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인 네가 어떻게 ‘음악’을 완성할 수 있느냐고 묻겠지만, 그 순간에 있었던 소리와 시선, 거기서 피어난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는 건 결국 그때의 나뿐이었다. 과거의 나도, 내일의 나도 아니었다. 당장 그 음악을 겪고 있는 ‘나’밖에 없었다.
안경
“이제 안경을 조금씩 쓰고 다니세요.”
관자놀이 부근의 안경테를 얼굴에 맞게 꼬옥- 눌러주던 안경사 분의 말에 나는 “네?” 하고 반문했다.
내게 안경이란 영화관에 가거나 컴퓨터를 오래 봐야 할 때, 눈을 보호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 덜 피곤하고 싶어 쓰는 ‘도구’였다. 그저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봐야 하는 순간에만 떠오르는 것. 없어도 일상생활에 별다른 지장은 없었다.
그러니 나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왜요?”
꽤 두꺼운 안경알로 만들어진 검은테 안경을 쓰고 있던 안경사 분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어나가셨다.
“사람의 눈이라는 게 항상 힘을 주고 있어요. 사실은 잘 안 보이는 건데 눈에 힘을 줘서 잘 보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그래서 아마 안경을 쓰고 다니게 되시면, 안경을 안 끼는 날에 오히려 더 잘 안 보이게 되실 거예요. 안경을 쓰면서 눈에 힘이 풀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오히려 더 안 보이겠죠.”
나는 그래도 시력이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안경도 내가 필요할 때만 찾아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눈에 힘을 주고 다녔었나? 괜히 ‘난 눈에 힘 준 적 없는데.’ 하고 속으로 반항하려다가도 공연 볼 때를 생각하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을 부정할 수도 없어 고개를 끄덕끄덕-. 잘 끼고 다니겠다 말하며 안경원 밖으로 나섰다.
내가 눈에 힘을 언제 줬었더라. 집에 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공연을 볼 때 말고는, 컴퓨터 앞에 있을 때 말고는 별로 억지로 무언가를 선명하게 보려고 했던 적은 없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 요즘의 반은 공연이고, 나머지 반은 컴퓨터 앞이었다. 아이쿠. 눈에 힘만 주고 살았구나. 그걸 그때가 되어서야 눈치챘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나. 나는 눈앞의 스케줄을 생각했다. 당장 이번 주 금, 토는 또 공연을 보러 부산으로 내려갈 텐데. 내가 글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누가 쓰라고 한 것도 아니고, 쓰지 않을 이유를 대라면 얼마든지 가져다 놓을 수 있는데…. 결국 28일과 29일을 다 지나온 나는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핸드폰을 토닥토닥- 이며 8월 마지막 주의 연주를 되새겼다.
나는 언제 눈에 힘을 풀 수 있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웃음) 일단은 적는 데까지는 적어봐야지. 당분간은….
8월 28일
공연 도입부, 사회자로 등장한 다니엘 린데만은 슈베르트 현악 3중주를 이렇게 소개했다.
슈베르트가 19살 때 가족과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를 위해 만든 곡이고, 이 곡에는 유명한 특징이 하나 있다고 했다. 1악장은 완성되어 있지만 2악장은 39마디에서 끝난다는 것. 미완성작이다. 왜 거기에서 멈췄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마음 편한 그 상태 그대로 슈베르트의 곡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저 완성되지 않은 채의 상태가 뭐 그리 중요할까? 어차피 여태까지 잘 보존되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39마디에서 끝났다는 일이 유명해진 것도 사실 그 곡이 슈베르트의 작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눈앞에 나타난 또 다른 네모난 상자를 바라봤다.
네모 안에는 의자가 놓여 있고, 악보를 올려둘 보면대가 놓여 있다. 이제는 익숙하게 여길 법도 한데, 내가 사는 곳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처음 보는 공간에 놓인 저 까맣고 네모난 것들은 괜히 낯설게만 보인다.
그래도 오래 낯가릴 일은 아니었다. 곧 내가 이제는 익숙한 ‘아는 얼굴’이라 여기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고, 애초에 그들을 보러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
그렇다고 마냥 새로운 곳에 왔다고 신나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기대감을 가질 수는 있을지언정 들뜰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냥 안경 보이즈―임동민 Vn과 정우찬 Vc가 맞다―를 보러 가야지, 뭐 그 정도였다.
