 인상적이다. 도심 공원의 스케이트 보더들처럼. 햇살 아래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들이 얼핏 보면 그냥 몸을 맡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천 번의 반복 훈련이 있어야 그 위에서 중심을 잡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재즈도 마찬가지다. 찰리 파커는 하루에 최소 11시간에서 15시간을 연습했고, 그렇게 3~4년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웃들이 소음 때문에 이사를 가라고 항의할 정도였다. 그 지독한 수련이 있었기에 무대 위의 자유가 가능했다. 진정한 자유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수련 끝에 도달하는 어떤 경지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미래를 계획하고 예측하려 애쓰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들은 대부분 예상 밖에서 찾아온다. 준비한 길이 막히기도 하고, 우연한 만남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삶은 점점 더 악보 없는 연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김민주의 『재즈 레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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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레터』는 재즈를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태도로 읽어내는 책이다. 저자는 역사에 남은 전설적인 재즈 공연들의 순간을 따라가며 재즈가 왜 오랜 시간 사랑받아 왔는지, 그리고 그 안에 어떤 삶의 감각이 담겨 있는지를 들려준다. 책은 1월부터 12월까지, 한 달에 한 통씩 도착하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재즈의 위대한 순간들을 찬란한 성공담으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연 직전 악기가 고장 나거나, 연주자가 실수를 저지르거나, 삶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끝내 무대 위에 서야 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마치 늦은 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사연을 듣듯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무대가 아닌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1975년,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은 쾰른 오페라하우스 공연을 앞두고 황당한 현실과 마주한다. 연주해야 할 피아노가 고장 나 있었다. 페달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음색은 빈약했다. 그는 공연을 포기하려 했지만 결국 무대에 올랐고, 그 한계 속에서 악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선율을 끌어냈다. 그날의 녹음은 훗날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솔로 피아노 앨범이 되었다. 완벽한 피아노가 있었다면 그 음악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엘라 피츠제럴드는 베를린 무대에서 '맥 더 나이프'를 부르다 가사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실수를 숨기기는커녕 "오, 이 곡의 다음 가사가 무엇일까요? 지금 부르는 건 내가 모르고 부르는 거예요"라고 즉흥으로 노래하며 그 실수를 음악의 일부로 끌어안았다. 그날의 공연은 전설이 되었다. 엇박자 자체를 스윙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사실 이런 순간은 재즈 무대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의 역사 또한 수많은 결함과 한계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꾼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스물여섯 살의 미켈란젤로는 다른 조각가들이 모두 거절했던 결함투성이 대리석으로 다비드상을 완성했다. 극심한 관절염으로 더는 붓을 들지 못하게 된 앙리 마티스는 붓 대신 가위를 들고 종이를 오려 붙이는 컷아웃 기법을 고안해 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예술사의 명장면은, 아니 삶의 모든 명장면은, 이렇듯 자신 앞에 나타난 물웅덩이를 뛰어넘는 순간 탄생한다"라고 말한다. 불완전함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새로운 가능성의 발판으로 삼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재즈 정신의 핵심이 아닐까.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았던 것은 재즈의 스윙이었다. 스윙은 박자를 정확하게 쪼개 맞추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미세하게 밀고 당기며 만들어지는 독특한 리듬감이다. 정박에서 살짝 벗어나는 순간에 오히려 음악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의 부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스윙할 수 없다"라는 그래서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흔들려야 스윙이 생기고 그것이 곧 리듬이 된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계획에서 벗어나고, 엇박이 생기고, 예상과 다른 길로 흘러갈 때조차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리듬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는 어느 때보다 흔들림이 많다. AI가 재즈를 흉내 내고, 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매일 아침 고장 난 피아노 앞에 앉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지금 오히려 매 순간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의 재즈를 더 찾는다. 완벽하게 설계된 음악보다 살아있는 떨림을, 정답보다 진심을 원하기 때문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는 일인 것 같다. 재즈가 엇박자마저 스윙으로 바꾸어내듯 우리의 삶 또한 흔들림 자체를 리듬으로 삼을 수 있다고, 이 책은 내내 이야기한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스윙할 수 없다. 어쩌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흔들림도,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어떤 리듬의 시작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