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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무엇이 이 공연을 완성시켰을까 [공연]

조명을 잘 썼다는 공통점, 맥시멀리즘과 미니멀리즘이라는 차이점, 그리고 시사점

by 권혜선 에디터
2026.09.2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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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은 수많은 요소의 집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연극의 6요소로 ‘플롯, 행동, 인물, 언어, 의미(주제), 음악, 시각적 요소(스펙터클)’를 설명했다. 공연은 하나의 요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부터 지금까지 연극의 6요소는 공연의 효과를 위해 서로 맞물리며 공연을 완성해 간다. 물론 요소들이 모두 공평하게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연출가의 의도에 따라 특정 요소가 부각될 수도, 특정 요소가 희미해질 수도 있다.


      뮤지컬 <난세>와 연극 <알테르 에고>는 6요소 중 ‘스펙터클’이 강조된 작품들이다. 두 작품은 특히 시각적 요소 중에서도 ‘조명’이 적극적으로 사용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두 작품은 다른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조명을 사용하는 색채와 정도, 의도에 따라 극의 분위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조명의 다채로움을 기준으로 최대인 것을 '맥시멀리즘'이라고 칭한다면, 반대로 그 정도가 최소인 것을 '미니멀리즘'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당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일이에요 - 연극 <알테르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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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시작되기 전, 긴 암전과 함께 불명확한 말소리들이 공간 안에서 휘몰아친다. 혼란스러운 소음을 뒤로하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한 아이를 엄마가 다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이의 기행을 그의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는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외치지만 거짓말 취급을 받는다. 이후 불이 켜지면 윌버 박사가 보이고, 한 남자가 수갑을 차고 텅 빈 공간에 앉아 있다. 추후 우리는 처음에 들었던 아이의 음성이 그 남자의 것임을 알 수 있다.


      남자는 본인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스탠리’로, 자신이 뛰어내려 자살하려다 이곳에 끌려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인지하고 있는 것과 현실은 다르다. 남자는 자살 문제가 아니라, 많은 여성을 납치 및 강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믿을 수 없다는 스탠리의 말에 윌버 박사는 피해자들이 일제히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는 신문 기사를 보여준다.


      스탠리는 정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을 벌인 것인가. 윌버 박사는 믿기지 않는 그의 말들을 의심하며 정신감정을 시작한다. 극 초반부의 윌버는 그의 ‘인격들’의 존재가 혐의를 피하기 위한 ‘연기’라고 여겼다. 자신을 도와달라는 스탠리의 부탁에도 단호하게 정신감정만 할 것이라고 답하던 윌버 박사는, 극의 중반부부터 스탠리와 함께 감정의 동요를 겪는다. 두 사람이 계속해서 휩쓸리고 주도하기를 반복한 끝에, 윌버는 스탠리 내면의 어린아이 ‘대니’를 만나 그의 고통의 근원을 찾아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과거 창고에서 새아빠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는 것이 그녀의 목표가 된다.

       

      윌버는 스탠리의 여러 인격과 마치 ‘심리 추리 게임’을 하는듯하다. 윌버가 탐정이고, 추적 대상인 스탠리를 심문해 진실을 끌어내야 하는 게임 말이다. 그녀는 각각의 인격을 알아내어 기록하고, 인격들의 ‘내부 규칙’을 파악하고, 대화를 통해 인격 너머의 진실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공연은 주인공 스탠리가 ‘나’라는 존재를 알아냄으로써 고통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결말에 이르기는 하나, 극의 비중상 다중인격을 지닌 스탠리의 ‘치유’보단 ‘추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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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테르 에고>는 언제 다른 인격으로 전환될지 모르는 스탠리의 불안정성, 그리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잊어버리려는 스탠리와 알아내고자 하는 윌버 사이의 긴장감을 감각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조명’이 위태로운 감정과 상황을 시각화한다. 그전에 ‘무대’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알테르 에고>의 무대는 새하얗다. 작은 의자, 테이블, 그리곤 순백의 공간이 전부다. 인물들도 단 두 명이므로 그 공간의 여백은 더 두드러진다. 순백의 무대를 자세히 살펴보면 벽면에는 칸들이 나누어져 있다. 흰 캔버스 같은 무대를 색채로 채우고 싶은 욕심이 과연 없었을까. 그러나 연출은 최소한의 배우와 최소한의 색감과 조명을 사용하는 것을 택했다.


