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난생처음으로 야구장을 갔다

조용하지만 뜨거운 야구와 관중
글 입력 2023.10.1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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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으로 야구장을 갔다.

 

좋아하는 야구 선수가 있지도 않고, 스포츠 경기를 직관한 경험도 하나 없는 내가 그곳을 찾아간 이유는 단순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유난히 올해 들어 주위 사람들이 야구에 열광하고 분노하고 시간을 쏟아붓는 것을 자주 보았다.

 

“야구 보세요? 어디 팬이에요?” 스포츠와 거리가 멀어 보였던 사람들도 저 질문을 받는 순간 눈을 반짝인다. 그러고는 각자 마음에 품은 구단을 신나게 풀어냈다.

 

대체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 한 번쯤은 나도 그들의 경험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정규 시즌 중인 야구장을 찾아갔다.

 

사실 가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나는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에 발야구도 제대로 못 하는 애였다. 나한테 주어진 임무만 수행하느라 바빴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러니 지금도 야구 규칙을 전혀 모르는 내가 응원법을 따라 하기는커녕, 경기를 제대로 볼 수나 있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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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 한 스푼, 불안감 세 스푼 떠안고 도착한 야구장은 정말 많은 사람과 정말 많은 음식으로 가득했다. 한국 야구는 먹으러 가는 재미라고 누군가 그랬는데. 사실이었나 보다. 치킨 피자만이 아니라, 삼겹살, 비빔국수, 만두, 떡볶이 등 온갖 맛있는 것들이 내 위장과 마음을 들뜨게 했다.

 

야구장 처음 와 본 사람답게 치킨과 맥주를 사 들고 경기장에 들어선 순간, 그 커다랗고 웅장한 모습에 나는 압도되었다. 경기장 자체가 처음이라 그런가. 좌석 간 간격이 좁아 발을 디딜 공간이 협소한데, 경기장 2, 3층 높이에 서있자니 다리가 조금 후들거렸다. 이대로 앞으로 굴러떨어지면 어떡하나, 치킨을 앞사람 머리에 쏟으면 어떡하나. 말도 안 되는 상상인 줄 알지만, 굉장히 가파른 경사의 관람석에 앉으니 긴장됐다.

 

하지만 이렇게 경기장 한가운데를 향해 쏠린 구조 덕분인지 선수들이 뛰는 구장은 아늑하면서도 안정감 있어 보였다. 야구공 하나에 집중해야 하는 선수들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것은 수많은 관중이었다. 나에게는 그 광경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야구장 관찰에 바쁜 나와 달리, 관객들은 각자의 응원 도구를 들고 경기 관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전장에 같이 나가는 선수들처럼 비장해 보이기도 했다.

 

홈팀과 원정팀에 따른 경기 진행 차이를 같이 온 친구에게 배우고 있을 때, 경기가 시작되었다. 어렵게 생각했던 야구 규칙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수비는 공을 잘 던져서 못 치게 한다. 공격은 날아오는 공을 잘 치고 잘 뛴다.

 

덩치가 커다란 저 선수들의 주먹보다도 작을 야구공의 움직임을 좇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선수가 위치한 자리마다 포지션이 명확하니 굉장히 직관적인 게임이라는 것도 알았다. 농구나 축구(골키퍼 제외)는 고정된 위치에서 하나의 역할만 맡지 않다 보니, 오히려 야구는 선수 하나하나를 잘 구분하여 집중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타자’였다. 공격과 수비가 바뀌고 게임이 시작될 때 타자는 그라운드에 혼자다. 주위는 모두 수비를 맡은 상대 팀에 둘러싸여 있다. 그라운드에 있는 모두가 자신이 공을 못치기를, 헛스윙하기를 적막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전까지 ‘야구’라고 하면 ”깡-!”하고 배트에 공이 맞는 소리, 그리고 1루, 2루, 3루에서 미친 듯이 달리는 선수들의 격렬한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렸었다.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점수를 마구 획득하는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하지만 내가 직접 보게 된 야구는 조용한 압박감 속에서 승부가 갈리는 스포츠였다. 타자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자신의 집중력과 실력, 운의 박자를 맞춰 적막을 깨뜨렸다.

물론 이때 적막하다는 건 그라운드의 선수들이 그렇다는 거지, 관객석은 가장 시끄러울 때였다.야구장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 듯한데, 바로 자기 팀이 공격하는 차례일 때만 단체 응원을 한다는 것이다.

 

”OOO~ 안타!”라던가, 타자 선수의 전용 응원가를 부르며 응원하고, 응원 단장은 쾅쾅 북을 치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대부분의 응원가, 응원법에는 팔 동작이 있는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팔을 휘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걸걸한 아저씨의 울림통 큰 목소리와 삐약삐약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어린이의 목소리가 같은 음절을 낸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타자의 이름을 수많은 관중이 외치며 한 목소리로 응원한다. 나는 그 응원의 주인도 아니었는데, 전율을 느꼈다. 내가 그 선수라면 정말 힘을 마구 얻을 것 같았다. 당장 달려가서 “선수님, 응원법을 들을 때 심정이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응원하는 팀이 수비 차례일 때도 작은 응원을 한다. 상대 팀 타자가 친 공을 잘 막았을 때 열렬한 박수와 함성을 보낸다. 하지만 긴 응원가를 부르거나 노래를 틀지는 않는다. 수많은 관중이 모여있음에도 서로를 향한 예의와 질서가 존재했다.

 

상대 팀 선수의 이름을 외칠 때도 있었다. 자기 팀이 친 공에 맞아 다치거나 했을 때, 그 선수의 이름을 외치며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응원한다. 야구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격렬하고 조금은 거친 이미지로 보아왔던 지난날의 생각들이 싹 씻겨 내려갔다.

 

내가 응원하던 팀은 졌다. 몹시 압도적인 점수 차로, 9회 말 없이 경기가 종료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팀 관중들은 끝까지 그들을 향해 응원하고,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쳐주었다. 경기장을 나서면서는 궁시렁 궁시렁 선수들을 비판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들을 아끼는 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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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열기가 군중들의 해산과 함께 흩어졌다. 나도 그 열기 속에서 같이 에너지를 쏟아부어서인지 힘이 좀 빠졌지만, 굉장히 들떠있었다. 현장에서 보는 야구는 ‘보는 야구’가 아니었다. ‘같이 하는 야구’ 같았다.

 

야구에 아주 작은 흥미를 틔운 것 같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야구팬 친구가 득달같이 내게 달려와 자기 팀을 영업하기 시작했다. 나는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야구’에 관한 그들의 흥분된 목소리, 표정, 생각이 마구 분출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았다.

 

야구장을 가본 덕에 나는 두 가지를 얻었다.

조용하지만 뜨거운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의 재미와

내 소중한 사람들의 감정을 공유할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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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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