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물론 기쁜 일이지만서도, 이런 의문을 피할 수 없었다. 왜 쇼스타코비치였을까? 그냥 대놓고 잘 보이려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대체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따뜻한 맛의 프로그램을 고를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클로징 콘서트를 ‘All Shostakovich’로 채워두었을까?
당신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를 아시는가? 내 질문은 클래식에 ‘클’도 모르는 사람이나, 작곡가라고는 베토벤 정도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 향한다. 내가 당신에게 쇼스타코비치를 소개할 기회가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특이한 사람. 요상한 매력이 있는 사람. 일단 색채감은 저리 두고, 무성영화 화면을 상상하게 만드는 사람. 검정과 회색만 같은 사람. 노래가 이상한 사람. 그런데 그 이상함에 자꾸 끌리게 만드는 사람. 기쁨보다는 슬픔을 잘 묘사하는 사람. 기우뚱! 좌충우돌. 요리조리. 빠르게, 그리고 외롭게. 자포자기한 ‘척’할 줄 아는 사람. 진실과 거짓이 한데 뒤엉켜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
설명이 왜 그러냐고? 그래서 그가 누구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고? 그러게나 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던가. 아니, 이 경우에는 한 번 들어보는 편이 빠르겠다. 그의 곡을 들어보면 내 말의 반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곡을 듣고 있으면 이 사람이 인생을 쉽게 살다 간 사람은 아니겠다는 직감이 든다. 기우뚱하고 불친절한 세계를 그려낸 음악 안에는 창작하지 않고서는 버텨낼 수 없었을 것 같은 절박함도 남아 있다. 살아보려고 갖은 발버둥을 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자신의 음악이 언제나 원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었고, 시대와 정치가 삶과 창작을 뒤흔드는 동안에도 그는 계속 곡을 남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그때의 자신과 먼 미래의 우리를 만나게 해버렸다.
이런 그를 왜 우리는 계속해서 호명하는가? 그 이유는 일단 조금 미뤄두자. 2026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의 마지막 날, 우리 앞에 놓일 두 곡 안으로 먼저 들어가 보자.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제1번 E♭장조 Op.107
1악장
누구 버전으로 들어야 가장 흥이 나게 들을 수 있을까? 이곳저곳을 누비다 첼리스트 장한나의 연주에 자리 잡았다.
뭔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안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괴상하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사람이 걸어 나오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음악에 반 이상은 미쳐 있어야 이런 시작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이 악장에는 심심치 않게 가득하다.
특유의 ‘쪼’를 느껴보시라. 이 맛에 빠져들면 정형화된 곡 안에서 규칙적임을 고집하는 순간들에 도리어 고통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날 첼리스트에게서 어떤 캐릭터를 발견해낼 것인가?
2악장
앞뒤를 다 잘라야 한다. 그러니까 앞선 악장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잠시 잘라내고, 공연이 끝난 뒤 다시 이어 생각해야 할 일들에도 쉼표를 주자. 그러고는 첼로가 무게감을 줄이고 목소리를 낮춘 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보자.
가만 듣다 보면 소리가 내 말꼬리를 붙잡을 것이다. 고집은 세 보이지 않는데 손을 놓지 않는 걸 보면 쉬이 떠날 수 없게 만들려나 보다. 사념이 자리할 시간. 염려가 몸집을 키우는 때. 울컥이는 마음이 조금은 진정된 자리에서 부르는 노래, 끊기지 못하는 꿈. 외로운 줄 모르는 학의 몽상.
3악장
첼로에게 시간이 주어졌다. 검은 종이 위에 하얀 음표를 하나둘 채워 넣으며, 까맣기만 한 채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버려져 있던 곳을 채우기 시작한다. 어디서 시작할지, 무슨 그림을 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싸늘한 공기 속 먼지 한 톨조차 떠다니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것인가. 그와 함께 악장 끝까지 달려보면 알 수 있겠지.