      공연의 연출은 서사와 상당히 밀착해 있어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다. 해리성 인격장애를 지닌 인물 스탠리는, ‘조명기의 주도권을 얻으면 해당 인격이 자리를 차지하고 나타난다.’라는 규칙을 설명한다. 이 규칙은 언어적으로, 시각적으로도 관객에게 학습된다. 조명기에 대해 설명할 때 동그란 조명은 객석 쪽을 비춘다. 그 순간 관객들은 방마다 숨겨져 있는 스탠리의 인격 중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한 연출은 인격이 바뀌기 전마다 벽의 칸들에 빛과 그림자가 스르르- 지나가는 전조 증상을 보여주며 조용히 예고하고 있다. 그 직관적이고도 분명한 연출 ‘패턴’이 반복될수록 관객은 몰입하게 되고, 스탠리의 다음 인격을 기다리며 윌버 박사처럼 긴장하게 된다.


      스탠리가 허상으로 본 불길을 표현하는 순간을 제외하면, 공연은 대부분 ‘흑과 백’만을 사용한다. 덜어낸 무대일수록 조명을 잘 입는다. 그 때문에 화려한 색의 조명들이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쉬우나 <알테르 에고>는 과감히 욕심을 버렸다. 덕분에 그림자를 포함한 핵심 연출이 더 강조되는 효과가 있다. 일관성과 미니멀리즘을 최적화시킴으로써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선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넘치지 않는 것’이 주는 긴장감, 그것이야말로 <알테르 에고>의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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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이러한 미니멀리즘은 지나치게 매끄러워 미끄러질 우려가 크다. 이때 연출 이외의 포지션에서 ‘잡히는 것’이 있도록 물성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알테르 에고>는 배우들이 그 역할을 해낸다. 무대 자체가 비워질수록 공연을 주도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스탠리 역의 정휘 배우는 공연의 핵심인 각 인격과 전환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도록 연기했다. 성인이 되어 관객이 기습당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뾰족하게 굴다가, 순진한 아이가 되어 고분고분한 말투를 쓰며 부드러워지기도 한다. 표정, 말투, 자세 등등의 유동적이면서도 분명한 변화는 ‘내 안의 너무 많은 나’의 존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윌버 역의 황은후 배우 역시 고고한 박사의 모습부터 자신의 속내를 들켜 기습당하는 순간 침착해지려 애쓰는 모습, 과거의 트라우마를 알아가며 연민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 모습을 연기로 구현하며 서사의 포인트들을 만들어준다.


      <알테르 에고>라는 이인극은 분명 완성도가 높다. 흥미로운 서사에 좋은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과 교본처럼 완벽한 조명 연출을 보고 싶다면, <알테르 에고>를 추천한다. 다만 구현되지 못하고 말로만 언급되고 넘어가는 인격들이 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배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본상 23명에 달하는 인격들 모두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패턴화된 서사 대신 다른 문제의식과 색다른 결론을 내려주었다면 어땠을까. 흥미로운 소재를 두고도 작가가 만든 서사와 극이 주는 메시지가 다소 아쉽다.

