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경쟁으로 나의 세계가 넓혀질 때 [영화]

나를 작아지게 하는 사람이 나의 세계를 넓힐 때

by 김주하 에디터
2026.10.22 13:07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체인소 맨》의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가 그린 단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 《룩백》. 
       
       

      KakaoTalk_20261021_224945005_03.jpg

       
       
      두 친구가 서로의 등을 보며(Look Back)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담아 유심히 보면 작품 내에 등이 꽤나 많이 나오며, 대사 없이 등과 배경만으로 채운 장면만 50컷 이상이라고 한다.


      만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초등학생 후지노는 학교 신문에 네 컷 만화를 연재하며 주변의 칭찬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보다 그림을 훨씬 잘 그리는 동급생 쿄모토의 존재를 알게 된다.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쿄모토의 그림을 마주한 후지노는 열등감을 느끼고, 그를 이기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좁혀지지 않는 실력 차이와 주변의 반응 속에서 후지노는 결국 그림을 그만두기로 마음 먹는다.

       


      KakaoTalk_20261021_224945005_01.jpg

       

       

      그렇게 그림과 멀어졌던 후지노는 우연한 계기로 쿄모토와 만나게 되는데 쿄모토는 "후지노 선생님!"이라고 외치고, 3학년 때부터 후지노의 만화를 챙겨봐 왔다며 후지노의 팬이라고 고백하고, "자신은 시간에 맞추지 못해서 만화를 매주 못 올리는데, 후지노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매주 만화를 그렸다니 대단하다"며 그녀를 만화의 천재라고까지 불러준다.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던 후지노였지만, 이런 말들을 들은 후지노는 희열을 주체하지 못하고 쏟아지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춤을 추며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방만 내려놓고선 빗물도 닦지 않고 그대로 책상에 앉아 콘티를 그리며 다시금 만화를 향한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만화를 그리며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결국 어린 나이에 단편 만화를 연재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그림을 사랑했던 두 사람이 만나 만들어 내는 시너지는 혼자서는 도달하지 못했을 세계를 보여준다.

       

       

       

      1. 그림으로 시작해서 그림으로 끝나는 후지노와 쿄모토

          

      KakaoTalk_20261021_225116229.jpg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그림으로 시작해 그림으로 끝나는 둘의 인생이 무척 인상 깊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믿고 몰두하며, 그 마음을 따라 묵묵히 나아가는 모습이 정말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사실 나 역시 어릴 적 그림작가를 꿈꿨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좋았고, 언젠가는 그림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림을 계속 그려도 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내가 그만큼의 재능이 있을까?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가 계속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결국 나는 그림을 취미로 남기기로 했다. 후지노가 쿄모토를 이기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재능의 벽을 마주하고, 주변의 반응과 현실적인 고민 속에서 그림을 잠시 멈췄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두 사람의 상황과 나의 경험이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으면서도 스스로의 가능성을 의심했다는 점에서 후지노의 마음이 이해됐다.

       

       

       

      2.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KakaoTalk_20261021_225744608_01.jpg

       

       

      그림을 그리는 일이 싫어져서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과연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더 깊이 도전해 보기도 전에 먼저 겁을 먹었던 것 같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내가 부족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였고, 노력해도 그 사람을 따라잡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예 다른 길을 선택했다. 지금도 그때 조금 더 도전해 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다.


      그렇기에 후지노와 쿄모토의 관계가 더욱 인상 깊게 다가온다. 후지노에게 쿄모토는 자신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경쟁자였다. 자신의 부족함을 확인하게 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쿄모토는 후지노가 혼자서는 경험하지 못했을 세계로 나아가게 해 준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만나면 자신의 부족함부터 확인한다. 저 사람처럼 잘할 수 없을 것 같고,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기도 한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섣불리 겁을 먹고 포기해 도망치는 것보다 그 사람을 바라보며 배우고, 내가 나아갈 수 있는 세계를 넓혀 가는 것이 더 맞는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노력한다고 해서 언제나 누군가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가 가진 재능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 사람을 이겨야만 의미 있는 성장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따라잡기 위해 시작한 노력이 이전의 나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고, 혼자였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3. 경쟁은 나의 세계를 넓히는 일이 될 수 있다

        

      KakaoTalk_20261021_224945005_02.jpg

       

       

      후지노와 쿄모토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사랑했지만, 서로의 존재를 통해 더 넓은 세계를 경험했다. 혼자서는 도달하지 못했을 곳에 함께 도달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성장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만들어 내는 시너지는 각자가 가진 가능성을 더욱 확장한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어느새 함께 더 멀리 나아가는 일이 된 것이다.

       

      나는 후지노와 쿄모토를 보며 경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경쟁은 흔히 누군가를 이기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한 과정으로 여겨진다. 상대보다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좌절하기도 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으면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쟁이 반드시 승패를 결정하는 과정일 필요는 없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의 존재는 내가 부족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계가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당장 그 사람과 같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이전에는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하며, 나만의 한계를 조금씩 넘어설 수는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곳까지 나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쿄모토가 후지노에게, 후지노가 쿄모토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서로의 존재가 각자의 세계를 넓히고, 혼자였다면 도달하지 못했을 곳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경쟁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4. 우리는 서로의 등을 보며 성장한다


      KakaoTalk_20261021_225744608.jpg

       

       

      쿄모토의 삶이 그림으로 시작해 그림으로 끝나고, 그가 남긴 그림과 기억을 이어받아 후지노가 계속 그림을 그려 나가는 모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누군가의 존재가 나의 삶에 남긴 흔적은 그 사람과 같은 길을 걷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시간은 끝나더라도, 서로에게서 얻은 자극과 영감은 각자의 삶에 남아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된다.

       

      《룩백》이라는 제목처럼 우리는 때때로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과거에 포기했던 일과 선택하지 않았던 가능성을 떠올리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림을 그만두었던 순간을 돌아보면 여전히 미련이 남는다. 조금 더 도전해 봤다면 어땠을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는 데서 멈추기보다, 그 경험을 통해 앞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싶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내가 포기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가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며 걷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뒤에 머무르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내가 갈 수 있는 곳을 새롭게 발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두 사람처럼,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재능을 두려워하기보다 그로부터 배우며 나만의 세계를 넓혀 가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한다는 것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일이 아니라,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곳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는 일일 테니 말이다.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김주하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Opinion] 경: 경주가 주: 좋다 [맛집]
      2. 02 [Review] 두루두루 -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6
      3. 03 [Opinion] 도마뱀 꼬리도 리필 되나요? [동물]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