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 효과’. 좋아하거나 존경하던 유명인이 자살했을 때 자신과 동일시하여 비슷한 방식으로 자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유명인의 자살과정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리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여기서 ‘베르테르’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이름을 딴 것이다. 괴테가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을 정도로 인기가 상당했다. 소설에 묘사된 베르테르 복장을 독자들이 따라 입었고 급기야 자살까지 모방했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용어를 만날 때마다 베르테르의 위력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제목은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의 호기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워낙 고전 소설을 어려워했기에 줄거리부터 찾아 읽어봤다. 줄거리를 읽은 후, 호기심이 단번에 사라졌다. 다른 사람의 여자를 사랑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당시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그때 느꼈던 ‘이해 안 됨’이라는 감정은 선명했다. 그래서 그 소설이 원작인 뮤지컬 ‘베르테르’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났을 때,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유명 뮤지컬을 VIP석으로 가성비 있게 볼 수 있다는 점에 솔깃했고 실제로 연기를 보고 싶었던 배우가 라인업에 있다는 소식에 끌렸다. 그러면서도 선명한 ‘이해 안 됨’ 감정 때문에 망설여졌다. 그럼에도 보기로 결정했던 이유는 부딪혀보고 싶어서였다. 이참에 늘 물음표였던 베르테르의 매력을 알아보자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기대 반, 의심 반으로 빈 무대를 바라보며 시작을 기다렸다.
2025년에 돌아온 뮤지컬 ‘베르테르’는 25주년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번 시즌에는 더 심혈을 기울여 수정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프로그램북에 따르면, 더 매끄럽게 번역했고 방백장면을 베르테르 내면의 소리임을 관객이 더 알기 쉽도록 구성했다고 한다. 또 캐시와 오르카가 남녀주인공과의 드라마적 마무리를 하고, 마지막쯤에 롯데의 성장을 나타내는 장면을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발하임 마을 사람들의 개성을 뚜렷하게 표현했다고 한다.
이번 시즌에는 베르테르 역에 엄기준, 양요섭, 김민석 그리고 롯데 역에 전미도, 이지혜, 류인아, 알베르트 역에 박재윤, 임정모, 오르카 역에 류수화, 이영미, 카인즈 역에 김이담, 이봉준이 맡았다. 앞서 언급한 실제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사람은 엄기준 배우였다. 무대와 꽤 가깝고 시야도 좋아서 엄기준 배우의 연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베르테르의 순수한 면과 따스한 면, 절절함, 절망,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잘 표현해 주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훌륭했고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배우도 있었다.
극 후반부로 갈수록 배우들의 연기는 캐릭터의 감정 흐름에 맞게 격렬해졌다. 반대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편안하고, 부드러웠다. 아트인사이트에 올라온 ‘흔들리면서도 성장하는 롯데를 표현하다’ 글 중 「음악은 부드럽게 흘러도 배우들은 그 안에서 격정을 표현해야 한다고요.」라는 문장처럼 연기와 음악이 대비되어 표현됐다. 한편으로는 파스텔 색감이 떠오르면서도 검은색 크레파스로 아무렇게나 칠해놓은 스케치북이 생각나는 이 작품의 특성과 닮아 보였다.
넘버들은 한번 들으면 계속 귓가에 맴도는 중독성이 있었다. 여기에 감성까지 더해져서 듣고 있으면 마음이 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공감되는 가사도 많아서 들으면서 위로도 많이 받았다. 인상적이었던 건, 모든 넘버의 가사가 작품 스토리를 함축하여 담겨 있거나 인물의 감정이 세밀하게 표현됐다는 점이었다. 극을 안 봐도 넘버들을 다 들으면 어떤 이야기인지 파악이 가능할 것 같았다. 모든 곡이 좋았지만, 그 중 ‘반가운 나의 사랑’이 기억에 남는다. 롯데와 알베르트가 만나 행복해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보면서 베르테르가 충격, 절망, 질투에 괴로워한다. 이러한 정반대의 상황을 장조와 단조를 오가면서 표현한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연출도 좋았다. 무대 중간에 다리가 나와 위, 아래로 전혀 다른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하던 분할화면기법을 보는 듯했다. 무대뿐만 아니라 소품도 잘 활용했다. 등장인물들을 꽃으로 비유해 상징적인 오브제로 활용했다. 해바라기는 베르테르, 매혹적인 색을 가진 금단의 꽃은 롯데, 정열적인 붉은 장미는 카인즈를 의미했다. 또한 금단의 꽃은 롯데의 성장과 감정변화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감탄하고 있는 연출이 있는데, 마지막 장면의 연출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리 위에는 베르테르가, 무대의 단상 위에는 해바라기에 둘러싸인 롯데가 등장한다. 해바라기를 보면서 울고 있는 롯데 위로 베르테르는 롯데가 준 노란 리본을 권총에 묶는다. 그리고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눈다. 나는 총소리가 날 줄 알고 재빨리 귀를 막았다. 하지만 총소리로 베르테르의 죽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무대 위 해바라기들은 털썩, 쓰러지고 단 하나의 해바라기만 살아남았다. 조마조마한 채로 그 해바라기를 응시하고 있는데 한 줄기의 빛이 해바라기를 비추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리 위에 있는 베르테르를 보게 된다. 나를 포함하여 모든 관객이 숨죽여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베르테르는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해바라기마저 바닥에 쓰러졌다. 아니, 꺾였다. 보면서 아무런 장치도 없는데 어떻게 스스로 쓰러지게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앉은 기분도 들었다. 마치 베르테르라는 꽃이 꺾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안 그래도 베르테르에게 설득당하고 있었는데 그 연출로 인해 종지부를 찍었다.
