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너무 찝찝한 꿈을 꾼 적 있는가. 지금 기억나는 아주 불쾌한 꿈은 아끼는 파우더를 아주 땀범벅에 냄새나는 사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써서 짜증이 난 정도다. 그 정도로 내가 꾸는 꿈은 친구들에게 웃고 넘길만한 꿈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치즈 이야기』의 첫 장면은 부모님이 치즈로 변하는 꿈 이야기를 시작으로 독자를 곧장 낯설고 기묘한 감각으로 데려간다.
조예은은 세 번째 소설집 『치즈 이야기』에서 다시 한번 자신만의 독창적인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힘은 책 곳곳에서 묘사되는 기괴한 장치나 잔혹한 이미지에만 있지 않다. 불쾌함과 매혹이 뒤섞이며 그녀만의 감성으로 풀어나간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인간의 감정과 기억은 결코 단순히 선악이나 호불호로 가를 수 없다는 것을 독자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치즈 이야기』 의 전반부 속 단편들은 늘 익숙한 일상에서 출발하지만 끝내 낯선 풍경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청춘 앞에는 웃는 얼굴을 찢어 붙인 괴상한 인물이 나타난다. 그 괴물은 어쩌면 오래도록 그곳에 쌓여버린 불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대신 모든 것을 동생에게 내어주며 살아온 자매의 균형이 무너진다. 희생과 집착이 서로의 삶을 옭아매며, 결국에는 ‘누가 누구를 더 많이 잡아먹었는가?’라는 질문으로 번진다. 육상의 트랙 위에서 가장 빨랐던 소년은 부상 이후 스스로를 조연으로 밀어낸다. 그때 그 앞에 나타난 건, 영화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이름 없는 엑스트라. 현실에서 잊힌 두 인물이 우연히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 ‘조연으로서의 삶’도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또한 후반부 작품들은 ‘기억’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소라는 영원히」에서 주인공은 물건에 새겨진 기억을 읽는 능력을 얻는다. 인간은 사라지지만 물건에 남은 기억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능력은 타인의 삶을 수집하는 방식으로 발전한다. 여기서 물성을 통한 기억은 단순한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세계를 재구성하는 하나의 흔적으로 그려진다. 「두번째 해연」은 복제 인간이라는 소재를 통해 더 직접적으로 묻는다. 아버지는 딸을 잃고, 복제된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복제된 딸은 말한다. “저는 저로 남아 있을 거예요. 제가 모든 걸 기억하니까요.” 이걸 통해 기억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정체성의 본질임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만들게 한다.
마지막 작품 「안락의 섬」은 죽음을 앞둔 반려견과 함께 특별한 섬으로 향하는 인물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그는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며, 소멸만을 바라보던 마음이 서서히 달라진다. “기억은 쇠퇴하지만, 소중한 것은 다시 생겨난다.” 이 문장은 기억이 삶을 지탱하는 힘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안락의 섬과 무의미한 바깥을 생각했다. 삶과 죽음을, 시작과 끝을, 종말과 재건을, 망각과 사랑을 생각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사랑의 기억들. 이 섬에서도 그런 기억은 계속 쌓였으니 나는 아마 그만큼 더 슬퍼질 것이다. 어디선가 하피 가, 라미가, 플루가 이렇게 묻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모든 걸 없는 셈 치고 무로 돌아가는 건 너무 슬프지 않아? 기억이란 쇠퇴하지. 그리고 소중한 것은 다시 생겨나.
- 324p 발췌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대부분 주연이 아닌 조연,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서 있다. 꿈이 좌절된 청춘, 사랑을 강요당한 자매, 사회의 보호망에서 밀려난 개인. 여기에는 중요한 전환이 있다. 문학은 종종 ‘주인공’의 이야기만을 강조하지만, 『치즈 이야기』는 주역이 되지 못한 이들의 삶에도 똑같이 의미가 있음을 드러낸다. 존재는 주연의 자리에 서서 빛날 때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머무는 한, 그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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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의 이번 소설집은 마치 팀 버튼 감독의 영화와 같은 분위기로 어디가 끝인지 가늠할 수 없는 철학적 성찰을 이끌어낸다. 혐오와 사랑, 절망과 희망이 얽힌 이미지들은 일차적으로는 불편함을 불러일으키지만, 결국엔 인간 존재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수렴한다.
처음 치즈와 함께 포도주를 먹었을 때가 생각난다. 입에서는 퀴퀴함과 짠맛밖에 안 나는 이걸 대체 왜 비싼 돈을 들여 먹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잘 숙성된 치즈를 먹었을 때, 처음에는 낯설고 역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은 풍미를 남기는 그런 특성의 재료다. 『치즈 이야기』는 제목처럼 정말 이 치즈와 같은 성질을 듬뿍 담았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의 주역이 되지 못한다”라는 실망을 경험한다. 소망과 열정은 살짝 어그러진 어떤 하루로 인해 무너지고, 그때 우리는 추억하거나 절망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며, 고맙고 소중한 기억을 쌓아 나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치즈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갖고있는 명과 암을 모두 담은 이야기로 확장된다. 삶을 붙드는 게 기억이라면 우린 우리만의 치즈를 숙성시키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