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소재는 시대를 막론하고 많이 쓰이며, 인기가 많았다. 아주 어렸을 때도, 20대 때도,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간여행은 단골 소재다. 나를 포함하여 대중은 뻔하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보게 되고, 빠져든다. 문득 이유가 궁금했다. 판타지, SF 장르 특성 때문이 아니라,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사유한 결과, 다음과 같은 (나름의) 결론이 나왔다.
5년 전,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오디오북을 청취했었다. 과거에 대한 후회가 가득한 상태에서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통해 후회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해도 고난과 역경은 여전히 있고, 무언가는 잃는다. 어떤 인생이 더 나을지는 당장보다는 오래 살아봐야 알 수 있다. 노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거에 대한 후회는 그만두기로 했다.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고, 선택하지 않은 삶에 막연한 기대를 하는 건 인간의 심리다. 나처럼 어떤 계기로 인해 또는 자연스럽게 깨닫지 않는 이상, 지난날에 대해 이불킥을 하면서 산다.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가는 건 비슷한 맥락에서, 고난과 역경을 미리 알고 잘 대처하여 좀 더 잘 살고 싶어서다.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아픔은 존재하지만, 미래는 좀 다르지 않은가. 미래를 미리 알면, 어쩔 수 없는 고난과 역경에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고 덜 아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희망을 심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5년 전에 그 책을 읽고,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지만 그 일말의 희망 때문에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는 이야기에 솔깃하고 상상한다. 따라서 시간여행 소재의 이야기에 끌릴 수밖에 없다.
이번에 관람한 영화의 소재도 시간여행이었다. 뻔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어쩔 수 없이 호기심과 흥미가 생겼다. 더구나 2분 후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이라니, 지금껏 보지 못했던 설정이었다. 스마트폰 하나로만 촬영하고 원샷과 원테이크 방식인 데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수상작이라고 하니, 더 기대가 됐다.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은 야마구치 준타 감독과 우에다 마코토 각본가가 함께한 첫 장편영화다. 일본에서 2020년에 개봉하고 코미디 걸작, 기발한 시간여행 영화라는 호평과 함께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한국에서는 8월 19일 개봉하며, 나는 시사회로 관람하고 왔다. 아직 개봉 전이라 이 글에 영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지 못하지만, 내 느낌이나 생각을 상세히 적어보려 한다.

카페 주인 카토는 어느때와 다름없이 카페에 출근해 알바생과 인사를 나누며 평범한 하루를 시작한다. 1층에는 카페, 2층에는 카토의 방이 있어서 무언가를 찾으러 2층으로 올라갔다. 방을 둘러보던 카토에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카페를 모니터할 수 있는 TV에서 나는 소리였다. 화면 속에는 매장 안 모습 뒤로 카토와 똑같이 생긴 남성이 카토를 보고 있었다. 당황하는 카토에게 2분 후 미래의 자신이라고 말한다. 가게와 카토의 방 TV가 2분의 시차로 연결되어 있으며 카토의 방은 현재, 카페는 미래의 공간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현재의 카토는 미래의 카토와 끝말잇기로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걸 확인하면서 의심을 거둔다. 그리고 미래의 카토가 하라는 대로 1층 가게 모니터를 향해 자신이 겪은 걸 말해준다. 알바생, 카토의 친구들까지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들은 더 먼 미래를 보기 위해 타임TV를 설계한다. 두 모니터를 마주 보게 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무한히 연결되며 이는 드로스테 효과와 같다고 결론짓는다. 두 모니터를 마주 보게 만들어서 2분 후가 아닌, 4분 후의 미래까지 미리 보고, 자신이 원하는 걸 얻지만,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카페와 카토의 방을 벗어나지 않는다. 다른 영화에 비해 장소가 매우 제한적이지만,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에 1층과 2층을 오가는 동선을 원테이크로 담아내니 현실감이 느껴졌다.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까지 더해지니, 그저 배우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듯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겪은 시간여행이 실제로 나의 일상에서 일어날 것 같았다. 원샷과 원테이크 연출을 해서 워킹이 매끄럽지 않고 산만해 보였지만, 이마저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더 재밌게 관람하는 방법.
이 영화에는 MBTI가 있다. 2분 후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대부분 놀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카토와 알바생 그리고 친구들은 꽤 쉽게 받아들인다. 순수한 눈빛과 해맑은 얼굴로 그 상황에 빠르게 적응한다. 재밌는 건 상황을 받아들이기 전과 후의 반응이 캐릭터마다 달랐고, 그 반응은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에 좋은 장치였다.
