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를 향한 세 개의 시선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싸우고 갈등한다. 서로를 미워하는 네 명의 인물들 각자가 품고 있는 원망의 이유와 근거는 충분하다. 하지만 상대에게 쏘아붙이는 순간, 마음이 약해져 제대로 싸움을 끝맺지 못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만큼 지치고 소모적인 싸움도 없다. 그렇게 누구보다 서로를 싫어하면서도 곁을 떠나지 못하는 가족의 형태가 바로 이 희곡 안에 있다. 그중에서도 첫째 아들 '제이미'를 향한 세 가족의 시선은 유독 날카롭게 느껴진다.
아버지 '티론'은 제이미가 등장하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제이미가 쓸데없는 소릴 지껄인 거야. 분명해. 늘 누군갈 비웃는 녀석이잖아." 어머니 '메리'는 어떠한가? 메리는 과거 제이미가 홍역에 걸렸을 때 동생 '유진'의 방에 들어가 병을 옮겨 죽게 한 사실을 언급하며 말한다. "난 제이미를 용서할 수 없어요." 특히 막내 에드먼드의 병을 걱정하는 제이미에게 던지는 말은 인상적이다. "왜 넌 항상 안 좋은 일만 상상하는 거니!" 동생 '에드먼드' 역시 엄마의 상태가 어때 보이냐는 제이미의 질문에,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듯 반항적으로 대답한다. "어떠냐니? 뭐가? 형은 거짓말쟁이야."
가족들은 제이미를 항상 '최악'을 생각하는 인물로 몰아간다. 제이미 스스로도 "난 언제나 최악의 경우만 생각한다"고 밝힌다. 역설적이게도 이 때문에 제이미는 극 중에서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인물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그 진실은 결코 달갑지 않다. 차라리 묻어둔 채 모른 척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착각하는 이들은, 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제이미를 계속해서 물어뜯는다. 그들에게 있어 진실은 곧 최악의 상황을 의미하므로.
제이미를 향한 이 세 개의 시선은 그의 캐릭터를 구축한다. 제이미는 끝없는 자기기만으로 진실을 회피하려는 가족들의 위선에 대한 환멸을 품은 인물로, 파국으로 치닫는 현실 앞에서 발악한다. 희곡 속 인물들은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한 가족을 꾸며내기 위해 치열하게 연기하는데, 특히 1막은 그 연기가 극에 달해 있어 독자들마저 완벽하게 속아 넘긴다.
하지만 이러한 연기는 비단 희곡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는 너무도 복잡하고 질겨서, 이 관계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종종 연기를 한다. 누군가는 평생 가족을 사랑한다는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밤으로의 긴 여로> 속 제이미는 서로를 원망하면서도 기만하는 가족의 민낯을 드러내며 문제의 본질을 마주 본다.
가족들을 향한 한 개의 시선
1막에서 제이미는 나름대로 유쾌한 면을 앞세워 가족들 간의 '좋은 기류'를 형성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제이미에게는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하나뿐인 동생 에드먼드의 투병 상태나 어머니의 마약 중독 문제다. 제이미는 그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단지 여름 감기일 뿐이라고 현실을 부정하는 메리에게 그건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하지만 메리는 발작적인 반응을 보이고, 제이미는 주눅 들어 자신의 생각을 거둔다. 나름대로 용기를 내서 꺼낸 진실은 언제나 그랬듯 가족의 화를 불러일으키고 만다. 그리고 어쩌면 그는 이제 체념을 배운 것 같기도 하다.
평생 이런 가족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무력감. 때로는 자신도 저 '행복한 가족 연기'에 동참하며 이상을 좇고 싶다는 갈등까지. 하지만 제이미의 본능은 그 이상에 타협하지 못한다. 제이미는 가족의 평안을 깨뜨리는 악역으로 분하고, 그의 행동은 나머지 인물들에게 있어 비난받기에 마땅한 액션이 되어 버린다. 자꾸 현실을 깨우고 분쟁을 초래하는 제이미의 액션은 가족들이 서로 부딪히게 만들며 앞으로 전진하게 한다.