4악장
오케스트라가 첼로의 곁을 치근덕거리고, 장식하기 시작한다. 그는 길을 이끄는 자인가. 사실은 도망치는 중인 걸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길을 헤매는 사람처럼 정신없이 굴다가도 결국 어딘가를 향해 걷고 또 걸을 것이다. 앞으로 가고 있는 건지, 어디선가 벗어나고 있는 건지 좀처럼 알 수 없다.
도대체 이게 이별을 위함인가? 그냥 한 번 몰아쳐보기 위해 모여든 것인가? 그들의 항해에 이유를 붙일지 말지, 이날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d단조 Op.47
1악장
일단 밝은 분위기는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축제의 마지막에 이래도 되나 싶겠지만, 쇼스타코비치 탄생 120주년도 기념하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들뜬 마음도 이쯤에서 한 번 가라앉혀보면 좋을 테니, 현악기가 비튼 마음을 노래하는 구간에 나름의 허밍을 곁들여보면 어떨까?
오묘하게 스산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수상한 기운이 가득하다. 다들 은근히 ‘경고’를 보내는 것만 같다.
하프가 함께할 때는 잠시 다른 풍경이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현과 활 사이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두세 겹의 시원한 실선 같은 소리도 지나간다. 아름다움을 노래하려는 순간, 바순이 그 결심을 깨트리고 플루트가 가련한 위로를 더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웃는 얼굴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 웃음이 따뜻한 분위기 안에서 건네지는 것은 아니다. 고요히 덜컹이는 풍경을 상상해보자. 무언가를 계속 고조시키기보다 오히려 손 한 뼘 아래쯤 떨어뜨려 놓는다. 다가오지 말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타악기들이 행진을 시작한다. 온갖 북이 앞으로 간다. 전진할 것이다. 이제 보니 사람의 말소리라기보다 신념이 보내는 모스부호를 닮아 있다.
이것이 합류의 신호인지, 멀리 떨어지라는 언질인지는 마지막 악장까지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2악장
도입부를 살펴보니 일단 격전지로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들어갈 땐 비장하더니 막상 문을 열고 그 안을 살펴보니 밝은 구석도, 씩씩한 면모도 가득하다. 위트와 우아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특히 바이올린과 하프가 먼저 노래하며 그 두 가지를 잊지 않았다고 콕! 짚어줄 것이다. 사교댄스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이 악장에서 약간 스텝을 밟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 현악기군이 피치카토를 이어나갈 때!
나도 모르게 호두 안 까는 인형의 세계관을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그래, 여기서 그 딱딱한 호두 껍질을 까먹을 시간 여유는 없다. 일단 안개 속에서 지휘자가 말한 대로 가는 거다.
3악장
아까의 기운 좋음은 어디 가고, 조금 전의 첼로 협주곡 제1번 2악장과도 닮은 애잔함이 눈앞에 가득할 것이다. 클래식 안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새파란 기운은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다.
그어내는 자들의 손끝에는, 불어내는 자들의 입가에는 눈물이 흐른 기척이 남아 있는가? 그들은 왜 우리를 자꾸만 홀로 남겨두는가? 쇼스타코비치는 왜 이 흐름 속에 관악기와 고요한 첼로를 내려놓고, 우리까지 함께 가라앉히면서 그 먼 곳까지 동행하게 만드는가?
지휘자의 손바닥 안에서 홀로 혹은 몇이서 노래하는 관악기를 주목하고, 한껏 웅크린 채 잔물결이 되어버린 현악기의 ‘긴 머뭇거림’을 연민하자.
23일의 그들이 ‘풀이 죽어 있는 듯’한 이 악장의 기운을 얼마나 깊게 표현해내고, 기어코 고개를 들어버리는 순간의 ‘개운함’을 어떻게 묘사할지 기대하자.
이 악장까지 미리 지나온 지금, 나는 이날 마주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이 그야말로 ‘영화’만 같겠다고 예상하기 시작했다.
아, 잿더미에 빛이 박히는 소리가 나겠구나. 잃어버린 마음에 실빗금이 기다랗게 그어지겠구나. 아픈 사람이 많다. 고독한 박동에 눈물짓지도 못하고 사무친 채로 서 있는 사람이 거기 있구나.
