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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뜨개질과 함께 보낸 겨울 [사람]

그리고 아직도 서랍 속에 있는 목도리

by 방지수 에디터
2026.10.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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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손끝 발끝에도 찬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지금도 글을 쓰다가 중간중간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수족냉증을 물리쳐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이때가 되면 자연스레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실 생각이 난다. 딱딱한 나무 바늘에 실이 사락-하고 넘어가는 느낌, 체온을 머금고 내 무릎을 덥혀주는 털뭉치, 한 땀 한 땀 춤을 추듯 이어가는 팔동작, 늘어나는 편물을 바라보며 선물할 순간을 상상하는 것. 뜨개질의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초등학교 미술 수행평가로 뜨개질을 짧게 해봤던 것을 제외하고, 자발적으로 털과 실을 사서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재작년 겨울이 처음이었다.


      당시 '베를린 스카프'라는 목도리 도안이 유행했었는데, 도안에서 권장하는 완성된 편물 길이는 2m 정도였다. 연예인 이광수의 키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뜨개인들은 '목도리를 완성하려면 1광수만큼 뜨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길고 두툼한 베를린 스카프를 두르고 얼굴을 묻고 있는 모델의 사진에서 겨울의 낭만과 온기가 느껴졌다. 이 목도리를 직접 떠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행복해졌다.


      털실 여섯 볼, 대바늘, 단수 표시링을 샀다. 처음에 샀던 500원짜리 대바늘은 실이 뻑뻑하게 넘어가 꽤 불편했다. 비싼 대바늘은 실넘김이 부드러워 기분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립식 대바늘 세트까지 갖추게 되었다. 아아, 뜨개질은 방구석 취미계의 골프라는 이야기가 진짜였구나. 홀쭉해진 통장 잔고를 보며 시작하지 말걸 후회했지만, 늘어나는 편물을 보면서 그런 생각은 깨끗이 잊게 되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도, 여행을 가서도, 카페에서 친구를 만날 때도 뜨개질은 멈추지 않았다. 내 목도리는 금방 쑥쑥 자라났다. 처음에는 손 한 뼘만 하던 목도리가 어느덧 내 키만 해졌을 때,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했다. 매일 가지고 다니면서 조금씩 키운 목도리는 마치 내 자식 같았고, 오묘한 초록색을 띠고 있었기에 '쑥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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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목도리가 완성되면 선물하려던 사람은 지금의 전 애인이었다. 목도리를 뜨던 중간에 헤어졌지만, 나는 바늘을 놓지 않았다. 목도리를 완성하며 그 사람에게 남아 있던 미련도 털어낼 수 있길 바랐다.


      그렇게 완성된 목도리에는 뜨개질과 함께 보낸 지난겨울이 담겨 있었다. 부드러운 촉감이 그동안의 고생을 감싸주고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목도리는 주인을 찾지 못한 채로 내 방 서랍에 고이 잠들어 있다. 다시 꺼내어 쓸 날이 올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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