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에 온전히 몰입하고 주의를 기울여 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선뜻 답을 꺼내기 어려울 것이라 짐작한다. 우리는 편리함과 효율이 삶의 윤택함과 쾌적함을 가늠하는 가장 큰 척도가 된 시대에 살고 있다. 자기계발을 위한 운동을 제외하면, 몸으로 땀을 흘리며 이뤄내는 결과물들은 쉽게 잊히고 만다. 살아가면서 몸의 감각을 잊는 일은 그만큼 손쉽게 벌어진다. 결국 몸도 소모품이기에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동시에 몸으로 해낼 수 있는 다양한 수행들을 떠올려 보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무얼 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카셀무용단의 몸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응답한다. <황홀경에 대하여 – 변형된 '교향곡'>은 무용이라는 예술의 한 갈래를 넘어,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신의 몸과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고 몰입함으로써 하나의 '연결'이 이뤄진다. 그리고 그 연결은 타인, 나아가 그 너머의 세계와 공명하는 가장 솔직하고 아름다운 매체로 탄생한다. 무대 위에는 춤이라는 이야기를 가장 탁월하게 전달하기 위해 단련된 몸들이 땀에 젖어 번뜩이는 빛을 내며 서 있었다.
카셀무용단은 2021/2022 시즌에 창단된 신생 컨템퍼러리 무용단으로, 예술감독 토르스텐 토이블의 기획 아래 동시대 무용의 지형을 넓히는 데 집중해왔다. 매 시즌 세계적인 객원 안무가를 초빙해 신작을 위촉하는 창작 구조가 이 무용단의 가장 큰 특징이다.
서울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공연되는 <황홀경에 대하여 – 변형된 교향곡>은 펑크와 트랜스, 의례적 감각을 재료 삼아 몸에 내재된 원초적 에너지와 그 변형의 순간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무용수들의 몸을 통해 불안과 욕망, 저항과 해방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그려내며, 관객에게는 하나의 공연을 넘어 몸과 감각, 존재의 경계를 새롭게 체험하는 순간이 된다.
그들을 통해 본 우리 모두의 몸은 삶 속의 생활감과 실용성에 그치지 않고, 그 무대를 넓혀 나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감각의 영역, 그리고 예술의 영역까지 __ 몸이라는 매체는 그 모든 범위의 교집합에 선 주체로 기능할 수 있음을, 또 다른 몸들의 수행을 마주함으로써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결국 예술가를 포함한 모든 인간에게 있어 자신의 몸으로 예술과 감정, 감각과 같은 추상적 개념과 서사를 구현해낸다는 것은 가장 주체적이고 열정적인 창조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춤이란 것은, 같은 움직임 안에서도 각자의 개별성을 포용한다는 점에서 가장 따뜻한 예술적 몸짓이자 손짓일 수도 있겠다. 동시에 일상 속에서 정신적 열망을 담아내는 매개로 기능하던 몸을 해방시킨다는 점에서 더없이 시원하기도 하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의례와 춤을 통해 슬픔을 나누고 공동체를 이뤄왔다. 함께 추는 춤은 각자의 시선을 맞추는 동시에, 서로의 몸짓을 섞어낸다. 몸과 춤과 숨이 얽히는 무용은 하나의 또 다른 세계와 같다. 중요한 것은 그 세계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점이며, 우리의 삶 또한 함께 숨을 뱉고, 서로를 감싸 안고, 얽히고 돌아서기를 반복한다는 점이다. 이는 무대의 가벽 뒤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처럼, 가늠할 수 없는 다음의 태양을 향해 나아가기 위함이며, 다시 함께하기 위함일 것이다.
결국 카셀무용단이 그려낸 변형된 '교향곡'은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선율과 닮았다. 각각의 몸짓과 행위가 음표가 되어 백지의 무대 위에 완성된 하모니를 그려낸다. 교향곡, 즉 심포니아는 '함께 울린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그들이 춤으로써 울린 것은 그저 무대 위에 수놓인 춤이라는 작품뿐만 아니라, 그 아래 관람객들의 감각과 감정까지이다. 그렇게 무대와 객석은 함께 공명하고 감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