       

       

       

      그대를 태우고 내가, 내가 왕이 되리니 - 뮤지컬 <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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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알테르 에고>가 덜어냄의 미학을 보여주었다면, 뮤지컬 <난세>는 그 반대의 성격을 띠고 있다. <난세>는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함께 새 나라 ‘조선’을 건국하기 위해 힘썼던 이방원과 정도전의 이야기를, 두 사람의 갈등과 화합에 초점을 맞추어 다룬 뮤지컬이다. 두 사람은 역사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바가 분명하므로 캐릭터화하기도 쉽다. 현실과 이상, 무(武)와 문(文)의 대립과 조화는 한 번쯤은 생각해 보기 좋은 주제이므로 제작자로선 극을 올릴 명분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예전부터 너무 많이 두 사람의 이상관과 현실관에 대해 고민해 봐서 그런가, 플롯 자체가 익숙하다 못해 다소 진부한 것이 되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 누구나 아는 대사(하여가, 단심가 등), 누구나 아는 인물의 집합에는 새로운 것이 그다지 없다. 아무리 역사에 관심이 없어도 정도전이 나라의 기틀을 세웠고 이방원이 왕자의 난으로 왕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실화, 역사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뮤지컬 <난세>도 제작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역사를 다룬 극의 난관을, 공연은 지루하지 않은 ‘연출’과 관계의 ‘재조명’으로 타파하고자 했다. 대립하는 관계성을 시각적 재미를 통해 직관적으로 구현해 지루하지 않게 만들려고 노력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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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과 의상이 그 노력의 대표적인 부분이다. <난세>는 두 사람을 상징하는 색을 일대일로 부여하고 있다. 공연에서 적색(붉은 계열)은 이방원, 청색(푸른 계열)은 정도전을 비춘다. 의상 역시 대비의 궤를 같이한다. 색뿐만 아니라 옷의 안과 밖까지 다를 정도로 분명하게 ‘다름’을 표하고 있다. 정도전은 흰색 안에 푸른 옷을 받쳐입었고, 이방원은 붉은 옷 안에 검은 옷을 받쳐입었다. 왕이 쓰러진 날 밤 정도전을 죽이겠다는 작전을 펼칠 때만 검은 옷 안에 붉은 옷을 받쳐입는 것으로 바뀐다. 본심을 숨기고 작전을 수행하는 이방원의 심리를 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붉은색은 ‘힘의 색’이다. 시선을 사로잡고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색이다. 주로 열정, 위험, 긴장감을 상징한다. 또한 진홍색은 서양 중세에서 오랫동안 위엄과 권력의 표상이었다. 이는 베네치아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 총독이 진홍색 옷을 입고, 사슴뿔 모양의 진홍색 공식 총독 모자를 쓴 것에서 비롯되었다. 옷과 모자를 케르메스 일리키스를 말려 얻은, 고가의 붉은색 염료로 염색한 것이다. 따라서 빨강이야 말로 이방원의 권력욕과 끓어오르는 인정욕구, 열정 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색이다.

       

      푸른색은 ‘책임감’과 ‘신뢰감’을 나타내는 색이다. 주로 차분함과 믿음, 지성을 상징한다. 파란색은 평온함, 책임감과 연관되어 있어 신뢰와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기업 브랜딩에도 널리 사용된다. 이는 태조의 믿음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혼란스러운 난세를 극복하고자 했던 정도전의 이성적인 면과 맞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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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내 두 가지의 색과 빛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이상을 함께 그릴 때, ‘백색’의 밝고 따뜻한 조명이 공간 전체를 밝힌다. 첨예한 갈등이 지속되다가도 플래시백이 이루어지며 그들이 평화로웠던 과거가 꿈처럼 그려진다. 다시 말해 전체적으로 두 사람이 난세에서 대립하는 서사를 가지고 있되, 중간중간 두 사람의 과거 밝고 화기애애했던 순간들을 돌아보게 되는 구성이다.


      <난세>는 그 플래시백을 통해 갈등 관계 속에 ‘동경’이란 키워드를 넣음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방원에게 정도전은 단순히 다투는 대상이 아니다. 그에게 정도전은 어릴 적부터 동경하고 함께하고 싶어 했던 스승, 그러다가 그와 나란히 선 동료이자 동지였다. 같은 목표를 지니고 있으나 실행하는 방식이 달라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라고 공연은 설명한다. 그 때문에 방원이 정안대군이던 시절에는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눈빛을 볼 수 있다.


