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기 위해 다섯 번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막상 기회가 손에 쥐어졌을 때, 뜻밖의 권태와 마주했다. 열정은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날려 풍화되었다. 그렇게 나는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써야 할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마감 기한에 맞춰 생산되는 문장들 사이에서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졌다. 실패자나 낙오자라는 자괴감은 아니었다. 다만 그토록 원했던 일을 하고 있음에도 '왜 나는 온 마음을 다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형체 없는 질문이 나를 짓눌렀을 뿐이다.
이 글은 미지근한 온도를 견디며, 거세된 목적지 너머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이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던 부지런한 마음들이 깎여 나간 자리에, 비로소 나를 닮은 문장들이 고이기 시작했다.
1. [Project 당신] 쓰는 마음 헤아리는 일 (버킷리스트)
쓰는 행위는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자꾸면 무언가를 써내야 한다는 강박에 나를 가뒀다. 그래서 무언가를 이뤄냄으로써 나의 좋아함을 증명하려 했다. 강사로서의 삶과 글쓰기라는 두 축을 잇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며, 새로운 성취가 나를 구원할 것이라 믿었다. 이 글을 쓸 당시의 나는 새로운 방향성을 찾았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지만, 그 뒤에는 '부지런히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숨어 있었다. 버킷리스트는 나를 자유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내 안의 순수한 열망을 갉아 먹었고, 나는 '쓰는 마음'을 헤아린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쓰지 못하는 마음'의 슬픔은 외면하고 있었다.
2. [ART insight] 좋은 직업은 없다, 다만 좋은 일이 있을 뿐
좋은 직업이라는 환상은 타인의 시선이 만든 신기루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나를 설명해 줄 화려한 명사가 아니라, 나를 살게 하는 정직한 동사들이다. 내 삶을 현실적이고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나만의 일'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쓴 글이다. 직업이라는 한정된 틀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무게가 보이기 시작했다. 후회나 미련도 체력이 되어야 할 수 있는 법. 점점 나에게 맞는 보폭을 찾아갔고, 그 속에서 목적이 사라진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3. [ART insight] 규정된 건강을 넘어, 나만의 계기를 발명하는 일
가장 자전적인 고백이 담긴 이 글은 상담 과정에 느낀 지독한 불편함에서 시작됐다. '아픈 사람'으로 규정하고 표준화된 회복의 경로로 안내하는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를 합리화하려 했었다. 하지만 나의 상태를 누군가의 언어로 명명되는 순간, 나의 고유한 서사는 증상이라는 단어로 대치되었고, 나는 그 편리함에 저항하고 싶었다. 불편함의 실체는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오랫동안 체득된 불안이 너무나 익숙해서, 불안하지 않은 상태의 나를 받아들이는 감각이 낯설고 두려웠을 뿐이다. 정답처럼 주어지는 건강의 정의를 넘어, 나만의 계기를 스스로 발명하는 것이 중요하단 걸, 이 글을 쓰며 깨달았다.
4. [Opinion] 응달에 남은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기까지-오직 그녀의 것 (도서/문학)
석주를 보며 비로소 내가 왜 그토록 무력했는지 알았다. 그녀의 미지근한 온도 그리고 순수한 열망과 조바심으로 자신의 좋아함을 증명하려 애쓰던 모습은 바로 나의 초상이었다. 빛이 들잊 않는 응달에 남겨진 마음을 사람들은 외면하지만, 때로 진실은 그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만 숨을 쉰다. 나의 좋아함은 풍파를 겪으며 전처럼 단단하지 않다. 거칠게 마모되며 매끄러워졌고, 색은 바랬으며 온도는 차가워졌다. 하지만 나는 이 변화한 초심을 인스턴트처럼 가볍게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뜨겁지 않다고 해서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니까. 부지런히 열정을 증명하려던 마음, 그 여남은 마음에 고인 시린 진심조차 결국은 가장 지독한 형태의 사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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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안고 가야할 무늬다. 목적이 사라진 공허함 속에서도 여전히 문장을 만지작거리는 이유는 지금의 나를 또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그늘에 서 있따. 하지만 이제는 안다. 볕이 수그러진 곳에서도 생명은 싹을 틔우고, 그곳에서 쓰인 문장이 또 한 시절의 마음을 데울 수 있다는 것을. 전과 다른 방식으로 흔들리고 멈춰서겠지만, 억지를 부리지 않을 것이다. 이마저도 있는 그대로의 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