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오컬트와 심령물에 대한 인기가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
일전에 오컬트나 심령물은 마니아틱한 인기를 구사하는 장르로서 영향력과 독보적인 팬층을 꾸준히 꾸려왔지만, 요즈음 들어 이 '오컬트' 장르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도가 높아지고 진입 장벽 역시 크게 허물어졌다.
2024년에는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가 천만 관객을 달성했으며, 2025년에는 이우혁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퇴마록〉이 개봉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사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2025), 올해 방영한 〈운명전쟁49〉, 〈샤먼 : 귀신전〉 등 한국 전통 무속을 바탕으로 한 작품과 방송이 연이어 성공을 거두었다. 대중들의 인식 자체가 '기괴하고 마니아틱한 비주류'에서 '충분히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대중 서사'로 편입된 것이다.
오늘 추천할 작품들은 한국 무속을 직접 배경으로 한 만화는 아니다. '무속'을 주제로 한 한국의 웹툰들은 종종 찾아 볼 수 있지만, 일본 만화계에서는 당연히 일본의 무속 신앙 등을 바탕으로 한 만화가 많다. 다만 오늘은 이렇게 오컬트라는 장르에 매혹된 독자들이 세계관을 확장해 즐기기에 손색없는 심령·오컬트 만화 5편을추천해보고자 한다.
다만 오컬트라는 장르에 매혹된 독자들이 세계관을 확장해 즐기기에 손색없는 일본의 심령·오컬트 만화 5편을 꼽아보았다. 한국의 무속이 주로 한(恨) 맺힌 원혼을 달래고 부정을 털어내는 '해원(解冤)과 정화'에 방점을 둔다면, 일본의 오컬트 서사는 인간을 초월한 자연물과 괴이를 있는 그대로 경외하고 공존하거나, 불가항력적인 저주를 감내하는 '경외(畏れ)와 순응'에 가까운 결을 보인다. 두 문화권의 묘한 정서적 차이를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장르적 재미는 배가된다.
1. 토가와 요난, 『흑무경담』 (2023~)
『흑무경담』은 2023년에 연재를 시작한 따끈따끈한 신작인데, 특이하게도 19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을 무대로 삼았다. 조선총독부가 비밀리에 은닉한 '검은 옷의 무녀' 최월자와, 기이한 괴담을 쫓아 일본에서 건너온 소설가 이와야 쿄스이가 콤비를 이루어 기괴한 사건들을 파헤쳐 나간다.
식민지 시대 경성의 어둡고 음산한 공기, 그리고 조선 특유의 무속 신앙을 일본 작가가 공부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또 교묘하게 마냥 '한국'스럽지는, 새로운 맛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2. 코노시마 루카, 『찍히지 않습니다』 (2024~)
온갖 악령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초영매 체질의 소년 마코토. 그가 오컬트를 지독히 좋아하지만 영감은 0%인 소녀 미치루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치루는 본인만 모를 뿐 귀신을 죄다 박살 내버리는 강력한 체질의 소유자였고, 덕분에 마코토는 인생 처음으로 '귀신이 찍히지 않은' 온전한 제 사진 한 장을 건네받게 된다.
『 찍히지 않습니다』 역시 요즘 입소문을 타는 최근작이다. 오컬트에 코믹을 깊이 더한 학원물로, 오싹한 순간 치고 빠지는 개그, 매력적이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자아내는 이야기가 상당히 재밌다.
흡사 『모브싸이코100』이나 『주술회전』의 일상적인 파트 같다고도 볼 수 있다.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귀여운 오컬트코미디이다.
3. 이마 이치코, 『백귀야행』 (1995~)
만화를 조금이라도 깊게 파본 사람이라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동양 만화계의 전설, 이마 이치코의 전설적인 명작이다.
조부의 계약으로 요괴 '아오아라시'를 아버지의 몸에 모시고 살아가게 된 소년 리쓰가 다양한 괴이에 휩쓸린 사람들을 마주하고, 이들을 돕는 옴니버스식의 만화이다. 일본 괴이물 특유의 아릿한 슬픔, 어쩔 수 없음을 감내하고 그저 조금이나마 평안하기를 기원함. 일본 요괴에 대한 이모저모를 알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화려한 액션이나 무서운 장면은 없지만, 특유의 섬려하고 아름다운 작화와 서정적인 이야기가 장악하는 분위기 역시 상당하다.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말 없는 기이한 존재들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지켜보다 보면, 일본 특유의 '괴이와의 공존'이라는 정서가 왜 문학적으로 다가오는지 단번에 납득하게 된다.
또 1995년부터 지금까지 비정기적으로 계속 연재중인 작품이라, 읽을 때마다 90년대 일본의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 있다.
4. 시이나 우미, 『아오노군에게 닿고 싶으니까 죽고 싶어』 (2017~2025)
사귀기 시작한 지 딱 2주 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 그리고 유령이 되어 나타난 그와 어떻게든 함께 있고 싶어 죽음까지 생각하는 여고생의 이야기.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다. 죽은 남자친구의 유령과 계속해 연애를 이어나가는 소녀 유리의 이야기인데, 초반부는 악령, 빙의 등이 몰아치는 오싹한 오컬트물로 진행되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토속 신앙, 트라우마, 가정폭력 등의 소재를 오컬트와 로맨스를 함께 엮어 깊이 탐구한다.
가족이 서로에게 가지는 사랑과 폭력, 그것이 인간의 마음에 어떤 상해를 남기는지. 사랑과 폭력의 경계가 무엇인지, 어떻게 건강하게 사랑하고 나아가고 이별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사랑이란 필수적으로 침범과 폭력을 동반함을, 또 죽음이 그 모든 것으로부터 어떻게 인간을 서로 떼어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지.
제발 사랑과 분노를, 모멸과 그리움을 한곳에 두지 말아줘.
- 아오노군에게 닿고 싶어서 죽고 싶어 10권 중
5. 모로호시 다이지로, 『시오리와 시미코』 (1996)
호러 만화계의 거장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그려내는, 기괴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기담 시리즈다. 고서점 주인의 딸 시미코와 엉뚱한 독서광 시오리가 사는 마을에는 골목길에 잘린 머리가 굴러다니거나 외계 생명체, 요괴가 이웃 주민처럼 자연스럽게 출몰한다.
자칫 소름 끼칠 수 있는 오컬트 소재들을 무심하고 유쾌한 블랙코미디와 부조리극으로 비틀어버리는 작가의 독보적인 유머 감각이 빛난다. 서늘한 공포에 짓눌리기보다는 기묘하고 지적인 유희로서 오컬트를 가볍게 즐겨보고 싶다면, 이 작품으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