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꿈과 우정 이야기”라는 표현이 어색한 건, 우정이 꿈이고 꿈이 우정이었던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땐 매니저가 되고 싶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노래를 잘해서였다. 네가 연예인이 되면 내가 매니저가 되겠다고 했다. 중학생 땐 작가가 되고 싶었다. 과학을 유독 잘했던 중학생 친구에게 너는 과학 분야에서, 나는 문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타보자고 웃으며 약속했다. 세 번째 꿈은 기자였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학보사 건물에서 밤을 새우며 기사만 썼던 시절, 내 옆엔 항상 함께 머리를 싸매주는 동기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과 평생 이러고만 지낼 수 있다면 기꺼이 기자를 하고 싶었다. 이런 감정을 담아내기에 우정이라는 단어는 너무 작았다.

 

 

룩백 포스터.jpg

 

 

영화 <룩백>을 “꿈과 우정 이야기”로 정의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꿈”과 “우정”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넘어섰으니까.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의 주인공 ‘맨발’은 말한다. “사랑이란 대사 없이도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야 영화 아냐?” 영화 <룩백>은 “우정”이라는 단어 없이 우정을 표현한다. ‘후지노’와 ‘쿄모토’, 머나먼 나라에 사는 두 인물을 보며 우리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얼굴을 떠올린다. 우정이라는 두 글자로만 정리하기엔 아쉬울 정도로 반가운 얼굴을.

 


 

종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영화는 밤하늘에서 시작된다. 밤하늘을 비추던 화면은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지상으로 곤두박질친다. 새보다는 종이에 가까운 움직임이다. 추락하던 종이는 한 이층집의 창문에 다다르고, 화면은 후드티를 입은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비춘다.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아이의 왼쪽으로 만화책이 잔뜩 꽂힌 서재가, 오른쪽으로 구겨진 종이가 버려진 쓰레기통이 보인다. 아이의 뒷모습 위로 영화의 제목 ‘룩백(Look Back)’이 떠오른다. 

 

 

131.jpg


  

늦은 시간까지 그림을 그리는 아이의 이름은 ‘후지노’. 후지노는 매주 발행되는 학교 신문에 네컷 만화를 기고한다. 학교 신문이 나오는 날이면 후지노 주변엔 아이들이 가득하다. 후지노는 이번 만화를 1시간 만에 그렸다며 우쭐거린다. 카메라는 후지노를 아래에서 비추며 그의 소소한 권위를 강조한다.


어느 날, 카메라와 후지노의 시선이 처음으로 일치한다. 등교거부생 교모토가 그린 네컷만화가 신문에 실린 날이었다. 교모토의 그림은 완벽했다. 초등학생 솜씨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학교도 제대로 못 나오는 애가 마감 일정이나 잘 지킬 수 있겠냐”고 우쭐거리던 후지노의 자존심은 산산조각 난다. 여기에 후지노의 짝꿍은 덧붙인다. “교모토에 비하면 네 실력은 평범해 보여.”

 

 

 

졸업은 아직 아니야


 

후지노는 집에 가자마자 인터넷에 ‘그림 실력 키우는 방법’을 검색한다. 그림 관련 책을 사 모으고 습작 노트에 손, 팔, 발 등을 엉성하게 그리기 시작한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연필을 놓지 않는 후지노에게 친구들은 말한다. “그림은 어릴 때나 그리는 거 아니야?” “우리 이제 6학년이야. 언제까지 그림 그리게?” 주위 사람들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던 후지노는 교모토의 네컷만화를 보자마자 읊조린다. “그만둘래.” 진정한 재능을 눈앞에서 목격한 자의 뒷모습은 항상 쓸쓸하다. 후지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칠판에 적혀 있는 “졸업” 글자는 후지노가 그림이라는 이상을 졸업하고 현실로 나아갈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 졸업을 막은 건 다름 아닌 교모토였다. 후지노가 선생님 부탁으로 교모토에게 졸업장을 전해주러 간 날, 교모토는 후지노를 만나기 위해 맨발로 뛰쳐나온다. 덥수룩한 머리,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 “후지노 선생님!”이라는 이상한 호칭까지. 평범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교모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고백한다. 후지노의 작품을 너무 좋아했다고, 당신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141.jpg

