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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예술가를 예술가답게 만드는 것 - 나의 사적인 예술가 [영화]

영화 <나의 사적인 예술가> 리뷰

by 서예진 에디터
2026.09.2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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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 색스버거 씨 맞죠? 그 시인 맞죠?” 뉴욕 우체국에서 일하는 에드 색스버거에게 어느 날 한 젊은 남자가 길거리에서 아는 체를 해온다. 그는 에드가 50년 전 출간한 시집을 극찬하며 그를 ‘주목받지 못한 천재 예술가’로 치켜세운다. 이름 모를 청년의 난데없는 칭찬에 에드는 마냥 기쁘고 반갑기보다 다소 당혹스럽다. 그의 시집이 발매 당시 잠깐 주목받긴 했어도 이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심지어 에드 본인에게조차 잊힌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에드의 조용한 일상에 불쑥 등장해 작은 소란을 일으킨 남자의 이름은 윌슨 마이어스. 뉴욕의 젊은 작가들로 이루어진 예술가 그룹 ‘열의의 사회’를 이끄는 그는 에드를 자신의 모임에 초대한다.


      친한 동료들조차 에드가 한때 시를 썼다는 사실을 모를 만큼 그는 평범한 우체국 직원으로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열의의 사회 멤버들은 처음 보는 에드를 문학계의 살아있는 전설처럼 대접한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열렬한 환호와 찬사 속에서 그는 예술이 자신의 전부였던 시절, 동료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밤새 문학과 인생을 논하던 젊은 날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예술가로서의 자아가 되살아나면서 그의 일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퇴근 후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주고받던 동료들이 문득 교양 없고 하찮게 보이기까지 한다. 에드는 새롭게 사귄 예술가 청년들과 교류하며 일상에 활기를 되찾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이들의 번지르르한 겉모습 뒤편에 숨어있는 허영심과 허세를 발견하고야 만다.


      열의의 사회 멤버들은 에드가 활발히 활동했던 1970년대 뉴욕을 그리워하며, 소셜미디어와 인플루언서, 기술의 발전으로 어지러워진 세상을 한탄한다. 그러나 정작 이들은 매일 소셜미디어를 염탐하고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을 내심 부러워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부모의 돈으로 마련한 호화스러운 아파트에 살면서 음성 명령으로 각종 기기를 제어하는 모순적인 모습까지 보여준다.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을 지닌 예술가의 모습을 흉내 내지만, 실상은 비싼 코트 대신 예술을 멋으로 걸쳐 입은 철없는 부잣집 자제들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은 에드에게 문학 살롱에서 발표할 새로운 시를 써달라고 요청하는가 하면, 회고록을 쓰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에드를 향한 열광을 순수한 팬심처럼 포장했으나, 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비주류 예술가를 발견한 데서 우월감을 느끼고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과시하려는 허영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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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세 가득한 청년들 무리에서 유일하게 예술가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글로리아다. 글로리아는 자신의 퍼포먼스로 사람들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는 아우라를 지닌 인물이다. 예술가로서 재능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다른 모임원들처럼 예술을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깊은 예술적 감수성과 자유분방함으로 무장한 그녀는 어디서든 빛나지만, 그 빛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써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글로리아가 다른 이들보다 더 예술가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남들보다 더 큰 재능을 지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타인의 평가와 무관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은 간절한 무언가가 있다. 예술은 그녀의 내면을 드러내는 가장 솔직하고도 유일한 언어이고, 그는 이 언어를 사용하는데 능통하다. 그렇다면 에드는 어떨까? 수십 년간 문학과 예술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문학살롱에서 발표할 새로운 시를 쓰지 못한 그도 여전히 예술가라 할 수 있을까? 예술가라는 정체성이 흐릿해질 무렵에나 그의 작품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등장했지만, 이내 그는 사람들의 열광으로 만들어진 명성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 사람들의 인정 속에서 그는 ‘숨겨진 천재’가 되었지만, 그 명성은 쉽게 부풀어 올랐다가 금세 쪼그라드는 풍선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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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는 결국 새로운 시를 완성하지 못한 채 무대 위에서 과거 자신이 쓴 시를 낭독했다. 계획에 없던 일이라 당황한 것도 잠시, 자신이 쓴 시를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그의 목소리 속에서 활자로만 존재했던 시는 생명을 얻고 되살아났다. 그 시가 재발견 될 만큼 훌륭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는 적어도 부와 명예를 위해 글 쓰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드에게는 도저히 밖으로 꺼내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내면의 소리가 있었고, 그것을 자기만의 언어로 포장해 세상에 선보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글로리아와 에드는 서로 닮아있다. 자기만의 방식대로 세상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들. 예술이란 도구를 빌려 자기 자신을 드러낼 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밝게 빛나는지, 영화는 두 사람의 작은 무대를 통해 보여준다.

       

      살롱이 끝난 후, 마이어스가 예술 커뮤니티에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살롱을 칭찬하는 후기를 올린 게 들통나면서 열의의 사회는 결국 해체된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에드를 그룹에서 가장 어린 멤버가 뒤쫓아와 붙잡는다.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재능이 있는지 봐달라는 것이다. 에드는 그에게 자신의 재능을 타인의 평가에 맡기지 말라고 답한다. 예술가를 예술가답게 만드는 것은 남다른 재능이나 뛰어난 감각, 혹은 사람들의 환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그는 안다.


      에드는 잠깐 얻은 명성을 뒤로 한 채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갔고, 글로리아는 뉴욕에서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나의 사적인 예술가>에서는 기적 같은 역주행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 자신의 노력과 재능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걷는 이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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