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제목이었다. 『상자 속의 양』. 어린왕자에 나오는 너무도 익숙한 문장이다.
어린왕자는 비행사에게 자신이 키울 양 한 마리를 그려 달라고 한다. 비행사는 수많은 양을 그렸지만 어느 하나도 어린왕자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작은 상자를 그려 주었고, 어린왕자는 그제야 자신만의 양을 찾는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긴다.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 양이 자신의 양이라고 느낄 수 있었을까. 볼 수 없어도 존재한다는 것. 어쩌면 상자 속에 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양을 떠올리는 어린왕자의 기억과 애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 오토네가 그러하듯 말이다.
이미 죽은 카케루와 그를 본떠 만든 인공지능 카케루. 마지막에 그녀는 두 사람 모두를 떠나보낸다. 그러나 그녀는 슬퍼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는 여전히 곁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면에 남아 있는 애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카케루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 책은 어린 아들을 잃은 부부가 새로 들인 인공지능을 통해 상실과 회복을 경험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 낸다. 존재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곁에 있음을 느끼는 일, 그리고 그렇게 상처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주인공 부부는 아들의 모습을 한 휴머노이드를 가족으로 맞아들인다. 카케루라는 이름을 이어받은 이 로봇은 죽은 아이를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점차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카케루는 단순히 죽은 아이의 대체품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전해 주는 존재가 된다. 그 과정에서 작품은 기억과 애도, 공감과 이해, 직시와 치유의 문제를 차례로 꺼내 보인다.
[illust 한수빈]
아이를 잃은 고통을 잊기 위해 데려온 로봇은 과연 부부의 빈자리를 채워 줄 수 있었을까.
겉모습과 말투, 행동이 같을지라도 그것이 그 아이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오토네 역시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카케루를 생각하면 할수록 그 아이의 존재는 살아 있던 과거보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더욱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보이지 않아도 말이다. 마치 상자 속의 양처럼.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로봇 카케루 또한 상자 속의 양을 상상한다는 것이다. 그는 로봇임에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마치 감정을 가진 인간처럼 말이다. 책에서는 그것이 주인공의 감정이 투영된 것일 뿐, 로봇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로봇 카케루 역시 감정을 배워 가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상실은 주인공 부부의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인간과 로봇의 관계 속에서도 드러난다. 다른 로봇들과 함께 새로운 거처를 찾아 떠나는 카케루. 그와 동행하는 로봇들 가운데에는 인간에게 학대를 받거나 버림받은 존재들도 있다.
물에 들어갈 수 없는 로봇들이 인간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의 거처를 함께 만들어 가는 마지막 장면은 회복의 첫걸음처럼 보였다. 상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지만, 누군가와 함께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준다.
결국 『상자 속의 양』은 보이지 않는 것을 붙잡으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보이지 않아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존재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