제이미를 향한 한 개의 시선
그렇다면 제이미는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밤으로의 긴 여로>는 아침에 시작해 자정을 넘어 막을 내리는 희곡이다. 이 극의 제목은 가족들 간의 복잡한 문제가 드러나는 그 '밤'까지의 여정이라는 의미를 함축하는 것 같다. 더 나아가 생각하면, 어차피 인생은 결국 '밤'을 향한 긴 여행길이다. 밤이 드리울 때쯤 죽음이 찾아오는 법이니까. 그렇다면 제이미의 '밤'을 향한 긴 여행길의 동반자라고도 볼 수 있는 가족들은 어떠한가? 그들 각자가 지닌 결점은 제이미에게 다각도로 영향을 미친다.
제이미는 에드먼드보다 더 오래 가족의 문제를 마주해 온 인물이다. 그는 티론을 '늙은 가스파드'라고 부르며 적대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에드먼드는 아버지가 좋은 분이라며 방어하지만 제이미는 냉소적이다. "아버지가 또 그 구닥다리 눈물 연기를 펼쳤구나." 제이미는 이제 내면이 낡고 닳아버린 상태다. 아직 에드먼드는 가족에게 희망이 있다고 믿지만, 제이미는 아니다. 그렇다고 제이미가 이 '가족 붕괴'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제이미가 가진 가장 큰 죄책감을 따라가 보자.
제이미에게는 어릴 적 홍역에 걸린 상태에서 동생인 유진의 방에 들어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과거가 있다. 저지른 과오가 있는 제이미는 부모를 온전히 미워할 수가 없다. 그러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감정은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 이 촌구석의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생활한다는 것에 대한 울분을 표출하는 제이미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에드먼드를 질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감정은 도리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제이미는 스스로를 연민하면서 증오한다.
유진을 죽게 만든 죄책감, 자신에 대한 증오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감정. 아버지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분노와 자기 연민. 그 끝에 체념한 제이미는 가족들이 뭐라 떠들든 간에 초연한 태도를 보인다. "알았어요. 아버지 맘대로 하세요."
<밤으로의 긴 여로>
4막으로 이루어진 이 희곡은 특히 1막에서 모든 걸 감추려는 인물들의 모습으로 인해 상황이 아리송하게 다가온다. 메리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는 알 수 없다. 1막을 넘어 마침내 2막에 도달해서야 메리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데, 이는 제이미의 입을 통해 폭로된다. "팔에 한 방 또 하겠군!" 메리는 마약을 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가족들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를 겪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메리는 왜 마약에 손을 대게 되었는가?
메리는 에드먼드를 낳고 나서부터 시작된 통증으로 약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는 티론의 절약 정신에서 비롯된 결과다. 좋은 병원이 아닌 싸구려 의사에게 메리를 맡긴 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티론이 이렇게 병적으로 돈에 집착하게 된 계기 역시 '가족'으로 수렴한다. 아버지의 부재로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던 티론은 악착같이 일하며 돈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제이미는 이런 가정 속에서 성장했다. 특히 어린 시절, 제이미가 칭얼대기만 하면 티론은 그에게 술을 먹여 억지로 조용히 만들곤 했다.
감춰진 진실과 문제들. 이 모든 걸 아우르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가족'이다. 가족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고, 그들이 가족을 이렇게 만들었다. 이렇게나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데 함께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대체 가족이라는 건 뭘까? 결국 제이미를 이렇게 만든 것이 가족이고 가족을 이렇게 만든 것이 제이미라면, 이 작품 속 누구도 '가족 붕괴'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제이미의 "HOME"
제이미에게 있어 '이상적인 집'은 무엇이었을까. 첫째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자신을 한심하게만 보는 부모에게 인정받는 것? 하지만 지금의 집은 그러한 이상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이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서로에게 고통뿐인 HOME의 민낯을 드러내며 결국 진정한 집이란 무엇이고 당신의 집은 지금 어떠한지를 묻는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 희곡은 이제 제이미를 넘어, 텍스트를 넘어, 무대를 넘어, 읽는 독자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있어 이상적인 집과 가정은 무엇인지. 그 이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가족을 감당하고 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