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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벌레가 들끓는 가방을 들고 있다면, 연극 '플리백'

플리백에 담겨 있는 것

by 김나윤 에디터
2026.08.1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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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플리백>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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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플리백(Fleabag)>은 작가이자 배우인 피비 윌러 브리지(Phoebe Waller-Bridge)가 직접 쓰고 연기한 1인극이다. 2013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초연하면서 단숨에 화제작이 되었고, 이후 런던 소호, 오프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등에서 공연되었다. 2016년에는 BBC의 시리즈물로 제작되었으며,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2024년 국립극장 엔톡 라이브 플러스 상영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2026년 한국 프로덕션이 선보이는 라이선스 공연 <플리백>(연출 류주연)이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번 한국 프로덕션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 맞게 무대를 꾸렸다. <플리백>은 연강홀 무대의 가로 너비를 적극 활용하는데, 전체적으로는 플리백의 집과 기니피그 카페가 중첩되어 있다. 무대 상수에는 플리백의 친구이자 동업자였던 ‘부’를 추모하는 꽃과 카페 입간판, 카운터, 소파가 함께 놓여 있다. 하수에는 카페의 테이블과 의자, 화분, 변기와 휴지통이 위치한다. 그리고 무대 한가운데에는 객석을 향해 있는 의자와 작은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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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하면 조명은 한가운데에 있는 의자를 중심으로 무대 중앙부를 플리백의 면접장으로 구획한다. 플리백은 회사 내 성희롱 사건으로 인해 여자 직원이 전무한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다. 면접 중에 덥다며 웃옷을 들추는 플리백을 보며 면접관은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며 불쾌해하고, 관객 역시 갸웃하며 반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면접에서 플리백의 일상으로 흐름이 이동하면서, 면접장 양옆으로 플리백의 일상 공간이 펼쳐진다. 이러한 무대 구성은 <플리백>을 이해하는데 주요하다. 플리백의 독백으로만 진행되는 이 작품에서 플리백이 마주한 세계를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플리백’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은 '지저분한 사람', '문제투성이' 혹은 '누추한 곳'을 의미한다. 벼룩(flea)이 잔뜩 들어간 가방(bag)이라는 이름 그대로의 뜻처럼, 그의 인생은 실수의 연속이고 정처 없는 혼란이다. 어느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해서, 이곳저곳으로 탈주하지만 끝내 상실과 죄책감만 안은 채로 원래의 집과 카페로 돌아온다. 어머니가 죽은 뒤, 아버지는 자신의 대모와 재혼했고, 언니는 처형을 추행하는 형부와 살아간다. 남자 친구는 플리백의 곁을 떠났고, 함께 카페를 차린 동업자 친구는 연인의 배신에 생을 마감했다. 이제는 카페마저도 폐업 위기에 처해 있다. 그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만, 끊임없이 남성에게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려 하고, 신체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달라는 전 남자 친구의 제안을 수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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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플리백이 자신의 '매력적인 몸'에 집착하며 비정상적인 관계를 이어 나가는 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한다. 플리백은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타자화하는 인식을 내면화하여, 자신도 타인에게 욕망당하고 그로 인해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서 기행을 벌인다. '젊은 여성'이라는 사회적 조건은 그의 자기혐오와 일탈적 행위를 설명할 때 떼놓을 수 없는 것이다. 플리백의 가방에 벌레가 들끓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러나 플리백이 사회구조적 문제의 피해자라고 단순하게 말하는 순간, 많은 것이 납작해진다. <플리백>은 기본적으로 사회의 부조리함과 개인의 불완전함이 팽팽한 긴장으로 부딪히는 작품이다. 플리백의 외로움과 상실감, 자기혐오는 그 자신에게서 비롯되기도 한다. 페미니즘 강연에서, "여러분은 완벽한 몸을 얻을 수 있다면 수명 5년을 내놓을 수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에 다수의 여성과 달리, 플리백은 그렇다고 답한다. 또한, 친구 '부'와 햄스터 '힐러리'의 죽음에 플리백은 깊게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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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긴장 관계를 표현함에 있어, NTlive로 상영된 2019년 런던 웨스트엔드의 <플리백>은 문제적 인물인 플리백의 이야기에 화각을 맞추었다. 정사각형 작은 무대 위에 의자 하나를 놓고, 배우 한 사람이 앉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구성이다. 이야기꾼 한 사람에게만 집중된 무대에서는 그의 말에 따라 많은 것을 상상에 맡길 수 있다. 기니피그 카페, 페미니즘 강연장, 화장실, 집 등의 공간을 상상하고, 배우의 제한된 움직임을 따라간다. 초점은 플리백이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지에 있다.

