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22년 나의 달팽이관을 책임진 [음악]

음악들에게 헌정하는 글입니다
글 입력 2023.01.0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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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음악을 주로 어디서 언제 자주 듣냐고 묻는다면 ‘학교 가는 대중교통 안’이라 답할 것이다. 금 같은 시간이 삭제되길 바라는 유일한 곳이다. 학교와 집의 거리가 멀어 하루 2시간 이상 통학하는 나에게 에어팟과 음악은 무인도에도 가져갈 보물에 버금가는 존재다.

 

사춘기 시절 최대 관심사는 음악이었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벗어난 지금, 그때만큼 음악이 내 삶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특정 분야의 음악을 집요하게 찾아 듣는 리스너는 되지 못한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마음에 새겨 넣을 가치가 있는 곡은 항상 구비해 놓는 편이다. 음악이 여전히 나에게 가치 있는 이유는 추억과 감각을 저장해주는 응집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노래를 듣고 과거 나의 모습을 떠올리는 경험을 누구나 겪지 않는가? 나의 경우, 어떤 음악을 들으면 과거 느꼈던 감정과 장착하고 다녔던 페르소나까지 떠오른다.

 

시간을 삭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음악을 여겨왔던 과거의 나를 청산하고, 삶에 음악이 필요한 이유를 계속해서 찾아내기 위해 2022년에 즐겨 들은 음악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과거의 나를 회상하며, 숨듣명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 이상 과거 듣던 음악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음악을 굳이 도전하지 않았던 올해 초, 나는 과거의 내가 자주 들었던 음악에게 돌아갔다.

 

 

 

 

Make up - Avril Lavigne

 

사춘기 시절 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보이시한 옷을 입던 에이브릴을 동경하던 소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남들과 분리되는 특별한 기분을 가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꽤 유치하고 부끄럽지만, 사춘기 시절 자주 들어 놓은 음악이 있어 감사하기도 하다. 오래된 일기를 펼쳐 읽는 것 마냥 부끄러운 지난날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도 결국엔 나니까. 또 지금의 나와 그 시절의 내가 다르다는 것은 본인이 계속해서 성장해가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의 음악을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2022년은 그가 1집을 발매하고 20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였다. 따라서 본 앨범에 수록되지 못한 미공개 곡을 포함한 기념앨범이 발매되었고, 과거 나를 회상하며 미공개 곡들을 반복하며 들은 기억이 난다. 'Make up'은 나를 포함한 라빈의 팬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그 시절의 라빈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를 담은 곡이다.

 

 

 

 

내가 마녀가 된 이유 - NS윤지

 

‘숨듣명’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숨어서 듣는 명곡이란 뜻으로, 주로 2010년 발매된 케이팝 곡을 아직 듣는 이들이 많아지자 생겨난 유행어이다. 카카오톡 프로필 뮤직에 추가하거나 남들에게 추천하기엔 부끄러운 구석이 존재하는 곡이지만, 시간을 내어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할 만한 가치는 충분한 곡을 가리킨다.

 

숨듣명들은 최신 가요가 아니란 점에서 묘하게 촌스러운 가사와 비트를 갖고 있다. 하지만 과거 향수와 추억을 가져오는 힘이 있는 곡들로, 이들은 이상한 도파민을 내뿜기에 한창 손이 자주 갔던 곡들이다.

 

 

 

힙합을 엠넷에서 배운게 죄는 아니잖아!


 

엠넷은 평소 ‘암넷’이라 불리며 시청자들의 원망을 가득 삼는 곳이지만 사실 엠넷만큼 음악의 중요성을 꿰뚫은 채널은 아직까지 없는 것 같다. 음악 채널에 걸맞게 대중음악을 주요 소재로 삼는 프로그램을 보이는데, 이들이 방송을 통한 음원 수익으로 이득을 보는 면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특히 ‘스트릿 댄스 파이터 시리즈’와 ‘쇼미더머니 시리즈’는 음악을 중심 소재로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프로그램이기에 음악과 한 층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

 

 

 

 

Hip Hop Hooray - Naughty By Nature

 

올해 여름 <스트릿 맨 파이터>를 시청하며 춤의 매력을 깨우쳤다. 춤은 여타 장르보다 역동적이고 눈에 띈다는 점에서 음악을 들리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장르이다. 그리고 이 생각을 관철시킨 것은 댄스 크루 '뱅크투브라더스'의 메가 크루 미션인데, 그들의 퍼포먼스가 나오기까지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현명한 음악선택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Diamonds - 블라세 (feat. 릴보이)

 

매 시즌 <쇼미더머니>를 챙겨보는 사람으로서, 항상 쇼미가 방영할 즈음 힙합 음악을 더 찾아 듣게 되는 것 같다.

 

나를 포함하여 힙합에 문외한인 이들에게 그들의 문화를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쇼미는 가치 있는 프로그램이다. 반면 쇼미가 필수 래퍼 등용문으로 변모했다거나, 힙합 문화를 방송이라는 권위가 쥐여 잡는 모습 등을 보면 완벽히 건전한 프로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쇼미더머니가 없었더라면 힙합 문화가 엄연한 대중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당신께 - 넉살

 

넉살의 앨범 <당신께>는 나의 22년 12월에 자리하고 있다.

