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칵. 우연히 재생된 플레이리스트에서 나오는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한참 추억 속에 묻어두었다가 몇 년 만에 다시 꺼내 듣는 먼지 쌓인 음악. 반가운 멜로디 위로 겹쳐지는 그때 그 시절의 나. 사람들은 종종 플레이리스트나 유튜브 음원 댓글로 각자가 가진 오래된 추억을 꺼내놓는다.
음악에는 향수가 깃든다. 특정 시기에 많이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들으면 그때 내가 자주 걷던 거리, 함께 시간을 보내던 사람, 당시 나를 지배하던 감정이나 기분이 떠오른다.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온몸의 감각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실제로 음악이 개인적인 기억을 끌어내는 데 강력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특정 음악을 듣는 순간 음악에 저장되어 있던 특정 시기와 장소, 사람, 감정에 대한 기억이 함께 돌아오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기에서 초기 성인기에는 중요한 사건과 성장 과정을 겪으면서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그 시절 함께 듣고 자라온 음악은 마치 기억을 저장해놓은 메모리칩과도 같다. 메모리칩을 뇌에 연결하면 한동안 잊고 있던 당시의 기억이 아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한 해의 차트를 휩쓴 인기곡은 어떨까. 찾아 듣지 않아도 거리와 가게, TV와 인터넷 어디에서나 흘러나오던 메가 히트곡은 우리에게 어떤 기억을 불러올까.
우리 모두는 같은 노래를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사람과 함께 들었다. 각 음악에는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간 사람들이 공유하는 집단 기억과 개인에게만 존재하는 자전적인 기억이 혼합되어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2010년부터 2025년까지 5년 간격으로 연간차트 1위곡을 다시 들으며, 그 시대에 대한 회상에 잠겨보고자 한다. (차트 순위는 월간 사용자 수가 많고, 연간 차트를 제공하는 플랫폼인 멜론을 참고했다.)
2010년 1위곡: Bad Girl Good Girl – Miss A
2010년은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해였다. 갤럭시 S가 출시됐고, 같은 해 등장한 카카오톡은 문자메시지를 대신하는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가요계에서는 2세대 아이돌이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 티아라, 2NE1을 비롯한 걸그룹들이 앞다투어 히트곡을 내놓았고, 그해 데뷔한 미스에이의 〈Bad Girl Good Girl〉은 연간차트 1위에 올랐다. 이 시기의 아이돌 음악에는 누구나 기억하고 따라 할 수 있는 포인트 안무가 빠지지 않았다. 〈Bad Girl Good Girl〉 역시 바닥에 다리를 흔들던 안무가 먼저 떠오른다.
2015년 1위곡: Bang Bang Bang – BIGBANG
2015년 가요계에서는 빅뱅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빅뱅은 ‘MADE’ 프로젝트를 통해 몇 달에 걸쳐 두 곡씩 신곡을 공개했고, 발표할 때마다 음원차트 상위권을 점령했다. 그 가운데 ‘뱅뱅뱅’이 멜론 연간차트 1위를 기록했다.
당시 6월 1일에는 빅뱅의 '뱅뱅뱅'이 공개됐고, 이틀 뒤인 6월 3일 엑소의 'LOVE ME RIGHT'이 발매됐다. 두 팀의 신곡이 몇 달간 엎치락뒤치락하던 음원 차트가 기억에 남는다. 스마트폰과 SNS가 일상화되고, 음원 플랫폼을 통해 스트리밍 형식으로 음악을 즐기게 되면서 음원 차트 순위가 매우 중요한 지표로 여겨졌던 시기이다.
2020년 1위곡: 아무노래 – ZICO
2020년은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전반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해이다. 팬데믹 시대가 문을 열면서 급격한 디지털화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었다.
지코의 ‘아무노래’는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1월 13일 발매됐다. 발매 직전 공개된 ‘아무노래 챌린지’는 짧고 기억하기 쉬운 안무를 중심으로 SNS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후 케이팝 산업에서 오프라인 활동이 크게 제한되면서 SNS를 통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챌린지는 필수적인 음악 홍보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지코는 자신이 이정도의 파장을 일으킬 것을 예상했을까? 당시 코로나19가 이 정도로 확산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아마 지코도 챌린지를 만들 때는 가벼운 마음이었을 거다.
2025년 1위곡: Drowning – WOODZ
콘텐츠 과잉 시대에 개인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숏폼과 릴스처럼 짧고 확산력이 강한 콘텐츠를 통해 신곡뿐 아니라 몇 년 전 발표된 음악도 알고리즘을 타면서 역주행 아티스트들이 다수 생겨났다.
2025년 그 주인공은 우즈의 'Drowning'이었다. 2023년에 발표된 곡이지만 2024년 10월 <불후의 명곡> 국군의 날 특집 무대가 화제가 되면서 밴드 세션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클립 또한 알고리즘을 탔다.
나만 알던 가수가 언제부터 이런 대형 가수가 되어버린 건지. ‘Drownig’이 차트 상위권을 차지한 것을 처음 봤을 때는 좀처럼 믿기 힘들었다. 세상의 흐름은 너무 빠르고,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음악은 하나의 청각적 자극에 불과하지만, 장소와 사람, 계절과 감정,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까지 여러 감각이 뒤섞인 복합적인 기억으로 변환된다. 한 곡의 음악을 다시 듣는 것은 어쩌면 그 노래와 함께 지나온 한 시절을 다시 재생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가. 이 음악들을 다시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