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밴드 ‘씽씽’의 보컬로 알게 된 음악가 추다혜
소리꾼 추다혜를 알게 된 계기는 어느날 우연히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씽씽밴드’의 Npr tiny desk concert 영상이 뜬 것이었다. 범상치 않은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왠지 그 썸네일을 지나칠 수 없었다. 그들은 화려한 샤먼 같으면서도 키치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보컬은 남자 두 명에 여자 한 명. 남자 멤버들은 크로스섹슈얼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민요 록밴드 ‘씽씽’의 소리꾼들이었다. 이희문, 신승태, 그리고 추다혜. 첫 곡의 도입부만으로도 이들의 실력이 장난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들 공연은 직접 봐야 해, 라는 생각으로 씽씽밴드를 검색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 그룹은 내가 알았을 때 이미 해체(2018년)한 상태였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씽씽밴드의 소리꾼들과 프로듀서의 최근 활동에 대해 검색했다. 씽씽의 프로듀서였던 장영규 음악감독은 2019년 결성한 새로운 퓨전국악밴드 ‘이날치’를 프로듀싱하고 있었다. 이희문과 신승태는 ‘이희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9년에 결성된 밴드 ‘오방신과(OBSG)’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추다혜는 한 해 뒤인 2020년에 한국의 무가와 훵크 음악을 재구성한 밴드 ‘추다혜차지스’의 프런트퍼슨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 추다혜의 음악 인생을 보여준 공연 ≪엇숨≫
수림문화재단의 공연제 수림뉴웨이브는 2017년 이래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전통음악가를 조명해왔다. 10주년을 맞은 올해 공연제의 주제어는 바로 ‘엇’이다.
올해의 주제어 '엇'은 전통음악에서 엇박과 엇모리처럼 익숙한 흐름을 비껴가며 새로운 긴장과 활력을 만들어내는 감각을 의미한다. 어긋남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모습은 우리음악의 창조적 에너지이자 음악적 유희의 방식이다. 올해는 이러한 주제를 통해 기존의 기량 위에서 새로운 상상력과 실험을 시도하는 순간에 주목한다.
변칙적인 박자에 관객이 ‘엇, 방금?’ 하는 순간 다시 중심을 잡고 돌아와 있는 곡은 엇박 전후로 다른 인상을 가진다. <수림뉴웨이브 2026 ‘엇’>에 참여한 10명의 음악가는 ‘어긋남 속에서 중심을 잡아채는’ 노련함으로 각자의 무대를 선보인다. 나는 그중에서 추다혜의 공연을 감상했다. ‘서도소리와 굿소리를 자신만의 색채로 동시대의 감각으로 풀어내는’ 음악가 추다혜. 추다혜의 이번 공연 제목은 ≪엇숨≫이었다. 설명에 따르면 엇숨이란 ‘정해진 호흡을 따르지 않고, 비껴난 자리에서 발생한 숨’이다. 또한 ‘그 숨은 어긋남에 머물지 않고,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 흐른다.’ 공연은 2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추다혜가 전수 받고 불러 온 전통 소리 세 곡이었다. 2부에서 추다혜는 창작 활동을 시작한 후 만든 네 곡의 노래와 수림뉴웨이브에서 처음 공개하는 수림뉴웨이브 오리지널곡을 불렀다. 국악인으로서의 시작과 민요록밴드 ‘씽씽’ 활동 이후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가지게 된 지금까지, 이번 공연은 그의 음악 인생을 개괄한다고 할 수 있다.
3. 전통 에스프레소와 공기의 변화
1부를 차지한 서도소리는 주로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의 민간에서 주로 불리우던 노래의 총칭이다. 첫 곡 <수심가>는 서도민요의 창법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노래다. 노랫말은 이별의 슬픔, 인생의 무상함, 임에 대한 그리움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다음곡은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과 초나라의 패배를 담은 <초한가>였다. 1부의 마지막곡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랑타령 <난봉가>였다.
