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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서로가 서로에게 - 나의 사적인 예술가 [영화]

우리는 서로를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by 정서영 에디터
2026.09.27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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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지나며 아직 기계는 눈치채지 못한 계절의 시차로 인해 지는 해로 밝은 하늘 아래 하나둘 켜지는 가로등은 이른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한다. 일 년에 아주 짧게 존재하는 이 시기에는 만남이 더 애틋하고, 헤어짐이 아쉬운 마음이 가득 채워진다. 이맘때가 되면 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있다. 1830년대 파리의 다락방에서 원고를 태워 난방하는 가난한 시인 로돌포의 이야기를 담은 <라 보엠>이다.

       

      가난한 다락방에서 추위에 떨면서도 로돌포는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 자신이 쓴 원고를 난로에 던져 넣으면서도 그는 시를 쓰고, 친구들과 예술을 이야기하며 살아간다. 올해 9월, 로돌포를 떠올리던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 또 한 명의 시인을 만났다. 뉴욕의 우체국에서 37년째 일하고 있는 에드 색스버거다.

       

      젊은 시절 시집 한 권을 세상에 내놓은 뒤 오랫동안 시를 쓰지 않은 에드는 로돌포와 달리 더 이상 자신을 시인이라 소개하지 않는다. 평소와 같이 우체국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에드 자신조차 오래전에 지나온 일로 여기고 있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찾아온다. 자신과 비슷한 모자를 쓴 젊은 남성은 낡은 시집 한 권을 들고 자신을 오래도록 기다려온 듯 서 있다. 그의 이름은 마이어스이다.

       

      자신과 같은 예술가들이 모여서 정기적으로 이야기 나누는 동료들의 모임에서 그의 시를 발견하고 자신처럼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며 모임에 초대하지만, 에드는 정중하게 감사함을 표현하되 선뜻 따라나서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에드에게 시를 쓰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시간이었고, 지금의 그는 우체국 직원으로 더 이상 새로운 시를 쓰지는 않지만 여전히 글을 매일 읽으며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제법 만족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오래된 펍에 들러 친구들과 당구를 치며 삶을 즐기고 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지금껏 잘 이어져 온 삶이다. 수십 년 전 붙여진 시인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은 뒤에도 그의 시간은 별 탈 없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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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에드가 산책 중 우연히 마이어스를 다시 만나면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번에도 반갑게 에드를 맞이하는 청년은 그가 전에 소개한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 ‘열정 클럽’으로 그를 이끌고 간다. 그곳에는 시인과 극작가, 비평가, 배우를 비롯해 예술을 사랑한다고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그들에게 에드는 그저 오래전에 시를 썼던 우체국 직원이 아니다. 세상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채 잊힌 시인이자, 자신들이 우연히 발견하며 흠모하게 된 숨겨진 대가다. 이들은 에드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어린 친구들의 열정을 조금 멀찍이서 바라보던 에드도 자신을 향한 존경과 환대를 조금씩 즐기기 시작한다. 잊고 있던 시간이 존재했음을 깨달으며 한동안 잠들어 있던 그의 예술가적 욕망도 함께 깨어난다.

       

      그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느껴졌던 것은 우아한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아닌, 에드가 퇴근 후에 늘 찾던 낡은 펍에서였다. 오래도록 당구를 치며 어울려온 친구들에게 시인이던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에드에게서 전과 다른 묘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얼마 전까지 그들과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이 어느 순간 자신과 그들 사이에 선을 긋는다. 예술가와 평범한 사람으로 구분한다.

       

      자신을 알아보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뒤 에드는 오래도록 자신과 함께한 사람들을 이전과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타인의 인정은 에드의 과거를 바꾸지 않았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시집의 상황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현재의 에드가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는 스스로 예술가인 상태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얻는 역할인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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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필요한 사람은 에드뿐만이 아니다. 열정 클럽의 젊은이들은 대중적인 것과 상업적인 것을 경계하고 있다. 가난한 다락방에서도 시를 썼던 로돌포처럼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험난한 예술의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길 원한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에는 묘하게 모순이 있다. 대중의 취향과 기존 예술계의 권위를 경계하면서도 누구보다 그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작품이 주류 문단과 언론으로부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세상이 자신들의 예술을 알아보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낡은 권위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그 오래된 예술의 계보에 속해 있다고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들에게 에드는 절묘하다.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수십 년 동안 잊혀 있었던 시인이다. 에드가 특별한 예술가일수록 그를 발견한 자신들의 안목 역시 특별해지는 것 같다.

       

      모두가 갖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을 고르고, 남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을 알아보는 행위에는 취향을 넘어 한 사람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우리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좋아했던 음악가와 아무도 모를 때 먼저 즐겨 읽었던 작가를 이야기할 때 은근한 자부심이 따라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 지점에서 마이어스는 그의 말처럼 에드의 시를 정말 사랑했던 것인지 아니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시인을 발견한 자신을 사랑했던 것일지 생각하게 된다.