4악장
아이고, 야단났다. 앞뒤 안 가리고 쏟아붓는 때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경쾌한 리듬을 잊지 말라고, 뭐가 되었든 ‘속’의 이야기는 들키지 말라고, 애초에 그럴 틈을 주지 말라고 빠른 속도감으로 좌중의 정신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생각이 좌로 가는지 우로 가는지도 모르게 만들 것이다. 지휘자가 바라보는 방향의 모든 악기에게 정열적인 ‘척’ 노래하라 할 것만 같다.
적어도 내게는 이곳에 온전한 진심을 담으면 안 되는 것처럼 들렸다. 진심이라는 이름은 달아두되, 본심은 꽁꽁 싸맨 채 공허한 마음을 밀어 올리는 것처럼.
있는 마음을 다하고 없는 힘까지 덧댄다고 해도 당분간 행복해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의미심장해 보이도록, 다정해 보이는 면모로 상대를 안심시키며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한 구석이라도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곳이 나타난다. 물론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하프가 노래한 자리, 그다음부터는 어떡할까? 살짝이라도 사람 냄새 나게 해볼까 말까. 여기서 웃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새로운 바람을 데려올 이는 누구인가. 끈질기게 따라붙는 이의 정체는 또 누구인가.
끝까지 정답을 알려주는 이 하나 없이 현악의 짧은 소리들만이 귓가를 메울 것이다. 이게 무엇을 위함인지,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끝에 끝까지 열린 결말로 남겨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의 질문을 아직 남겨두고 있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왜 계속해서 호명하는가?
연주가의 입장도 아니고, 작곡가의 열렬한 팬도 아닌 내가 그 이유를 굳이 찾아야 한다면 이렇다. 살다 보면, 그가 필요한 순간이 반드시 있다.
새카만 노래가 필요한 때가 있다. 삐쭉거리는 선을 오두방정 떨듯 그으며 이곳저곳을 헤집어놓는 사운드가 필요한 순간도 반드시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 입을 동그랗게 모아놓고, 팔다리도 움직이지 않은 채 ‘화’와 비슷한 모든 감정을 사그라뜨려놓아야 할 때. 혹은 울분을 삭여야 할 때.
혹은 그냥, 완전히 지쳐버린 순간에 나 대신 그 마음을 한바탕 풀어헤쳐줄 대리인이 필요할 때.
그냥 내 세상보다 ‘복잡’한 저것이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기만 해도, 이상하게 명치에 뻐근하게 서려 있던 ‘응어리’가 조금 풀어진다. 그를 왜 축제의 가장 마지막에 데려다 놓았을까?
탄생 120주년을 기념한다는 이유도 물론 좋다. 그런데 어쩌면 공연이 끝나고 월요일을 맞이해야 하는 우리를 대신해, 그가 한 번쯤 흔들려주는 것이 아닐까. (소근소근)
2026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2026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는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IBK기업은행챔버홀, 리사이틀홀에서 열린다. ‘Pack Your Summer with Classics’를 슬로건으로 여섯 날 동안 국내외 연주자와 다양한 실내악 무대를 선보인다.
라벨의 음악으로 시작한 올해 음악제는 마지막 날 쇼스타코비치 탄생 120주년을 기념하는 ‘All Shostakovich’ 무대로 여정을 마무리한다.
8월 23일, 이승원 & 아나스타샤 코베키나 with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8월 23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지휘자 이승원과 첼리스트 아나스타샤 코베키나,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클로징 콘서트를 장식한다.
전반부에는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제1번 E♭장조 Op.107을, 후반부에는 교향곡 제5번 d단조 Op.47을 연주한다. 2021년 제1회 음악제를 이끌었던 이승원이 다시 지휘봉을 잡아, 쇼스타코비치의 두 작품으로 올해 국제음악제의 마지막을 함께한다.
[프로그램]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제1번 E♭장조 Op.107
D. Shostakovich, Cello Concerto No.1 in E♭ Major, Op.107
Intermission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d단조 Op.47
D. Shostakovich, Symphony No.5 in d minor, Op.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