<수심가>에서 느낀 서도소리의 특징은 구슬픈 떨림이었다. 한 음절의 가사가 싱잉볼의 소리처럼 떨림을 반복하며 길게 이어졌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소리꾼 추다혜는 <수심가>가 끝난 후 관객들에게 추임새를 넣어도 좋다고 했지만 <초한가>까지도 사람들은 추임새를 잘 넣지 않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앞선 두 곡의 분위기가 진지한 것도 있지만-게다가 <초한가>는 장엄하기까지 했다- 소리 자체가 워낙 진한 데에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한다. 필자는 <수심가>와 <초한가>를 듣는 동안 눈이 저절로 감기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마치 늘 아메리카노만 마시던 사람이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에 다 삼켜 목 뒤로 넘길 때 고개를 숙이며 눈을 질끈 감게 되는 그 감각이었다. 평소 자주 접하지 못했던 노래의 진함에 감탄하면서 그 진한 소리를 소화하기 바빴다.(이 감각이 싫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추임새를 넣는 관객은 <난봉가>에서부터 조금씩 늘어났다. 추다혜가 <난봉가>를 부르는 순간 공기의 변화가 일어났다. 횡으로 묵직하게 깔려 있던 공기는 한 순간에 소복하게 모여 소리꾼을 중심으로 온후한 구(球)를 형성한 것 같았다. 공연을 볼 때 다른 퍼포먼스 없이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공기가 일변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는 턱을 들어 내 평소의 시선보다 한 뼘 높은 허공을 꿈결같이 바라보았다. <난봉가>가 클라이막스로 갈수록 나는 기쁨에 겨운 표정으로 내적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와,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정말 너무 좋잖아. 노래 한 곡이 이렇게 기대 이상의 모든 것을 충족시켜줄 수가 있을까. 참 행복한 경험이었다.
<난봉가>의 ‘난봉’은 ‘만나기가 어렵다’는 뜻을 가지거나 난봉꾼 할 때의 그 난봉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래서 가사를 읽어보면 해맑거나 마냥 밝지만은 않다. 그래도 인생에 있어서 설렐 수 있을 때 설렌다는 것은 참 무엇인지.

4. 추다혜의 창작세계
1부는 소리꾼의 목소리만으로, 혹은 소리꾼의 소리와 고수의 장단으로 무대가 꾸려졌다면 2부에서는 서양 악기 세션이 추다혜와 함께했다.(1부에 출연한 고수 이향하는 몇 년 전의 수림뉴웨이브 공연제에서 단독공연으로 그의 음악적 실험을 만난 적이 있어 괜히 반가웠다) 이들은 다름 아닌 ‘추다혜차지스’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이시문과 베이스를 연주하는 김재호였다.
코리안 샤머닉 훵크 혹은 사이키델릭 샤머닉 훵크라는 수식어가 붙는 ‘추다혜차지스’는 우리 전통 무가를 재해석하여 훵크, 레게 등의 음악과 접목한 음악을 만든다. 씽씽의 해체 후 자신의 곡을 만들고 싶었던 추다혜는 요가를 하면서 접한 찬팅(Chanting)에 깊은 인상을 받아 ‘우리만의 찬팅은 없을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가 찾은 답은 우리 전통 무가였다. 그는 제주도의 심방(무당)을 찾아가 직접 무가를 사사 받았다.
유튜브에서 몇 가지 무가의 음원과 영상을 접할 수 있었다. 무가의 앞부분은 무가를 듣는 사람의 넋두리를 대신 해주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신을 부르다가 같이 온 다른 귀신들을 보내 줄 때가 기억에 남았다. 나는 누구고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었다, 생에 대한 어떤 아쉬움이 있는지를 무당이 설명할 때 왠지 슬프면서 동시에 마음이 풀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타인이 위로 받는 걸 보면서 나도 비슷한 효과를 받는 것일까?
굿에 따라 내가 넋두리로 느낀 부분의 길이와 거기 담긴 설움의 성격은 물론 다 달랐지만 그 부분을 듣다보면 어느 순간 ‘근데 계속 슬픔에 빠져 있어도 괜찮을까’하는 느낌이 찾아온다. 바로 그 즈음에 무당과 함께 곡의 연주가 말그대로 뛰기 시작한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슬픔이 해소되거나 전환되기를 바라는 순간이 비슷하다. 추다혜가 무가를 두고 한국 고유의 영성이 담긴 종합예술이라 한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지점이다.