       

      둘 중 하나만 진실일 필요는 없다. 마이어스는 정말 에드의 시를 좋아했을 것이다. 다만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것을 알아보는 자신의 안목을 사랑하는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뒤섞인다. 열정 클럽에게 에드는 자신들이 믿는 예술을 증명해주는 대가가 되고, 반대로 그들의 열렬한 환대는 에드에게 자신이 여전히 시인일 수 있다는 확신을 건넨다. 서로가 서로에게 ‘당신은 진짜 예술가’라고 말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관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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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를 시작하며 떠올린 <라 보엠>을 다시 생각해본다. 푸치니가 그린 19세기 파리의 젊은 예술가들은 훗날 조너선 라슨의 <렌트>를 통해 20세기 뉴욕으로 옮겨왔다. 도시와 시대는 달라졌지만 가난과 불안정한 미래 속에서도 예술을 놓지 않는 보헤미안의 모습은 오랫동안 반복되었다. 그리고 <나의 사적인 예술가>의 뉴욕에는 다시 그들의 삶을 동경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보헤미안 예술가 로돌포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글로리아다. 열정 클럽의 다른 이들이 자신이 어떤 예술가인지 끊임없이 말하며 확인받고 싶어할 때, 배우로 살아가는 그녀의 무대 밖 삶은 화려하지 않다. 충분하지 않은 수입 속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화려한 무대에 올라간다. 예술가라는 이름을 설명하는 시간에 예술 행위를 실제 세상에 나아가는 사람이다.

       

      글로리아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녀가 예술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열정 클럽은 예술과 자본을 구분하려 하지만, 실제로 예술가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작품을 만들고 누군가에게 선택되어 그 작품을 보여주며 받는 대가로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 예술과 대중과 생계는 생각만큼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글로리아는 그 불편한 현실을 살아간다. 자신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계속 무대에 오른다.

       

      처음에는 열정 클럽의 젊은이들에게서 <라 보엠>의 보헤미안을 떠올릴 줄 알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글로리아에게서 로돌포의 모습을 발견했다. 예술가라는 정체성에 취하는 대신 오늘 해야 할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 가난과 생계를 낭만으로만 포장하지 않으면서 다음 작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을 보며 자연스레 응원하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 노래하고 연기했던 사람이 다음 발걸음을 옮길 기회를 얻었다는 소식이 더없이 기뻤다.

       

      열정 클럽을 가짜 예술가라 부르고 글로리아만을 진짜 예술가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렇게 쉽게 선을 긋는 순간 관객들 역시 영화 속 인물들처럼 누가 예술가이고 아닌지를 판정하려 들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단순한 이분법적 구분으로는 영화의 주인공 에드를 설명할 수 없다. 에드는 수십 년 동안 새로운 시를 쓰지 않았다. 마이어스가 그를 발견한 순간 다시 시인이 되었고, 열정 클럽이 이후에는 다시 시인이 아닌 사람이 되는 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마이어스가 에드를 재발견하면서 예술가로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다시 바라보게 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그는 누군가에게 발견되기 전에도 시를 썼던 사람이고, 그 시간은 이후의 삶이 평범했을지라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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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원제인 ‘Late Fame’과 한국 제목인 ‘나의 사적인 예술가’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점이 흥미롭다. ‘늦게 찾아온 명성’이라는 원제가 에드에게 시선을 둔다면, ‘나의 사적인 예술가’라는 제목에서는 자연스럽게 마이어스가 떠오른다. 하나는 뒤늦게 ‘발견된’ 사람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을 ‘발견한’ 사람의 시선으로 제목이 다르게 읽힌다. 관객들은 어떤 제목에 더 마음이 갈지 문득 궁금해진다.

       

      마이어스가 가진 에드를 향한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예술가를 발견했다는 기쁨, 세상이 알아보지 못한 가치를 알아봤다는 자신의 자부심이 담긴 ‘사적인 예술가’로 시작했던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에드는 마이어스가 재발견하기 전부터 존재했고, 그의 시 역시 누군가가 다시 펼쳐보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예술가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진짜 예술가인지를 가리기보다는, 왜 그 표현을 열정 클럽의 회원들은 그토록 필요로 하는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예술가라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아무도 모르는 예술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세상의 인정과 무관하게 예술하고 싶으면서도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들은 서로 모순되지만 쉽게 떼어낼 수 없다.

       

      가난한 다락방에서 추위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쓴 원고를 불태우면서도 로돌포는 시인이었고, 대중을 만날 더 큰 무대를 만나 도시를 떠나는 글로리아는 배우이며, 수십 년 동안 시를 쓰지 않은 에드에게도 시인이었던 시간이 남아 있다. 영화가 끝나고 에드는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체국 직원 에드는 다시 평소의 자리로 돌아왔지만 이제 자신이 한때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조금 다르게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발견된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던 무언가를 다시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일상으로 돌아온 에드는 영화의 처음과 같은 사람일 수 없다.

       

      에드와 열정 클럽의 만남은 한겨울밤의 꿈처럼 강렬했고 각자의 삶에 분명한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나의 올해 여름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여름과 가을 사이, 일 년에 아주 짧게 머무르는 계절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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