8월 한 달간 이미 충분히 좋은 공연을 많이 봐왔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그 소리들을 글에 옮겨놓는 일을 반복했으니 이제는 쉬어가면 된다. 28일과 29일은 각각 편안한 여정 중의 하루로 남겨두면 된다.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 편히 남겨두려 했던 하루가 코른골트에서 에네스쿠로 이어지는 사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눈앞에 쓰이는 문장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나는 어느새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왜, 곡이 이해가 안 됐냐고? 연주를 못했냐고? 무슨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냐고?
아니, 그런 방향은 아니고. 그냥 어찌 보면 배부른 생각이다. 분수에 넘치는 걱정이라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진실로 이런 생각을 했다.
아마도 코른골트 1악장에서 2악장으로 넘어가는 사이, 그리고 에네스쿠가 연주된 지 10분쯤 지났을 때부터 이 생각들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오늘을 되살릴까? 말까?
음악을 완성시킬까, 말까….
내 안에 죽은 채로 둘까, 미완성된 그 채로….
관객인 네가 어떻게 ‘음악’을 완성할 수 있느냐고 묻겠지만, 그 순간에 있었던 소리와 시선, 거기서 피어난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는 건 결국 그때의 나뿐이었다. 과거의 나도, 내일의 나도 아니었다. 당장 그 음악을 겪고 있는 ‘나’밖에 없었다.
연주자들도 곧 이날을 지나갈 것이고, 관객들도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붙들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숨을 조금 더 연장해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 채 지나가버릴까 두려워하는 것도 나밖에 없었다. 사람은 다 떠나보내더라도, 나는 그 아이를 조금 오래 살려두고 싶었다.
코른골트, 피아노 5중주 마장조
바이올리니스트 임동민
네모난 상자 안에서 빗소리가 지난 다음에는 사각형 안에 풀꽃이 돋아났다. 들풀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확실한 건 땅에서 자라나 위로 올라왔다는 것이겠다.
네 대의 현악기가 있는 자리에 소리가 돋아난다. 당장에 뭘 일으켜보겠다는 심산도 아니고, 이곳을 단숨에 점령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오늘은 여기서 자라나는 소리를 내 선으로-우리의 해석으로-그려보겠다는 생각이 묻어 있다.
소리를 겹겹이 쌓아 올리길래 하늘이 있는 방향으로 타고 올라갈 줄 알았는데, 한들거리는 듯하면서도 비틀거리는 듯한 걸음으로 바이올린 한 대가 마냥 쉽게 위로 올라가지 않는 것을 보았다. 뭘까?
공연장에서 처음 만난 코른골트 1악장은 지하철에서 음원으로 들었을 때와 달랐고, 혼자 산책하는 길에 들었던 것과도 달랐다. 반쯤은 무념무상인 상태로 걸어도 무사히 도달할 수 있는 익숙한 길목을 한참 떠나와, 육교 하나를 다 건너서야 만날 수 있는 낯선 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에서 마주한 코른골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또 상상했던 것보다 아팠다.
나는 솔직히 이 악장에서 타네예프의 피아노 5중주 G단조를 들을 때처럼 마냥 압도당할 줄 알았다. ‘와’ 하고 큰 무리가 내게 들이닥칠 거라고, 저들이 나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이쪽으로 밀려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만 내 밑바닥을 건드리고 바라보고, 장식했다.
내가 멋져 보이고 반짝이는 곳이 아니라 가장 못나 보이고 그림자진 곳. 그 모든 곳 위에 작은 빛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팠다는 것은 무엇인가? 몸의 일부분이 자극을 받아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괴로움은 무엇인가?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은 느낌이다. 그렇다면 어디서 나는 편치 않다고 느꼈는가?
그들이 어렵사리 흐름을 거슬러 올라와서는 아주 얇은 실낱이 되었다가, 피아노와 함께 이곳에 동그랗고 조그만 빛무리의 형태로 다시 내려왔기 때문이다.
거기서 나는 잊고 있던 ‘감정 덩어리’ 하나가 저 흐름을 타고 밖으로 끌려 나왔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들이 노래의 흐름을 안쪽으로 꾸욱 파고들어갈 때마다, 더 깊은 길로 꾸욱 인도하고 또 인도할 때마다 나는 이 길이 생각했던 것보다 눈에 띄게 잘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잡아삼켜지기는 무슨. 그들은 커다란 소리 앞에서 몸을 감추고 있으려 했던 내 안을 하나하나 헤집어 놓기를 택하였다. 가까이 자리하니 전체가 해제된다. 놓치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빠짐없이 드러났다.
그들과 가까운 곳에 앉아 있어 무엇보다 기뻤던 때가 기억난다. 그곳에 뒷결로 물러난 소리가 있었다. 있던 자리에서 이쪽을 바라본 채로 뒷걸음칠 때, 곁에 있던 음성이 거기 있었다. 비올라가 뒤로 물러나며 가로로 기다란 비눗방울 모양을 그렸다.
