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의 곁에서 우리는 사라지는 것들을 바라볼 수 있지만, 정작 그 사람이 어떤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지는 좀처럼 알기 어렵다.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치매를 앓고 있는 한 노인의 시선을 따라, 바로 그 알 수 없는 세계 안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일흔 번째 생일을 맞은 춘자는 가족들이 마련한 생일 케이크 앞에서 촛불을 끄기 전 소원을 빌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무엇을 빌고 싶었는지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때 춘자의 눈 앞에 신비로운 존재인 '영혼의 물고기'가 나타난다. 춘자는 영혼의 물고기를 따라 잃어버린 소원을 되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현실과 환상, 현재와 과거의 경계는 조금씩 흐려진다. 가족들이 바라보는 현실에서는 치매를 앓는 춘자가 집을 나서 헤매고 있지만, 춘자의 눈앞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70살 춘자, 7살이 되다
치매를 다룬 이야기는 흔히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의 곁에 남겨진 이들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잊고, 함께했던 시간을 하나둘 잃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그렇게 치매는 한 사람이 조금씩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멀어져 가는 과정으로 그려지곤 한다.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반대로 기억을 잃어가는 춘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바라본다. 가족들의 눈에 춘자는 자꾸만 현실과 동떨어진 말을 하고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사람이지만, 춘자에게는 그 모든 행동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족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물고기를 따라 잃어버린 소원을 찾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은빛나라'를 향해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는 춘자의 세계가 우리에게는 낯설고 이상해 보여도, 춘자에게는 그것이 지금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작품은 이 차이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잘못된 기억인지 춘자에게 끊임없이 알려주는 대신, 무대 위에 춘자가 바라보는 세계를 그대로 펼쳐 보인다. 덕분에 관객 역시 잠시 가족들의 자리에서 벗어나 영혼의 물고기를 보고, 일곱 살이 된 춘자와 함께 은빛나라를 향한다.
그곳에는 춘자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바다로 떠난 남편과 화재로 세상을 떠난 셋째 수정이, 강아지와 춘자의 어머니까지. 그렇기에 춘자가 마침내 은빛나라에 도착했을 때, 그의 긴 모험 역시 삶의 끝에 다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춘자를 다시 삶으로 돌려보낸다.
사라진 줄 알았던 모든 것을 품고
은빛나라에서 다시 삶으로 돌아온 춘자에게는 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이 알려준 대로, 나무 아래에서 소원을 비는 일이다. 춘자는 나무를 찾아 헤매다 교회의 따뜻한 불빛 아래에서 문득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빛을 등지고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마치 가지를 뻗은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인다. 그렇게 춘자는 멀리서 찾아 헤매던 나무를 자신의 모습 안에서 발견한다.
소원을 찾기 위해 영혼의 물고기를 따라 낯선 세계를 헤매고,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은빛나라까지 다녀왔지만 정작 마지막에 찾아야 했던 것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나무가 춘자의 몸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였듯,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소원 역시 처음부터 그의 안에 남아 있던 것이다.
그 아래에서 춘자는 하나둘 잊고 있던 소원을 떠올린다. 긴 모험 끝에 가까스로 되찾은 소원에는 정작 자신을 위한 것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 뿐. 자신의 기억마저 하나씩 잃어가면서도,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것만큼은 여전히 가족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춘자의 긴 모험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잊어가는 순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데에 도착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춘자의 세계를 끝내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데 있다.
작품은 춘자를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현실'로 완전히 돌려놓으며 끝나지 않는다. 가족들에게 춘자는 여전히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이지만 춘자에게는 영혼의 물고기도, 은빛나라도 분명 자신이 경험한 세계의 일부다. 어느 한쪽만을 진짜라고 선언하는 대신 서로 다른 두 세계를 한 무대 위에 나란히 펼쳐놓는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반드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일을 의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각자가 쌓아온 기억과 감정에 따라 같은 순간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하물며 한 사람의 시간이 현재가 아닌 오래전 기억을 향해 흐르기 시작한다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같은 세계에 머무르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서도 상대에게 닿을 수 있는 길을 계속해서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작품은 말한다.
할머니의 세상은 어때?
나 역시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가 곁에 있다.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어머니를 뵈러 가고 싶어 하고, 정작 지금까지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존재를 잊는다. 그렇기에 솔직히 공연을 보는 동안 치매라는 질환을 이토록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모험으로 그려내는 방식이 내가 알고 있는 현실과는 다소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생각은 남았다. 나는 지금껏 할머니가 무엇을 잊고 있는지만 바라봤지, 할머니에게는 어떤 세계가 펼쳐지고 있을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 돌아가신 어머니를 자꾸만 찾는 할머니는 어쩌면 우리가 걱정하는 현재에서 멀어지는 대신, 그리운 사람이 아직 곁에 있던 어느 시간에 조금 더 가까이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춘자의 이상한 나라를 따라간 뒤에야,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할머니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곳에서는 어떤 시간이 흐르고, 누구와 함께하고 있을까. 문득 그 세계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