사람들이 베르테르에게 빠져들었던 이유
베르테르의 이야기는 뮤지컬로도 오랫동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5주년을 맞이했다는 점과 꽉 찬 관객석만 봐도 알 수 있다. 연인이 있는 사람, 더구나 결혼까지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가 왜 그토록 인기가 많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젠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첫 번째, 주인공들의 성향은 달라도 공통점이 있었다. 흔들림이었다. 베르테르는 현실, 사랑, 죄책감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롯데는 사랑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했고, 선을 넘는 베르테르와 흔들리는 롯데를 보면서 어디까지 참아줘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했다. 세 사람 모두 마구 흔들리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켰다. 여전히 이야기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인간의 어느 한 부분을 매우 잘 그려냈다는 점이 좋았다. 인간은 누구나 흔들린다. 상황이나 사람 또는 감정에 의해서.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나’의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런 점이 작품에 잘 녹아 있었다.
두 번째, 그들은 감정에 솔직했으며, 사랑에 열정적이었다. 베르테르를 비롯한 알베르트와 카인즈의 사랑은 매우 지고지순했다. 순애보, 순정, 열정의 사랑을 했다. 베르테르는 스스로 마음을 속일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그러지 않았다. 그녀의 작은 호의에도 아이처럼 좋아하기도 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하고 슬퍼하며 사랑에 충실했다. 알베르트는 모든 상황을 다 알면서도 포용했다. 그렇게라도 롯데와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자 했다. 잠든 롯데를 보면서 불안에 떨면서도 결연한 그의 모습이 매우 안타까웠다. 카인즈는 신분 차이로 여주인을 포기하려 했지만, 베르테르의 응원에 용기를 낸다. 그리고 친오빠에게 학대당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을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 순간에도 카인즈는 후회하지 않았다.
당시에도, 지금도 그들의 용기 있는 사랑은 대중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재고 따지거나 현실에 치여 사랑을 포기하는 현시대에서 그들의 사랑은 한없이 맑고 순수하게 느껴진다. 아이의 순수함은 큰 힘이 있듯이 그들의 순애보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베르테르에게는 설득력이 있었다. 극에서 자석 산의 전설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이야기처럼 베르테르는 롯데에게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진짜 자석 산을 닮은 사람은 베르테르가 아닐까 싶다.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했고, 일방적으로 사랑 표현했다는 점은 다 잊어버리고 베르테르 자체로 보고 있었다. 롯데를 포기하려고 떠나기도 했으나 결국 롯데 곁으로 돌아온 상황,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자꾸만 커지는 마음, 알베르트를 질투하면서도 부러워하다 결국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기까지 베르테르는 점점 무너졌다. 그 와중에 자신과 동일시했던 카인즈가 사형을 당하고 곁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하면서도 선을 긋는 롯데를 보면서 베르테르는 삶의 의욕마저 상실한 것 같다. 분명히 베르테르가 자살하기 전에 많은 조짐이 있었다. 그러나 알아챈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러니 어찌 베르테르의 감정에 이입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결국 ‘이해 안 됨’은 ‘이해됨’으로 바뀌었다. 원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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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tmi
나는 인물의 서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인공의 서사가 이해되지 않으면 그 작품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번 경험을 통해 포용의 범위가 넓어졌다. 현실이 아닌 이야기일 뿐이며, 그만큼 캐릭터 자체만으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전히 베르테르의 서사가 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사람 자체로 바라보고 감정에 이입이 됐다는 건 나의 문화예술 향유 방식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