그 모양이 어찌나 예쁘던지. 처음에는 조금 두께감 있게, 그러다 검지손가락 하나를 꾸욱 손등 위에 눌러주는 정도로 머무르다가 금방 사라졌다. 그 궤적 뒤로 이어진 애달픈 자취는 눈을 감고 있는 선홍빛 첼로로 이어졌다.
나는 내가 분명 잡아삼켜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무대 위에 있는 그들 하나하나에 조명이 켜졌다. 무턱대고 하나의 선율로 닿아오는 게 아니라, 어떻게 내게 오고 물러나는지를 끊임없이 목격하느라 긴 시간을 보내었다.
비올라의 시선이 바이올린에게 가고, 바이올린의 시선이 또 다른 바이올린에 닿고, 첼로가 악보를 바라보다 노래 안에서 눈을 감는 때를 기억한다. 시선이 맞닿는 자리에 소리는 꼬옥 모여들어, 천장보다 낮고 우리보다는 훨씬 높은 쪽에서 아픈 소리를 냈다.
근데 내가 휩쓸려간다는 느낌은 없다. 네모난 상자가 다 울려 보일 정도로 몸집을 점점 넓혀가는 때에도, 서로 날아다니는 영역이 자유분방해지는 때에도, 바이올린이 누구도 닿을 수 없는 자리까지 홀로 유영하던 때에도 그랬다.
투명도를 믿을 수 없이 낮추고 활의 압력을 높이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조금은 두려워했던 ‘헤맨다’는 느낌 자체가 내게 오지 않았다.
무대에 가까이 앉아 있으니 그들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커다랗게 보였다. 홀로 있을수록, 투명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내게 선명해졌다. 그러니 아까 만났던 그 비눗방울이 우리에게 아주 조그맣게 날아들었을 적에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동그란 조명 아래에서 바이올린 하나가 유달리 반짝였다. 고르게 빛나던 그것은 어느 순간, 까만 밤 사이로 깜빡이는 파란 신호등처럼 보였다.
시리고 얇은 겹 하나를 두르고 있어 횡단보도를 건너도 되나 싶어 마음이 조급해질 수도 있겠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하얀 부분을 밟을 때에도, 회색 도로 위를 지날 때에도 한결같은 속도로 깜빡깜빡이고 있다.
금세 바뀌려는 기색도 없고, 되레 고장 난 줄만 알았던 신호등이 까만 밤 사이로 푸르게 차오른다.
나는 커다랗게 감싸이기만 할 줄 알았다. 그냥 외롭게 이쪽에 서서 저 소리 뭉텅이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압박을 혼자 견뎌내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이 고요해진 때에도, 합을 고조시켜 나가며 소리를 무대 밖으로 내뱉을 때에도 저 고되고 지난한 길의 중압감을 무대 안쪽에서 끈질기게 다시 잡아채고 끌어당긴다.
그들은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모래 바닥 위에 순서대로 예쁘고 바른 직선 몇 개를 그렸다. 몇 개는 비올라와 함께, 또 몇 개는 비올라 바로 아래에 그렸다.
몸집을 크게 부풀려 그은 선 아래로 수직선이 쏟아졌다. 어디 하나 닿지 않는 곳이 없도록, 메워지지 못한 마음이 남지 않도록 그들은 다시 물러나 사그라들었다.
두 번째 악장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일단 잊자. 그 편이 좋겠다. 제1바이올린의 임동민-아까 그 신호등과 동일한-은 그렇게 방심하고 있던 잠깐의 틈에도 3악장의 번갯불 사이로 아주 새카만 먹구름을 다 몰고 들어왔다.
정말, 피아노 5중주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필요한 때에 번뜩이고, 순식간에 흐름을 잡아삼키면서 원래 뭐가 있었냐는 식으로 뒤로 물러나버리는 특유의 연주 방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에는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이 실내악 풍경 안에서 어떻게 자기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를 기대하긴 했지만, 이렇게 2악장을 지나며 방심한 틈에 예고편도 없이 꽂혀 들어올 줄은 몰랐다.
잠깐 주어진 시간 안에서도 ‘솔리스트’적일 수 있는 저 승부사적인 기질 때문에 지켜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제1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있어서 가뜩이나 잘 들리는데, 분위기를 아주 그냥 세차게 끌고 가며 속도감 있게 뭐든 집어채가려는 저 추진력이 눈에 선연하다.
