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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70살 생일날을 맞이한 춘자 씨. 그녀는 사실 인지 능력이 점점 떨어져 가는 치매를 앓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춘자는 자신의 생일 소원이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여가 어대요. 나는 누구요.’


가족들은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 사이 춘자를 잃어버린다. 길을 헤매던 춘자는 '실례'를 해버리며 자신의 ‘영혼의 물고기’를 만난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앨리스처럼, 춘자는 빙글빙글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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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간다.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가슴 저리게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은유한다. ‘나잇값’이라는 말이 은근히 압박처럼 작용하는 사회에서, 치매는 여전히 부끄럽고 감춰야 할 일로 여겨진다.


춘자의 가족들은 춘자의 이상한 나라 바깥에 있다. 책임감과 현실의 무게에 눌려 무기력한 큰아들, 차가워 보이지만 누구보다 현실을 꿋꿋이 견디는 며느리, 엄마를 사랑하지만 치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둘째 아들. 그들에겐 춘자의 치매를 받아들이는 게 전쟁 같은 일상보다 더 큰 과제이다.


가족들이 춘자를 찾아냈을 때, 춘자는 교회에서 절을 하며(나를 포함해서 관객들이 가장 크게 웃었던 부분이다) 소원을 빌고 있었다.


춘자 씨의 소원은 하나가 아닌데 하나이다. 그저 자식들이 잘 살아가는 것. 춘자의 소원은 평생, 매일 비는 소원이다. 어쩌면 그래서 춘자는 이게 ‘소원’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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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재미있다.

 

춘자는 의도치 않게 '고춘자 떡볶이'로 성공하며 춘자의 가족들도 이 성공을 함께 누린다. 할머니 특유의 귀여움으로 마케팅에 성공한 덕분이다. 다만 현실 속 치매가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알기에,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사실 누가 소원을 묻는다면 나는 '치매에 걸리지 않게 해주세요'가 소원이어도 될 만큼, 그 단어가 무겁다. 특히 요즘 할머니께서 깜빡깜빡하실 때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 특히 방금 물어보셨던 걸 또 물어보실 때가 그렇다.

 

그러다가 갑자기 누구에게 향하는지 모를 분노가 마음 속에서 번진다. 했던 말을 반복해야 해서 화가 났던 것은 아니다. 우리 할머니가 자꾸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듯해 불안한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늙는다는 건 다시 아이로 돌아가는 과정일 뿐. 그래서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는 이상한 나라에 가야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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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 공연예술창작 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누구와도 함께 보기 좋은 소극장 뮤지컬이다. 저속 노화 트렌드에 다들 공감하는 요즘이다. 그만큼 치매는 그 단어만으로도 회피하고 싶은 소재다.

 

그렇지만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를 보다 보면 어느새 춘자에게 공감하고 춘자의 가족에게도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아진다. 그리고 그건 어느덧 나에게 하는 얘기가 된다.


저항 없이 치매를 받아들이게 해주는 따뜻한 이야기,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6월 1일까지 더줌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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