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AI 도움 없이 오로지 내 문장으로 써내려 가보기로 한다.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만큼 스스로에게 떳떳한 글이 완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혹여 이 글을 읽다가 AI를 감지하게 된다면, 그건 이미 내 문장이 그를 닮아버렸기 때문일 거라는 점을 미리 일러둔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
AI의 활용이 당연해진 후로 신촌문예 응모작이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나도 저 작가처럼 멋들어진 글 한 편 써보고 싶다'는 마음만 품었다면, 이제는 한 문장도 쓰기 어려웠던 사람마저 자신만의 경험과 이야기가 있으면 몇 초만에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챗지피티가 있기 이전부터 글쓰기라는 행위에 애정을 가졌던 사람들 대부분은 AI가 쓴 글에 알러지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신촌문예 심사위원들도 응모작 중 AI 특유의 문체와 패턴을 보이는 작품이 다수 존재해 아쉽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AI가 쓴 글과 사람이 쓴 글의 차이는 「예민함」이다. 아무리 글의 소재가 좋을지라도, 그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아주 깊은 생각과 순간의 감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오직 사람만이 느낄 수 있으며, 때로는 사람도 단시간에 느끼지 못하는 예민한 감정들이 좋은 글을 만든다.
AI 시대,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그렇다면, 그 감정들도 모두 녹여 AI에게 부탁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질문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도 결국은 AI가 쓴 글이기 때문에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잘 정돈된 글을 봐버렸고, 그 순간 우리는 AI가 제안한 틀 안에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 문장을 AI에게 빼앗겨버리는 셈이다. 더이상 내 생각과 감정을 고려할 기회가 없어진 것이다.
물론 그 글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챗지피티가 썼더라도 그 의미는 비슷할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글이라는 건 최종 완성본을 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도 아니다. 나의 경우, 줄과 줄 사이의 행간을 읽기 위해 쓴다. 문장으로는 표현하지 못한, 굳이 문장으로 적지 않아도 보이는 글의 행간을 읽기 위해. 정리하자면, '나'를 위해 쓴다고 할 수 있겠다.
한 편의 글이 완성되어 그 끝에 더이상 새로운 문장이 쓰여지지 않아도, 필자 혹은 독자의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글의 의미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이는 AI가 끝내 완성해 내지 못할 인간의 특출난 재능이고, 인간은 그것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행위의 이유는 결국 지금의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함이니까.
*
초콜릿을 처음 맛 본 아이가 그 달콤함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듯, 인간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는 중이다. 그리고 점점 더 빨라지는 속도에도 휘청거리지 않을 시대가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런 시대에서, 어쩌면 그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을 글을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고뇌하는 이 길이 언젠가 외로워질지라도, 되도록 오래 인간답게 살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자, 오직 내 문장으로 글을 쓰고 싶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