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 오래된 관객이다. 인생 전반에 걸쳐 문화예술은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요소이다. 문화예술을 보고, 듣고, 즐기는 일은 걷거나 말하는 것보다 먼저였을지도 모른다고 장난처럼 말할 수 있을 만큼 집의 문화이기도 했다. 감사한 일이다. 집에는 LP 플레이어가 있고, 오래된 LP들은 지금도 방 한쪽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기억에 남아 있는 첫 공연과 전시는 초등학생 때이고,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음악 페스티벌 유경험자가 되었다.
책과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섭섭하다. 스스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대학에 들어온 뒤였다. 대학교 도서관은 제2의 강의실이자 거대한 아지트였다. 공강이 생기면 도서관으로 향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생각보다 도서관을 찾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책을 꽤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영화는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시작점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영화관에 갔던 기억은 선명한데,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가기보다 그냥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좋아서 갔다. 어두운 공간에 낯선 사람들과 모여 같은 스크린을 바라보고, 동시에 울고 웃고, 불이 켜지면 각자의 일상으로 다시 흩어지는 공동체적 경험이 좋았다. 매일 반복되는 학교와 집 사이의 단순한 생활에서 영화관은 즐거운 일탈이기도 했다.
그렇게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연과 전시를 찾아다니는 사람으로 오래 살았다. <맘마미아>는 영화로 본 후 모든 곡을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게 된 대표적인 작품이다. 수록곡의 원작자 ABBA는 〈Thank You for the Music〉에서 음악 없는 삶을 상상하며 음악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한다. 나에게도 문화예술은 그런 것이다. 특별히 이유를 설명할 필요 없이 감사하게 늘 삶에 당연하듯 존재하는 것이다.
Who can live without it I ask in all honestyWhat would life be
Without a song or a dance what are we?
So I say thank you for the music
For giving it to me
Thank You for the Music(1977) - ABBA
긴 세월 관객으로 살면서 문화예술이 익숙하고 좋아하던 중에 어느 날부터인가 한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조금 부끄러웠다. 정확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소비’하는 일을 즐거워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공연을 보면 티켓값을 내고 편하게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전시를 보면 입장료를 내고 작품을 바라보다 전시장을 나온다. 영화관에서는 꿈처럼 두 시간이 지나간다.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느끼지만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일에 누군가 만든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소비라는 생각이 남았다.
반면 누군가는 그 시간에 운동하며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없던 것을 만들고, 빵과 과자를 구워 주변 사람을 기쁘게 한다. 뜨개질을 하든, 요리를 하든, 무언가를 배우든 결과물이 남는 생산적인 취미들이 눈에 들어왔다. 좋아하는 것이 이렇게 많은데, 정작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떠올려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트인사이트 활동에 더 몰입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시작은 단순한 마음이었다. 글 쓰는 것이 좋았고, 경험한 좋은 문화예술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소비만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생긴 뒤부터는 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좋은 경험이 한순간의 감상으로 휘발되는 것이 아쉬웠다. 글을 통해 좋은 콘텐츠로 재생산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향유하는 사람을 넘어 무언가를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편에서는 현실에 제대로 발을 붙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문화예술은 여전히 좋았지만, 그것만 바라보며 살다가는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함이 있었다. 조금 더 현실적인 것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된 분야가 금융이었다.
처음에는 금융을 문화예술의 정확히 반대편에 있는 세계라고 생각했다. 문화예술이 사람의 감정과 취향, 상상과 창조의 말랑한 세계라면 금융은 숫자와 돈, 계산과 판단의 단단한 세계처럼 보였다. 금융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하나에는 문화예술과 달리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올 한 해 동안 열심히 들여다보니 예상과 조금 달랐다. 차트를 움직이는 것도,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었다. 기업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판단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소비자는 시장에 나온 많은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투자자는 수많은 기업 가운데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곳을 찾아 돈을 맡긴다. 같은 숫자를 보고도 누군가는 사고, 누군가는 판다. 사람의 판단이 모여 하나의 가격, 주가가 형성된다.
숫자로 가득해 보였던 세계의 뒤편에도 결국 사람의 기대와 선택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화예술이 금융을 공부하기 전보다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 한 편이 세상에 나왔다고 생각해보면, 관객은 수많은 작품 중 그 영화를 선택한다. 티켓을 사고 두 시간을 내어준다. 마음에 들면 친구에게 이야기하고, 때로는 두 번 세 번 다시 본다. 처음에는 작은 영화였던 작품이 입소문을 타게 되면, 예상하지 못했던 관객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한 작품이 살아남으면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영화 티켓 한 장을 사는 일과 기업에 투자하는 일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하지만 동일하게 그들이 계속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결국 그것을 기다리고, 기대하고, 선택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그 단순한 사실을 오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가운데에는 조금 독특한 영화들도 있다. 설명을 듣고도 도대체 어떤 영화인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 영화, 누가 투자해서 만들었을까 궁금해지는 영화들이다.
<지구를 지켜라>처럼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충분한 관객을 만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부고니아>라는 리메이크 작품까지 만들어지며 다시 발견되는 영화가 있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처럼 단순하지만 공감이 되는 주제를 과감한 상상력으로 전 세계 관객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올해 개봉한 <디스클로저 데이>와 <호프> 같은 작품을 보면서도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영화가 계속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내가 작품을 좋아할 때 자주 품었던 마음은 바로 이것이었다. ‘잘됐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이 감독이 다음 작품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런 영화가 흥행해서 제작자들이 ‘이런 것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투자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감상을 넘어선 뜨거운 마음이었다. 응원이었다.
그제야 한동안 부끄럽게 느껴졌던 나의 ‘소비’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기업의 가능성을 판단하고 자신의 자본으로 가능성에 투자하듯, 관객 역시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에 아주 작은 응원을 전하는 것이다. 영화 티켓 한 장, 전시 한 회, 공연 한 자리, 책 한 권, 음반 한 장은 거대한 산업 안에서는 작은 숫자일 것일지 몰라도, 그런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문화예술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무언가를 만들고 기록하는 일이 좋다. 좋은 작품을 보면 자연스레 작은 노트를 꺼내어 감상을 적게 되고, 조각 생각들을 모아 글을 쓰고 싶고, 내가 받은 기쁨을 다시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경험이 반드시 결과물이 되어야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저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다.
앞서 감히 문화예술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묘한 역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예술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잠시나마 비현실적이고 꿈과 같은 시간이,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예술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영화 한 편 뒤에는 제작비와 계약서와 촬영 일정이 있고, 공연 한 편 뒤에는 수많은 연습과 각 영역의 성실한 노동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생계이고 직업이며 치열한 현실이다. 그들의 노고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는 늘 고맙다는 마음에서 비롯한 응원이 있었다. ‘소비’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긴 시간 누군가를 ‘응원’하며 살아왔다. 이 마음을 지키며 오래도록 관객이고 싶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조금은 희한하고 아름다운 시도를 발견하면 티켓을 사고 싶다. 좋은 작품을 만나면 주변 사람에게 신나게 떠들고, 기억하고 싶은 경험이라면 글로 남기고 싶다.
앞으로도 기꺼이, 오래된 관객으로 남아 예술을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