 

 

내 꿈을 포기하게 만든 장본인이 내 작품을 좋아했다니, 게다가 왜 요즘은 그림을 그리지 않느냐고 묻는다니. 이 모순적인 상황에서 후지노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한다. 만화 경연대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더 큰 물로 가야 하지 않겠냐고.


물론, 이건 거짓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후지노는 오히려 그 비를 즐긴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나를 인정해 줬을 때의 기쁨,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후지노는 비에 젖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이젠 혼자가 아니다. “그림은 어릴 때나 그리는 거 아니냐”고? 그럼 평생 어리면 된다. 함께 해주는 사람만 있다면 그것쯤은 어렵지 않다.


 


운명적 결합: 사랑? 우정?


 

둘은 여름방학 내내 함께 그림을 그린다. 한 명은 바닥에, 한 명은 책상 의자에 앉아서 말없이, 가끔은 수다를 떨면서. 엄마가 가져다준 과일을 한 입씩 베어 물고, 침대에 함께 누워 잔다. 꿈을 포기하게 했던 사람은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후지노에게 교모토가 그랬듯이.

 

 

151.jpg



영화는 두 사람이 마주 잡은 손을 보여준다. 무언가가 결합한 장면을 보면 본능적으로 긴장하게 된다. 결합은 필연적으로 분리를 수반하니까. 결합의 장면 다음으로는 반드시 분리의 장면이 이어질 테니까. 공동 창작 만화에서 배경을 담당하던 교모토는 어느 날 후지노에게 미술대학에 가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더 이상 후지노를 도울 수 없겠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렇게 교모토는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후지노는 계속 만화를 연재한다. 삶의 궤적은 달라졌지만 연락을 이어가던 둘의 관계에 엄청난 사건이 찾아온다. 바로 교모토의 죽음이다. 교모토는 미술대학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으로 사망한다. 후지노는 후회한다. 만약 그때 자신이 졸업장을 건네주러 가지 않았다면, 교모토가 계속 집에만 있었다면, 즐거운 시간을 만들지 않았다면 교모토가 미술대학에 갈 일도 없었을 텐데.


후회는 또 다른 상상-시간 선을 만들어낸다. 후지노와 교모토가 친구가 되지 않는 시간 선을. 그곳에서도 교모토는 미술대학에 다니고 있고, ‘그 사건’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그러나 이번엔 결말이 다르다. 후지노가 교모토를 구해줬으니까. 이번에도 상대를 먼저 알아보는 건 교모토다. 교모토는 후지노에게 교내 신문에 네컷만화를 기고하지 않았느냐고 묻더니, 그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후지노는 둘이 만나는 시점을 조정했을지언정 교모토가 후지노에게 받은 영향만큼은 바꾸지 못했다. 그 영향력은 교모토가 후지노를 알아보게 했고, 둘은 다른 시간 선에서도 친구가 된다. 어쩌면 운명이라는 단어는 사랑보다 우정에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사랑이 꿈을 유지하게 해준다면 우정은 꿈을 심어주니까. 내게 꿈을 심어준 사람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으니까.

 

영화를 다 본 시점에서 제목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룩백(Look back), 과거를 되돌아본다는 뜻이다. 관객들은 후지노와 교모토를 보며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본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얼굴, 우정이라는 두 글자로만 정리하기엔 아쉬울 정도로 반가운 얼굴을 떠올리며 문득 깨닫는다. 내 과거는 그 얼굴들과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청춘은 나의 얼굴이 아니라 그들의 얼굴로 기억된다는 것을.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