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의 이야기는 어쩌면 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특별할 것 없는, 그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이야기. 옆집 할머니, 우리 할머니, 그리고 언젠가는 나 자신일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 그래서일까, 우리는 때때로 그 이야기를 쉽게 지나치곤 한다. 연극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그 평범함을 특별한 시선으로 무대 위에 풀어낸다.
치매 노인의 삶을 그려내는 이 연극은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일상적이면서 익숙한 느낌이 더 큰 공감으로 다가온다. 특별하지 않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삶. 극 안의 춘자씨와 그 가족이 특별해서 겪는 것이 아닌, 언젠가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Synopsis
70살 생일을 맞은 춘자. 가족들의 축하 속에서 생일 소원을 빌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소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순간 춘자의 느슨해진 정신줄에서 빠져나온 영혼의 물고기가 그의 앞에 나타나고, 영혼의 물고기를 따라 시작된 기상천외한 모험 속에서 춘자는 상상과 현실, 추억과 회한 사이를 오간다. 한편, 현실에서는 가족들이 사라진 춘자를 애타게 찾아다니며 동네 곳곳에서 춘자의 흔적을 마주하는데….
춘자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소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개인적으로 공연의 퀄리티를 올리는 것은 크게 세 가지라고 본다. 극의 스토리라인, 배우의 연기력, 무대 활용법.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에서는 이 세 가지 합이 잘 맞아떨어졌다.
# 웃음과 울음 사이, 감정선의 완급 조절
전체적으로 연극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의 스토리라인은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고 함께 즐기고, 공감할 수 있도록 완급 조절이 잘 구성되어 있다고 느꼈다. 즐거울 때는 다 함께 웃으며 극을 즐기고, 진지한 장면에서는 숨을 죽이고 집중하게 되며, 때로는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릴 만큼 감정선이 깊어지는 순간도 있었다. 이 잘 짜인 밸런스는 극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졌고, 극 속의 주인공들과 함께 호흡하고 공감하고 교류하며,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스며들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이 나에게는 단지 치매 노인의 이야기로만 남지 않았다. '어느 누군가가 늙어가는 평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서 말했듯, 이 연극은 평범함을 특별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특히 치매 노인의 머릿속을 느슨해진 정신줄에서 나온 ‘영혼의 물고기’라는 존재를 통해 시각화하고, 이를 중심으로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구성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갑자기 정신 연령이 낮아졌다가도, 순식간에 나이 든 노인으로 정신줄이 넘나든다. 그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관객은 그녀의 머릿속을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상상과 감정을 장면으로 표현하고, 나아가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이 어쩌면 이 작품이 가진 진짜 특별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 특별함을 설득시킨 배우들의 힘
사실 이 작품의 특별한 상상력을 설득시킨 힘은 배우들의 연기력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가 관람했을 때의 출연진은 이랬다. 치매 할머니 고춘자 역에는 서나영 배우가 연기 했으며, 고춘자의 가족인 첫째 아들, 둘째 아들, 첫째 며느리 역에는 각각 성열석, 김선제, 하미미 배우가 출연했다. 감초 역할로 극의 활력을 더한 백정언 역에는 이상은, 영혼의 물고기 역에는 양나은 배우가 참여했다. 누구 하나 튀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고, 특히 어머니가 사라진 뒤 걱정하는 한편 치매 걸렸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갈등을 잘 표현해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역시 고춘자와 영혼의 물고기 역할이었다. 고춘자 역은 정신 연령이 오락가락하는 치매 노인의 복합적인 상태를 표현해야 하는 쉽지 않은 캐릭터다. 서나영 배우는 정신줄이 느슨해졌을 때의 말투와 포즈, 그리고 갑작스레 나이 든 사람으로 돌아올 때의 긴장감까지 섬세하게 잡아냈다. 마치 실제로 할머니 동네를 지나다니다가 마주친 어르신을 무대 위로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몰입감을 주었다.
‘영혼의 물고기’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도 정말 인상 깊었다. 정형화된 이미지가 없는 이 상징적인 존재를 표현하면서도, 유쾌함과 감성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았다. 물고기를 표현하는 독특한 움직임을 웃기지만 우습지 않게, 너무 부담스럽지도 않게 밸런스를 잘 잡은 연기였다. 개인적으로 이런 역할을 살린다는 것이 정말 어렵기 때문에 경력을 많이 쌓은 배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데뷔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기도 했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배우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 작은 무대에서 펼쳐진 확장된 세계
작품의 몰입도를 높이는 또 하나의 요소는 무대 활용이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작은 골목의 상가들을 구현한 무대는 각 장소가 적재적소에 활용되었고, 감초 배우들을 통해 다양한 역할과 장소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연출이 인상 깊었다. 무대의 제약을 창의적인 상상력을 통해 확장하여 풀어낸 연출은, 특히 춘자가 길을 잃고 헤매는 장면들에서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최근 본 창작극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었다. 단순한 공감을 넘어, ‘삶’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관람했지만, 다음에는 엄마와 함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과 함께 본다면 또 다른 울림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