지나온 악장 중에서는 그나마 무게감을 덜어놓은 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휩쓸릴 것은 다 휩쓸리고, 목격할 수 있는 것은 다 목격한 뒤에도 음악은 끝의 끝까지 ‘힘’ 있게 이어졌다. 아, 이건 아무래도 코른골트 피아노 5중주 톺아보기 세션이 분명하다….
에네스쿠, 현악 8중주 다장조
에네스쿠? 예습도 안 했다. 들어보지도 않았다. 코른골트의 1과 2악장 어딘가에 시선을 빼앗겨 이 사람에게도 시간을 내어줄 여력이 없었다.
그러니 2부 때 무대 위에 의자가 8개 놓이길래 그제야, 아 이게 8중주구나, 현악기가 무려 8대나 나타나겠구나, 까만 객석에 앉아서야 알아챘다.
금빛누리홀은 공연이 시작되면 눈이 아릴 만큼 강한 조명을 켜 무대를 비추는데, 처음에는 뭐 이리 강한 빛을 쏘나…. 했지만 곡의 중간에서는 오히려 이날 관객석과 무대 사이에 벌어진 거리감을 미리 보여주는 요소였구나 생각했다.
나는 그들과 우리 사이에 ‘거리감’이 있다고 느꼈다. 그들과 나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다고 느꼈다. 어디서 우리는 벌어졌던가?
이미 시작한 지 한참 되었다는 느낌. 시작을 어떻게 했는지도 무색할 만큼 갖가지 것들을 음악으로 이미 지나오고 있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어찌나 뚜렷하게 들려오던지.
무엇보다 현악 4중주 두 개가 연달아 붙어 있는 듯한 이 포메이션. 8명이 에네스쿠라는 사람의 한 부분을 함께 완성해 나가는 광경은 너무나도 바쁘고 넓었다.
나는 시야가 한정적이라 바이올린을 보면 첼로를 귀로만 들어야 하고, 오른편의 악기에 시선을 두고 나면 왼편의 부름에도 금방 응답해야 한다. 내 시선은 가벼운 발걸음처럼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는데, 그 와중에도 무대 곳곳에서 자꾸만 여기를 보라고 신호를 보내온다.
왼쪽부터 바이올리니스트 이우일, 바이올리니스트 배창훈, 비올리스트 이상윤.
그들이 눈짓을 주고받는 장면도 어찌나 경우의 수가 많은지. 내가 클래식 공연을 보면서 이렇게 시선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느라 바빴던 것은 또 처음이었다. 바이올린이 모인 곳에 시선을 다 빼앗기다가도 밑바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첼로의 아랫소리에 문득문득 눈이 기울었다.
한 글자씩. 혹은 그 이상으로. 그냥 뛰어넘어가는 구간 하나 없이 이 소설의 모든 문장을 되살려놓으라는 지시를 받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들이 향하는 길에는 막힘이 없다.
막 쏜살같이 지나갔다는 게 아니라 그냥 8명 모두 자기 앞의 몫을 너무나 잘 해내고 있었다. 굳이 여기서는 쉬어가도 되지 않나 싶은 방심의 순간조차 아예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모든 구간을 ‘탁월히’ 이끌어내는 저들은 누구인가 싶었다. 그들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계속해서 드넓어졌다.
아, 겨우 8대인데. 왜 이렇게 내가 바쁠까? 손 보랴, 시선 보랴, 표정 보랴, 활 움직임 보랴, 소리 감상하랴, 이어지는 흐름 구경하랴.
오케스트라 무대를 감상하는 것보다 내밀하고 바쁜 감상을 요한다! 아, 여기 봤다가 저기 봤다가. 어찌나 다들 맡은 역할이 다채로운지.
에네스쿠의 빼곡한 미학을 맛보려면, 몇 권의 책을 한데 펼쳐놓은 듯, 압축될 생각도 없이 풍족하게 노니는 저 세상을 맛보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운이 겹쳐야 하는 건가? 각기 다른 현악기가 조화롭게 움직이는 동시에 그 합도 여실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악장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는 이걸 보러 올 운이 있었구나 싶으면서도, 이걸 부여잡아야 한다는 어떠한 업이 내 앞에 놓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동안 목격해온 여러 실내악의 모습이 한자리에 모였다. 온정 어린 쪽에서 자라난 정수가 그곳에 피어났다. 손가락 지문 위로 튕겨져 나왔다.
혼자일 때는 홀로 남는 소리가 있다. 그런데 그 뒤를 따라오는 그림자에는 기척을 갖춘 여럿이 보인다. 여덟이 있지만 어느 순간에는 둘이서만 노래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가운데 자리에서만 말을 한다.
왼쪽부터 비올리스트 신경식, 첼리스트 정우찬, 첼리스트 이강현.
