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래도, 그려서 사랑은 남는다 - 도서 '사랑을 그린 화가들'

글 입력 2025.01.01 11:2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미술사를 배울 때, 역사 속의 유명 화가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또한 즐겨 보았다. 영화를 보며 그 아름답거나 충격적인 그림들이 화가의 일생 어떤 부분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알아가는 것이 유익하고 흥미로웠다. 다만 여러 영화를 보다 보니 다음과 같은 한계를 느꼈다. 특정 화가의 전기 영화란 영화감독이라는 또 다른 예술가의 의도가 들어가는 작품이기 때문에 같은 화가를 주인공으로 삼더라도 영화마다 그 인물이 너무나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런 측면에서 화가 자신 혹은 지인이 남긴 기록이나 화가의 자전적인 작품을 단서 삼아 파고들 필요가 있음을 종종 느낀다. TV 예능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는 도슨트 이창용의 새로운 미술 교양서 <사랑을 그린 화가들>에서는 라파엘로, 렘브란트, 클림트, 뭉크, 에곤 실레, 프리다 칼로, 그리고 이창섭 총 7인의 화가들의 개인사를 접할 수 있다. 물론 제목에서 밝히고 있듯이 개인사 중에서도 화가의 사랑과 연애, 결혼에 집중하고 있으며, 그들이 그린 사랑 주제의 그림들을 화가의 러브스토리와 연관 지어 정보를 제공하며 독자들의 감상을 돕는다.

 

 

사랑을그린화가들_띠지O_평면.jpg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사랑 이야기는 라파엘로의 절절한 순애보였다.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한 명인 라파엘로는 제빵사의 딸로서 ‘라 포르나리나’라고도 불렸던 마르게리타와 사랑에 빠졌다. 둘은 사실혼 관계로 오랜 시간을 보내지만 문제는 라파엘로의 너무도 뛰어난 재능이었다. 교황의 초상화를 그릴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교황의 신임을 받았던 그는 당대 유력자였던 비비에나 추기경의 눈에 들게 되었다. 추기경은 자신의 조카딸과 라파엘로의 결혼을 밀어붙였고 실제로 두 사람은 약혼까지 하게 되었으나 마르게리타를 배신할 수 없었던 라파엘로는 결혼을 몇 년씩이나 미뤘다. 당대의 감수성이나 라파엘로와 마르게리타 사이의 계층 차이를 생각하면 라파엘로가 입신양명을 위해 결혼은 결혼대로, 마르게리타를 정부로 두어 사랑은 사랑대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라파엘로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순정은 마르게리타를 정부로 만들 수도, 그녀를 버릴 수도 없을 만큼 무겁고 괴롭고 귀중한 것이어서, 도리어 그를 죽게 만들었다. 비비에나 추기경의 압박으로 인해 더 이상 결혼식을 미룰 수 없게 된 라파엘로는 결혼식을 얼마 남기지 않은 날 열병으로 죽어버렸다. 이는 기실 마음의 병인 것이다. 라파엘로를 잃은 마르게리타는 수녀원에 들어가는데, 수녀원에 들어가는 사유를 적는 부분에 자신을 과부라고 지칭했다고 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애보라며 놀라는 한편 마음이 더욱 아파 온 부분은 라파엘로의 죽음 이후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기껏 남긴 마르게리타의 흔적이나 두 사람의 사랑을 암시하는 요소들이 지워진 것이었다. 예를 들면 라파엘로가 마르게리타를 그린 그림에서 두 사람의 사실혼 관계를 드러내는 반지를 라파엘로의 제자 등이 덧칠하여 가려버린 일이 그렇다. 도슨트 이창용은 이 일에 대해 라파엘로와 관련된 사람들이 권력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의도로 행했을 것이라 전한다. 그러나 현대 기술에 힘입어 그림에서 반지가 복원되었고, 결국 그들의 사랑은 다시 한번 드러났다. 라파엘로는 본 도서가 소개하는 일곱 명의 화가 중 연대가 가장 앞선 인물이기는 하지만, 라파엘로와 라 포르나리나의 사랑 이야기가 첫 장으로 배치된 점이 이 책에 수록된 다른 화가들의 이야기에 관심도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았다.


화가의 정보를 알수록 작품 이해도도 올라간다. <사랑을 그린 화가들>을 읽으며 뭉크와 이중섭의 그림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차인 경험이 뭉크의 그림 주제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보았다. 이중섭 그림 속 뛰어노는 아이들 모티프가 첫 아이를 잃고 나서, 아직 어린 아들에게 친구가 없을까 저 너머에서 같이 놀 친구들을 만들어 준 일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책의 제목이 <사랑을 그린 화가들>이고 책 표지 그림은 에곤 실레가 그린 잠자리에서 서로 부둥켜안은 남녀 그림이다 보니 아무래도 이 책에서 다룬 사랑이 성애나 연애에 한정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중섭을 다룬 장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 나온 화가들 중 이중섭 부부가 가장 지고지순한 사랑을 했고, 이중섭은 연인에 대한 사랑을 넘어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인생의 사랑 범위를 넓힌 사람이지만 식민지-전쟁-빈곤으로 이어지는 시대상으로 인해 가족이 함께할 수 없었던 점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반면 화가의 개인사를 알수록 작품 이해도의 증진은 몰라도 화가 개인에 대한 호감도는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 화가가 바로 에곤 실레였다. 이미 에곤 실레의 전기적 영화로 그의 법적 송사나 연애 및 혼담 이슈는 알고 있었지만 그 시절 그의 그림과 기록들을 보며 그 사실을 더 자세히 알아가자니 화가 개인의 인간미는 더욱 떨어졌다. 미성년자 모델을 두고 선정적인 그림을 그린 일 등으로 송사에 휘말렸을 때 에곤 실레를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닌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연인 발레리 노이질이었다. 그런 발레리를 두고 결혼할 여인을 따로 점찍은 에곤 실레는 새 여자의 경계심을 낮추며 접근하기 위해 그녀와의 만남에 발레리를 동행 삼아 이용하곤 했다. 그는 혼담이 굳혀지자 자신의 후원자에게 편지로 결혼 소식을 알렸는데 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결혼 상대는 다행히도 발레리는 아닙니다. 그가 발레리를 모델로 그린 그림에서, 발레리는 도발적이고 취하기 어려운 자세로 포즈를 잡고 있어도 그녀의 눈에는 화면 너머의 그, 자신의 연인이자 화가인 에곤 실레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고 그로 인해 눈빛만큼은 편안해 보였다. 그림 속 발레리의 진심을 봤기에 에곤 실레에게는 인간적으로 더욱 실망하고 마는 것이다.