사람의 심리에 맞는 구성과 긴 가사가 형태를 갖춰 내려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들-무당을 찾아간 사람들의 삶의 고민들과 무가 형성 과정에 수반되는 고민들-이 담겼을까를 생각해보면 이런 무의식이 사라지는 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학예사나 국가무형유산 이수자와 같이 전통 보존과 유지, 연구가 업인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 고유의 영성이라는 집단무의식을 일반 시민들이 그대로 감상하고 유지해가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이 간극에 연결고리를 하나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전통과 현대의 융화를 자기 색으로 소화해, 보다 현대적인 틀에 담아 대중에게 내놓는 여러 예술가들이 아닌가 한다. 추다혜는 마리끌레르 지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은 무속 음악과 대중 음악 사이의 간극을 좁힐 생각은 별로 없었고, 무가에서 살리고 싶은 포인트들을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 사운드와 잘 매칭시키는 데만 집중한다고 했다. 그러나 밴드 음악을 듣다가 퓨전 국악을 접하고 무가도 접하게 되는 리스너들이 있을 것을 생각하면 간극은 좁혀지지 않더라도 그 틈 위를 건너는 연결 고리와 같은 작은 다리들은 하나씩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2부를 여는 첫 노래는 <사자의 노래>였다. 정글의 왕 사자를 생각하고 들었는데 가사를 듣다보니 죽은 자의 노래였다. 동물 사자인 줄 알고 이 노래를 듣고 있던 때에도 푸른 밤, 푸른 물 위에서 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의 이미지가 보였다. 갑자기 망자가 된 화자는 저승사자들의 재촉에 강을 건너야 한다. 젊어서 들은 노인의 말은 저승길이 멀다더니 막상 죽음을 마주하니 저승길은 바로 대문 밖에 있다. ‘꽃은 피고 지건만’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모든 인간의 슬픔은 생의 유한함에서 시작된다. 추다혜의 현대적인 무가와 민요는 이 슬픔을 어떻게 달래주는가.
저마다 유한한 생을 가진 인간 둘이 모여 가지는 시간은 생의 길이보다 더 짧다. 물리적인 문제로 만남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고 보내줘야하는 시절인연도 있다. 다음에 이어진 <몽금포 타령>과 <싸름>은 그런 어려움과 슬픔을 노래한다. 싸름은 매미 우는 소리를 일컫는 황해도 방언으로, 이 노래에서는 정든 임 떠나보낸 ‘나’의 슬픔과 겹쳐진다.
동명의 서도민요를 재해석한 <자진아리>에서는 앞서의 슬픔이 자취를 감춘다. <자진아리>는 서도민요 가사 특정 구절에 초점을 맞췄다. 아씨와 머슴 사이에 묘한 감정이 생겼는데 아씨는 시집을 가야 한다. 가마를 잡고서 힐난하는 머슴에게 아씨는 나 시집 가는 댁에 머슴 살러 오면 네 버선에 난 구멍을 직접 바느질해주겠다고 한다. 이건 화나게 해서 정 떼려는 심산인가, 놔주지 않겠다는 심보인가? 어쩌면 상황은 안타깝게 됐지만 접을 수 없는 마음을 순수하게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씨의 속을 알 수 없어 듣는 내가 다 속이 탄다. 삶에 찾아오는 문제들 앞에서 머리로는 언젠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한다.(물론 이것도 경험이 좀 쌓여야 익숙해진다) 그러나 당장의 심정은 생생한 감정에 짓눌려 이 괴로움이 유일하고 영원할 것만 같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또렷한 희로애락 때문에, 언젠가 모두 다 헤어져 강을 건너야 한다는 아득한 슬픔은 허깨비처럼 사라진다.
모든 것은 마지막곡이자 수림뉴웨이브 오리지널곡인 <축원경>에서 앞날에 대한 기원으로 이어진다. 알 수 없는 인생, 너무 괴롭지 않게 해주세요. 소중한 사람들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것 아닐까. 밝은 분위기의 <축원경>으로 공연은 끝을 맺었다.
관객들의 앵콜 요청으로 생긴 막간 인터뷰도 끝나고 공연장 앞에서 추다혜 가수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 그날 공연의 주인공에게 좋은 공연에 대한 감사와 짧은 감상을 전한 후 들은 “또 놀러오세요.”라는 말이 따뜻했다. ‘씽씽’의 NPR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영상을 본 후로 추다혜의 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던 나로서는 그를 처음 만난 공연이 ≪엇숨≫이어서 매우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