 

반면 이번 한국 프로덕션은 플리백의 배경으로 화각이 확장된다. 무대는 구체화되었고, 배우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무대 곳곳을 누빈다. 플리백을 둘러싼 세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무대는 기본적으로 플리백의 독백을 만드는 세계에 더 주목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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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가 세계의 부조리함과 인간의 부족함을 안은 ‘한 인간’에 초점을 맞춘다면, 후자는 부조리한 ‘세계’ 속에 놓인 부족한 한 인간을 조명하는 것에 가깝다. 전자에서는 플리백의 농담과 변명, 자기혐오와 욕망을 따라가며 그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간다. 반면 후자에서는 플리백의 말과 함께, 그 바깥에 있는 것들을 한눈에 알게 된다. 소품 하나 쓰지 않고 이야기꾼의 이야기로만 끌고 가는 전자에 비해, 후자는 소품들이 상징적인 역할을 하며 텍스트를 뒷받침해 준다.

 

그런 면에서 한국 프로덕션의 선택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이러한 선택은 일면 플리백이라는 이야기꾼의 힘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때때로 그의 말보다 무대에, 소품에 주목하게 될 때가 있다. 플리백은 우리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라기보다는 이야기를 수행하는 '무대 위의 인물'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에, 관객에게 내밀한 고백을 쏟아내는 <플리백>의 1인극 형식에는 다소 힘이 빠진 듯 보인다.

 

이는 동시대 한국에 맞게 <플리백>을 '번역'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피비 윌러 브리지의 어릴 적 별명이기도 한 '플리백'은 기본적으로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형식을 취했다면 다른 배우가 원작을 '연기'한다는 인상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성적인 농담이나 플리백의 기행을 바라보는 문화적인 시각 차이도 있기에, 더욱 연극적인 세팅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 프로덕션 공연에서는 '코미디'를 염두에 두었던 것 같은 대사들이 관객과 주파수를 맞추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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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 덕분에 플리백이 자기 몸과 어떻게 불화하는지, 플리백이라는 인물은 얼마나 고립되어 있는지가 직관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너비가 긴 무대 위, 집과 카페, 강연장과 지하철을 활보하는 플리백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떠들지만, 그만큼 외로워 보인다. 타인의 욕망,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폭력, 성적인 목적으로만 긍정할 수 있는 신체. 사회구조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플리백 자신의 선택이기도 한 것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다는 사실이 동선으로, 소품으로, 무대로, 연출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플리백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무대 위에 영상으로 송출하는 장면은 확장된 관객의 시야를 플리백의 내면으로 집중시키기 위함이다. 그 순간은 주변의 모든 세계가 사라지고, 오로지 플리백의 말과 감정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힐러리'가 죽는 연극의 클라이맥스에서 무대 조명을 바꾸고 음악을 활용하여 플리백의 내면으로 줌 인(zoom in)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작품의 처음과 끝에 배치된 면접장 장면 역시, 다른 장면들과 확실히 구분되며 플리백의 변화를 더욱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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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 면접 다시 시작할까요?” 플리백의 이야기를 다 들은 면접관은 그에게 처음부터 면접을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면접관은 회사 내 성추행 사건을 덮어버린 뒤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고, 플리백 역시 '부'와 '힐러리'의 죽음을 자신의 과오로 여기고 있다. 두 잘못의 무게도, 문제의 인과도 같지 않지만, 플리백이 말하듯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싶은 "실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 면접관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듯하던 플리백은 돌연 그에게 욕설을 날리고 암전. 작품은 거기서 마무리된다.

 

어떤 작품은 주인공이 암전 후 어떤 삶을 살아갈 지 상상하기 어려운데, <플리백>도 그런 작품이다. 기니피그 카페는 문을 닫았고, 형부에게로 돌아간 언니와는 연이 끊겼고, 소중한 친구와 기니피그는 죽었고, 남자친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성추행 사실을 묻은 회사 간부는 버젓이 면접관으로 무게를 잡고 있고, 플리백을 함부로 다뤘던 남자들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것이다. 플리백이 한순간에 변하지도 않을 것 같다. 외로움, 죄책감, 상실감, 자기혐오에 빠져 또 다시 기행을 저지르며 자신을 파괴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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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면접관을 향해 시원하게 욕을 날리는 플리백을 보며 한 가지 이상한 믿음은 생긴다. 가방에 들끓는 벌레 때문에 괴로워할지언정, 그게 벌레가 아니라고 우기지는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이다. 지우개로 지우다가 연필 자국이 남을지언정, 새 종이를 꺼내 와서 깨끗한 척하는 비겁한 삶은 살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내 실수를 인정하고, 그것을 지울 수 있을까 고민하며, 지워지지 않는 실수를 안고 또다시 살아갈 것 같다는, 괴로운 믿음. 플리백의 가방 저 아래에, 벌레와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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