      지방의 장군으로 있던 이성계를 정도전이 찾아왔을 때, 그때 정도전의 겉옷은 순백이다. 그 어떤 것도 때 묻지 않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옷의 색으로부터 드러난다. 과거 방원은 정도전을 믿고 따랐고, 정도전 역시 그를 애정으로 가르쳐주었다. 평화로운 사제관계였던 추억을 회상할 때는 적색과 청색의 조명이 아닌 평온한 백색의 빛이 내리쬔다. 모든 갈등이 지워지고 평화로운 과거, 함께 이상을 그리던 순간에는 내내 보여주던 화려하게 대립하는 색들도 잦아들며 잊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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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에도 공연은 다양한 상징을 이용한다. 두 인물의 다툼과 계략을 장기판과 장기말로 표현하고, 장기말이 놓이는 순간마다 ‘조명’이 비추며 짜릿함을 낳는다. 사실 장기판을 바닥에 그려 ‘짜인 판’을 은유하는 것 자체가 새롭다곤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공연은 일관성 있게 바둑판과 장기말을 밀어붙이며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정도전이 이방원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병을 해체시키고, 세자를 다른 이로 임명하는 등의 일을 하며 이방원을 옥죌 때, 바깥에 있던 의자들은 하나의 장기말이 되어 판 위로 놓이기 시작한다. 가운데에 놓인 탁자와 작은 장기판을 중심으로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는 의자들은, 상대가 받았을 압박감을 시각화한다. 놓일 때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빛을 받으며 강조된다. 방원이 정도전에게 역공을 가할 때도 마찬가지의 연출이 사용된다.


      시작부터 등장하는 두 인물의 칼춤 역시 관객의 시선을 휘어잡는 볼거리 중 하나다. 칼춤(혹은 대결)은 도입부와 후반부에 꽤 길게 등장한다. 이방원이 정도전과 대립해서 죽일 계획을 시작한 전과 후에 각자가 혼자 추는 칼춤도 있고, 둘이 대적하는 칼춤도 있다. 도입부에 시작하자마자 본격적으로 대사 하기도 전에 보여주는 이방원과 정도전이 칼을 쓰는 모습은 아름답기는 하나 장황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넓은 무대를 두 사람이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비중이 너무나도 늘어난 탓이다.


      일련의 연출 덕분에 새롭게 찾아온 2026년도의 뮤지컬 <난세>는 화려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놓치는 것들이 많았다. 정도전이 자신의 실수를 너무 ‘갑자기’ 깨닫고, 왜 이 시대를 ‘난세’라고 칭했는지조차 명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루할 틈 없는 시각적 자극과 관계성에 대한 해석은 흥미롭지만 다소 과하다. 맥시멀리즘에 서사적으로 유의미한 의도가 있고 타당한 지점이 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결국 무대를 완성하는 것은 -


       

      특정 요소를 강조하거나 줄여서 공연의 포인트를 살리는 것은 좋은 연출법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만’ 살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공연의 6요소를 꼽았다는 것은 다시 말해 모든 요소가 기본은 충족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특정 요소를 강조하거나 축소함으로써 연출가가 이루어내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으며, ‘공연은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가’이다. 공연의 척추 역할을 하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드는 핵심은 바로 ‘내용’과 관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연을 이끌어나갈 힘이 되어주는 플롯과 주제는 공연을 만들어가면서 가장 포기하지 말아야 할 지점이다. 사유는 극이 던지는 주제 의식에서 시작되며, 이는 작가가 만든 서사에서 나온다.


      오늘 살펴본 <알테르 에고>와 <난세> 역시 같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알테르 에고>는 ‘반전’이 있는 내용과 미니멀한 조명, <난세>는 두 사람의 관계성에 주목한 내용과 맥시멀한 조명을 통해 흥미를 유도하며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한편으론 주제 의식과 메시지에 부족한 점이 보여 아쉬움을 남겼지만 말이다. 두 공연이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한다면, 관객들에게 더 깊게 와닿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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