주인공 카토는 주변 분위기와 현재 상황에 끌려다니는 와중에도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이 캐릭터는 단단하고 용기 있는 인물이었다. 벌어진 상황을 직면하고, 수습하기 위해 두려움에 떨면서도 용기 냈다. 중요한 순간에는 용기 있는 선택으로 드로스테 상황을 종료시켰다. 미래를 안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시 중심을 잡고 더는 주변 분위기에도, 미래에도 끌려다니지 않았다. 매력 있는 캐릭터였다.
알바생은 해맑고 천진난만한 성격이지만, 겁이 많은 면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무서워하면서도, 미래의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질까 봐 기꺼이 미래에 끌려다닌다. 심지어 인과율이 깨지지 않게 진실을 숨겼다. 알바생은 인간의 민낯을 비춘 캐릭터였다.
오자와는 아이디어가 넘치고 순수한 면이 있는 캐릭터였다. 상황 파악을 잘 하고 머리가 좋아서 타임TV의 원리를 이해하고 새롭게 설계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발전하며 나아가는 성향으로 보였다.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특히 더 먼 미래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빠르게 옮겨서 기어코 해내는 그의 추진력이 인상적이었다. 오자와의 그런 면은 내가 갖고 싶은 면이다.
타나베는 가장 현실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였다. 인간의 가장 대중적인 유형이기도 하다. 현실적인 방법으로 확인하고,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무언가를 타임TV를 통해 쟁취했다.
카페 옆 이발소 딸 메구미는 후반부에 잠깐 나왔지만, 존재감이 컸다. 그만큼 카토보다 더 용기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앞뒤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데도 침착한 모습을 보였으며 상황 적응력과 판단력이 빨랐다. 안주하는 모습보다는 어떻게든 헤쳐나가려는 모습이 두드러졌는데, 마지막에 보여준 그녀의 대범한 모습과 선택은 감탄을 자아냈다. 그녀가 먼저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카토도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여리여리한 외면에 진취적인 내면을 가진 메구미가 몹시나 매력적이었다.
캐릭터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2분 후 미래 컨닝에 대한 반응을 유심히 보고, 나는 어떤 쪽일지 생각하며 관람한다면, 더욱 재밌고 풍부하게 향유할 수 있을 테다.
패러독스

처음에는 2분 후라도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영화 캐릭터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갈수록 미래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그들을 보면서 부러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물론 미래는 정해졌기에 팁을 알려주었으니 그 팁을 참고삼아 행동하는 건 좋다. 하지만 이게 정말 좋은 걸까? 미래의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인물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은 되려 자신을 잃어가는 듯 보였다. 미래에 묶인 채로 움직이는 인형 같았다. 서글펐던 건, 그 모습이 그저 허구의 인물들을 보는 것 같지 않았다는 거다. 쉬운 말로 남 일 같지 않았다.
나는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하루를 버티고, 지난 추억을 원동력 삼아 산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현재를 온전히 즐기진 못한다. 너무 행복하면 대가를 치를만한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해하기도 한다. 지금은 안 그러려고 하지만, 한때는 모든 걸 포기하고 미래만 보며 미래를 향해 쉼 없이 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기대에 부응하는 미래는 오지 않았다. 왔어도 그때뿐이었다. 오히려 잃어버린 것, 놓쳤던 것들이 내 손에 쥐어졌고 그 슬픔은 오래갔다. 결국 미래에 끌려다니느라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한 거다. 결국 이 모든 건 패러독스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래를 완전히 배제하고 현재를 사는 것도 좋은 건 아니다. 미래는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 정도로 삼고, 현재를 즐기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적어도 미래에 끌려다니느라 내가 실재하고 있는 지금, 이 현실을 놓치지 말라는 거다. 일단 현재를 잘 살아야 좋은 미래도 따라온다. 그래야 닥쳐올 고난과 역경도 잘 대처할 수 있다.
영화에서 카토는 자신의 경험담을 메구미에게 들려줬다.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미래를 믿어서 막살았는데, 멸망하지 않아서 그동안 막 산 것에 대해 후회했다고 한다. 카토의 말이 가슴에 남았다.
미래는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미래를 탄생시키는 거였다.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을 관람한 후, 일말의 희망은 사라졌으나 그보다 소중한 걸 얻었다.
나는 미래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이 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