 

과거 나에게 1년이 지난다는 건 그저 새로운 달력과 다이어리를 사는 것밖에 의미하지 않았다. 12월에서 1월로 넘어간다고 해서 갑자기 눈이 녹고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날짜가 바뀌는 것 외엔 큰 변화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맞는 첫 번째 연말은 달랐다. 주변인들과 약속과 시간을 만들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이상적인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단 걸 깨달았다. 표현 못 하는 성격을 핑계 삼아 밀어두었던 사랑을 ‘연말’이라는 분위기를 빌려 전하는 경험을 하였다. 연말이 가슴 뛰는 이유는 이런 이유 때문이구나.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 가장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계기가 되어주니, 세상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연말은 꽤 역설적인 고마운 존재인 것 같다.

 

 

 

스포티파이를 시작하며, 새로운 발견



날씨가 조금씩 쌀쌀해지기 시작할 즈음, 멜론 계정을 삭제하고 스포티파이를 시작하였다. 스포티파이는 재생목록에서 지정된 음악 청취가 끝나면 나의 취향을 간파하여 비슷한 노래를 이어서 들려주곤 하는데, 이 기능 덕에 꽤 귀가 즐거운 경험을 하였다. 꽤 뻣뻣하던 내 음악 취향에 기름을 부어준 기능이다.

 

 

 

 

슬롬 -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호기심에 듣기 시작했던 그의 앨범 ‘Weather report’는 사실상 나의 2022년 9월 달팽이관을 책임진 앨범이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곡은 위 곡으로, 빛과 소금의 원곡을 슬롬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버전이다. 이 곡을 집중해서 끝까지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 한쪽이 처연해진다. 마치 절정을 향해 달려가던 영화가 허무하게 맥을 끊고, 아무런 여지없이 올라가는 크레딧을 보는 느낌이다. 특별한 과장됨 없이 무언가의 완결함을 엿보는 느낌도 든다.


 

 

 

I don’t want to be your dog - 도시고독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 - 김사월

 

데뷔한 지 족히 10년은 넘은 밴드의 음악만을 듣던 완고한 나는 부끄럽게도 신생 밴드와 인디 음악에 대한 일종의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던 것 같다.

 

 

 

 

Hype Boy - 뉴진스

 

2022년 일명 여자 아이돌 전성기가 시작되며 대중문화로서 케이팝의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짐을 느꼈던 해이다. 그중 나에게 어떤 그룹에 호기심을 갖냐고 묻는다면 뉴진스를 답하겠다. 디렉터 민희진의 색깔이 짙게 묻어나는 그룹이기에, 뉴진스에 대한 애정은 민희진 디렉터에 대한 어느 정도의 존경 또한 내포한다고 본다. 그의 결과물이 사랑받는 이유는 머릿속에서 그려온 바와 실제로 실현한 바의 간극이 적기 때문이지 않을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란 말이, 뉴진스와 민희진을 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새로운 발견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귀소(?) 본능


 

종종 ‘듣게 된다’라는 표현보다 ‘찾게 된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음악들이 있다. 음악 향유에 있어서 꽤 유연함을 보였던 2022년이었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찾아 들은’ 곡들이 존재한다.

 

 

 

 

Stop whispering - Radiohead

 

라디오헤드의 모든 행보를 애정한다. 2022년의 내가 가장 좋아했던 앨범은 그들의 첫 정규인 'Pablo Honey' 이다. 특히 2학기 개강 후 이 앨범을 반복 재생한 기억이 나는데, 덕분에 1집을 들을 때마다 당시 피부로 느꼈던 모든 것들이 상기 되곤 한다. 내게 있어 22년도 2학기는 잊지 못할 가장 행복한 시기로 자리 잡았는데, 그 자리 곁에 '파블로 허니'를 둘 수 있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 굳이 사진첩과 일기를 꺼내 보지 않아도 지난날을 감각적으로 되짚어 볼 수 있는 건 꽤 큰 축복인 것 같다.

 

 

 

 

자우림 - Starman

 

 

 

 

자우림 - 슬픔이여 이제 안녕

 

자우림의 음악은 10월의 나에게 버팀목으로 존재하였다. 당시 일상이 뒤바뀌는 건 한순간임을 깨달은 경험을 했다. 외출할 때마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동기들도 친구들도 외면하고 혼자를 택했던 짧은 시기가 있었다.

 

뒤바뀐 일상에 묵묵히 적응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기에 한참 우울에 젖어있을 순 없었다. 그런 나에게 도움이 됐던 것은 우울함과 직면한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는 생각이었다. 이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데 큰 도움이 됐던 건 삼청동에서의 전시와 자우림의 5.5집이었다. 그들의 음악과 구제에 큰 고마움을 느낀다.

 

 

 

2023년 첫 곡 - 가장 근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


 

 

 

Let it be - Beatles

 

렛잇비의 가사를 읊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 정도로 위대한 가치를 지닌 곡이라 생각한다. 사실 '렛잇비'는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이다.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미 수도 없이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여유를 언제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곡은 그런 의문을 너무나 쉽게 풀어주는 곡이다. 마치 모든 일이 꽤 괜찮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곡이다.


 

When the night is cloudy there is still a light that shines on me

Shinin' until tomorrow, let it be

I wake up to the sound of music,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우리에게 바뀐 건 그저 날짜뿐이지만, 마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듯 머릿속에선 이미 작년과 올해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여유를 갖고, 나를 찾는 ‘렛잇비’스러운 2023년이 되길 염원한다. 그리고 더 많이 표현하자 사랑을!

 

 

[김윤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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