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기분을 즐겁게 하는 선선함뿐 아니라, 주목할 만한 클래식 공연들과 함께 찾아오기에, 늘 반가운 계절이다. 올해 가을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의 무반주 바이올린 리사이틀과 함께 찾아왔다. 하델리히는 2026 통영국제음악제 상주 음악가로 선정되면서 몇 차례 무대를 통해 한국 관객과 만났다. 당시 관객들이 흥분과 감동으로 써 내려간 리뷰를 읽어 보면서 나 역시도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의 연주를 여러 장의 음반과 연주 영상을 통해 접했기 때문에, 이번 무대에서 기대하는 것은 뛰어난 기교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음악적 선택이나 습관 같은 것들이 궁금했다. 한음 한음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할지에 관한 선택의 순간들, 그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음악 세계를 무반주라는 고요한 순간 속에서 더욱 세세하게 포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G. P. Telemann Fantasia for Solo Violin No. 8 in E Major
부단한 노력과 연습을 강조하던 인터뷰를 사전에 읽어서인지, 무대에 오른 하델리히의 첫인상은 성실하면서도 정직하고, 어딘가 엄격한 느낌을 풍겼다. 그리고 그의 연주도 그러한 느낌을 주었다.
첫 곡인 텔레만의 <무반주 바이올린 환상곡 8번>에서 섬세하고 부드러운 피에체볼멘테를 지나 2악장으로 들어선 순간, 활은 경쾌한 리듬으로 낮은음과 높은음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두 성부를 빠르게 오가는 순간에도 음정이 굉장히 정확했다. 음정뿐 아니라 리듬, 음량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어쩌면 강박적으로 정확한 듯한 연주였지만 이상하게도 기계적이기보다는 힘을 전혀 들이지 않는 듯 자연스럽게 들렸다.
마치 기차를 타고 여행할 때 기차의 안전을 확인하고 나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창밖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안심할 수 있는’ 연주가 음악에서 어떤 풍경을 발견하고자 하는 여유를 마음속에서 솟아나게 했다고 해야 할까. 그는 어려운 음악을 쉽게 들리게 하는, 그래서 관객이 온전히 집중할 때에만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음악적 풍경들을 마주하게 하는 비르투오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Coleridge-Taylor Perkinson Louisiana Blues Strut :A Cakewalk for Solo Violin & Blue/s Forms for Solo Violin
뒤이은 퍼킨슨의 <루이지애나 블루스 스트럿: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케이크워크>와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Blue/s Forms>는 이번 공연에서 가장 관심이 가던 작품으로, 2025년 오푸스 클래식 상을 수상한 하델리히의 가장 최신 음반인 에도 수록되어 있었다.
부제인 '케이크워크'는 19세기 미국 남부의 노예들이 백인 지배 계층의 사교춤을 흉내 내는 풍자적인 몸짓을 담고 있다. 따라서 당김음 리듬을 지닌 주제가 반복해서 나타나는데 하델리히는 탄력적인 리듬감과 악센트, 즉흥적인 억양을 풍부하게 살리며 신선한 율동성을 불어넣었다.
블루스의 느낌이 더욱 짙은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Blue/s Forms>는 첫 화음부터 음이 미끄러지듯 시작해 계속해서 음을 미끄러뜨리고, 살짝 뒤틀리며 튕기는 듯한 리듬이 음과 음 사이에 특히나 집중하게 만들었다. 음이 시작하고 휘어지며 마침내 도착하는 그 흐름들을 계속해서 의식하다 보니 선율은 마치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이미 침묵하고 있으면서도 더 깊은 침묵을 요구받는 듯했다. 무엇 하나라도 닿는다면 거대한 파문이 일어날 것 같은, 잔잔한 수면 위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하델리히는 간질이는 듯, 때로는 큰 울림으로 마음을 건드리는 섬세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블루 노트와 즉흥적인 선율이 만들어내는 굉장히 독특한 선율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맴돌면서 떠나지 않았다.