프리다 칼로의 경우 영화와 다른 책 등을 통해 그녀의 사랑 이야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책마다 새로운 정보를 접하기 마련이었다. 몰랐던 이야기나 그림을 추가로 알게 되며 읽는 내내 괴로웠다. 프리다 칼로가 직접 적었듯이, 그는 디에고 리베라를 ‘나의 살갗보다 더’ 사랑했다. 왜, 정말 왜 이렇게까지 디에고를 사랑했을까? 바람을 수없이 피우다 못해 아내의 친여동생과도 관계를 맺은 그를 말이다. 그저 한 명의 남자로만 사랑했다면 프리다는 언젠가 마음을 접을 수 있었을까? 그에게 디에고 리베라는 선배 화가이자 선배 혁명가였고, 삶을 뒤흔드는 상처 그 자체였다.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인생에 두 번의 큰 사고가 있었다고 적었는데 첫 번째는 그녀에게 두고두고 신체적 고통을 안겨 준 열차 사고, 그리고 두 번째는 디에고 리베라를 만난 것이었다. 그리고 프리다는 단연 두 번째 사고를 더 큰 사고라고 칭했다. 프리다의 이마에 리베라가 그려진, 울고 있는 자화상을 볼 때면 나까지 숨이 막힌다. 하필 프리다 칼로는 예술가였고, 그녀에게는 상처에 천착할 능력, 상처를 작품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아픔을 바로 뱉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녀의 사랑은 조금은 그 모습을 바꾸었을까? 나로서는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녀의 가족 혈통을 그린 그림을 더 오래 들여다보며 디에고 리베라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그림은 어떤 느낌인가를 더 자세히 더듬어 볼 뿐이다.

 

 

프리다 칼로_가족_크기.jpg

프리다 칼로,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나> 

 

 

한편으로는 자유분방한 연애와 성생활을 하다가 결혼 결정이나 혼외자에 대한 책임 앞에서 비겁해지는 화가들-예를 들면 이 책에 나온 렘브란트, 클림트, 에곤 실레, 디에고 리베라-을 보고 있자면 그녀가 외골수적으로 선택한 고통은 차라리 올곧아 보일 지경이다. 프리다 칼로는 괴로울지언정 도망가지 않으니까. 프리다 칼로의 사랑 이야기를 읽으며 잠시 가수 심규선의 <파탈리테>라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이 역시 사랑 노래이다. <파탈리테>에서 사랑이란 쉽게 변하고 덧없는 것이고, 그럼에도 사람을 사랑으로 이끌어서 전과 같을 수는 없게 하는 것이다. 다만 노래 속에서 피고 지는 사랑의 순간성은 그림에서는 그 순간으로 계속 고정되어 있다.


사랑, 사랑. 고통이자 달콤한 것. 그림을 변하게 만들거나 붓질을 멎게 만드는 것. 샘솟는 기쁨으로서, 혹은 눈물처럼 흘러나오는 슬픔으로서, 피처럼 솟구쳐 나오는 고통으로서 화가를 움직이게 만드는 손. 화가들이 온몸으로 겪은 감정과 기억은 작품으로 물성을 갖고 전해졌다. 화가의 경험과 의도에 따라 작품마다 보다 굴곡과 주름이 져 있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잠시 감전되듯 노래의 울림이 감상자를 지나가는 것과 달리, 회화의 감상자는 그림에 보존된 감정의 주름 하나하나를 다시 다리듯이 들여다보며 화가가 남긴 고랑에 담긴 것이 사랑의 슬픔인지, 회한인지, 아니면 두고두고 남기고 싶었던 기쁨인지를 부단히 해석하게 된다.


최근 팔로우하게 된 한 기록 인스타그래머(daaainary)의 계정에서 읽은 슬로건은 ‘영원한 건 없어도 오래갈 수는 있어요’였다. 인상 깊은 문장이었다. 화가들이 인생에서 만난 사랑이 영원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의 기록은 작품으로 남았고 이 작품의 물성 또한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남겨진 이상 오래도록 우리에게 전해질 수는 있다. 그 보존과 전달의 시간 늘리기를 도슨트의 설명이나 미술 관련 서적, 디지털 기록 등이 돕는다. <사랑을 그린 화가들> 역시 이 역할에 참여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나는 이 책에 대한 리뷰 한 편을 남김으로써 이 보존과 전달의 흐름에 작은 역할로나마 동참해 본다.

 

 

[신성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5.02.0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5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