E. Ysaÿe Sonata No. 5 for Solo Violin in G Major, Op. 27
이번 무대가 무반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 두 번 있었다면, 첫 번째는 하델리히가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Blue/s Forms>를 연주할 때였고, 두 번째는 바로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을 연주할 때였다.
음악은 두 개방현이 만들어내는 완전 5도로 시작해 처음에는 정적인 분위기를 이루다가 조금씩 밝아지며 점차 움직임을 향해 나아가 작품의 표제인 ‘새벽’을 연상시켰다. 하델리히는 오른손으로 만들어내는 선율 위에 왼손 피치카토를 더하고, 아름다운 아르페지오를 펼치면서 한 대의 바이올린만으로 오케스트라적인 밀도와 풍부함을 만들어냈다. 아득한 새소리가 실제로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잠시 인상주의적인 색채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에 흠뻑 빠졌다.
J. S. Bach Partita for Solo Violin No. 2 in d minor, BWV 1004
마지막 순서로는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바흐 생전에는 출판되지 못했다가, 사후 약 반세기가 지난 1802년 안나 막달레나의 필사본을 바탕으로 여섯 곡이 한데 묶여 처음 인쇄되었다. 파르티타는 춤곡들을 묶은 모음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흐는 알라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 네 개의 춤곡에 앞선 네 악장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긴 규모의 샤콘느를 추가했다.
바이올린 음악사의 정점으로 꼽히곤 하는 샤콘느에 대해 하델리히는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64개의 변주 위에 차례로 떠오르는 고통과 슬픔, 사색과 환희의 흐름이 삶의 여정과 닮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때문에 그가 샤콘느를 통해 어떤 삶의 표정들을 보여줄지 특히 기대가 되었다.
우아하고 차분하게 시작하는 알르망드, 조금 더 경쾌하게 움직이는 쿠랑트, 깊은 어둠이 느껴지는 느린 박자의 사라방드, 춤곡 리듬이 두드러지는 활기찬 지그를 지날 때마다 하델리히는유연하게 음색을 변화시키며 각자가 가진 개성을 뚜렷하게 전달해 주었다. d단조라는 조성과 음역, 화성 진행, 선율의 성격 때문에 춤곡임에도 약간은 어두운 성격을 띠는 곡들에서도 저마다의 생명력이 살아있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샤콘느에서는 앞선 곡들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욱 다채로운 표정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d단조로 시작해 D장조를 거쳐 다시 d단조로 돌아오는 구조는 인생의 순환을 닮아 있기도 하고, 네 개의 춤곡을 거치며 쌓아온 정교한 건축물을 장식할 아치형의 지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델리히는 이중음의 묵직한 울림으로 시작해 점차 빠른 아르페지오와 유려한 스케일을 더하며, 거대하면서도 다양한 표정이 새겨진 하나의 지붕을 만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흐의 작품을 차갑다고 말하지만 나에게 바흐는 언제나 뜨거운 것이었다. 하델리히가 샤콘느를 통해 만들어낸 아름답고 견고한 아치형의 지붕은 앞선 네 개의 춤곡으로 정교하게 쌓아올린 뜨거운 건축물 위에서 반짝였다.
연주가 끝나고도 하델리히는 그 여운의 순간을 오래 이어갔고 관객 누구도 그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모두가 깊은 울림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음악 자체가 충분히 말할 수 있다면 감정을 과장하거나 연기할 필요가 없다는 그의 철학처럼, 이번 무대에서도 그는 특유의 장인적인 진지함으로 불필요한 제스처들을 모두 걷어내고 음악만이 전하는 강한 울림을 남겼다. 엄밀하고 정직한 연주는 오히려 음악이 유연하고 자유롭게 들릴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부러울 만큼 아름다운 그의 예술적 세계를 경험하는 일은 벅차면서도 귀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가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보여줄 모습들이 더욱 기대되었다. 예정된 바에 따르면 그는 2027년 1월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주간을 시작으로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 연주 사이클에 돌입한다고 한다. 6월에는 다니엘 하딩의 지휘 아래 빈 필하모닉과 협연하고, 이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등 세계 유수의 오게스트라와 협연을 이어간다. 또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의 듀오 리사이틀 투어도 예정되어 있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연주를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