그러다가 다 같이 ‘총천연색’이 되기로 작정이라도 한 2악장에서는 세상에 온갖 난리가 다 얽히고설키고, 부딪칠 듯 맞부딪쳤다가 무대 사방을 헤집기를 반복한다. 내가 무대의 크고 작음을 논할 수는 없지만, 이게 단순히 여기서만 머무를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여기에 오지 않았다면 절대 볼 수 없었을 것이고, 누가 보여주지도 않았을 것이며, 아무도 내가 원하는 만큼 일러주지 않았을 빛깔들의 저 몸부림을 목격하지 못할 뻔한 것 아닌가?
연주자가 아니라 악기가 실내악을 하는 순간, 모든 일이 겉으로 빠짐없이 드러난다. 같잖은 속셈 하나 없다. 능구렁이같이 피해 나가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모습을 감춰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귓청에 화음을 때려 박는 모양새가 짓궂을 정도로 솔직하고 강대하다. 이걸 나 몰래 하려고 했다고? 내게는 정말 얄미운 일이다.
몇 가지 색만으로는 받아 적을 수 없는 ‘실내악’적 면모. 기악의 합주가 솟구치고 요동쳤다. 그리고 사라진다.
움직이던 일도, 멈추었던 일도 아무 일 아니라는 식으로 만들어버리는 3악장에 들어오면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조금만 무거운 것을 들어도, 자신 없는 일 앞에 놓여도 팔과 손이, 눈과 마음이 파들파들 흔들리는데. 그들은 나무를 잡은 손에 의도된 정지를 들여놓고, 그 손으로 현 위를 오고 또 가더라.
왼쪽부터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원, 바이올리니스트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 이우일.
소리를 온전히 보전하는 사람들. 과장하고 또 부풀릴 줄을 모르는 이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가려져 있던 것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던 것을 한 아름 찾아내 이곳까지 데려온 사람들.
어디까지 이 집중을 끌고 가나 싶었는데, 끝의 끝의 끝까지 ‘체력’을 소진하고 또 소진하더라. 관객이 따라올 수 있는가? 이 음악이 얼마나 눈앞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그것보다 조금 더 내밀한 욕심과 본능이 엿보였다. 타협할 수 없는 ‘음악적 완성도’.
그들은 서로를 향해 눈짓을 하며 잘 따라오고 있나, 서로 약속한 길을 걷고 있나 확인하지만, 막상 모두 자신 앞의 ‘음악’을 바라보며 아주 집요하게 완성시켜 나가고 있다.
보기 좋은 욕망이 얽히고설키니 에네스쿠가 빛을 발한다. 이 영역에 반 이상 눈이 돌아가 있지 않고서는 버텨낼 수 없을 만큼의 광대함이 사방에서 쏟아지니, 나는 내 역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이 일을 목격하였으니 이별을 조금 늦출 수 있겠다. 글을 써왔기 때문에 이날 있었던 일을 조금 더 살려놓을 수 있겠구나. 내가 그걸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연주자와 관객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지고, 악기의 몸에서도 흔적이 사라져갈 때, 내가 조금만 더 호흡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처음으로 ‘기쁨’을 느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원
에네스쿠가 지나간 자리, 저 노란 네모 상자가 당분간 내 눈동자 안쪽에서 잘게 깜빡이며 살아가겠구나. 아마 며칠 동안은 그러하겠구나, 그렇게 느꼈다.
내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은 제때 사라지지 못하니, 가여운 일이다. 가여운 일이다. 그래도 조금만 더 그랬으면.
번외. 8월 29일,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
첼리스트 정우찬
하이든? 정우찬 첼리스트 버전으로 하이든? 나는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을 그의 연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기회를 내가 놓칠 수 있나 싶어 거의 망설임 없이 부산에서의 1박을 결정하였다.
전날의 반복적인 폭우는 어디로 가고 하얀 햇살이 쨍쨍-. 그새 한 번 와봤다고 지도 없이도 익숙하게 금정문화회관 은빛샘홀로 향했다. 어제는 가운데이고 오늘은 그 옆이다!
정우찬 첼리스트의 하이든은 그냥 아주 깔끔-깔끔. 오른편에서 시작해 꺾기 전에는 살짝 길게, 꺾고 난 이후부터는 길지 않게 위로 상승하는 그 체크 포인트를 구경하는 재미. 그리고 속도를 가지고 놀 줄 아는 면모를 그저 바라보는 즐거움.
브릿지와 지판 사이의 현 위에서 활을 움직이고, 지판 위에서는 손가락을 움직여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불러오는 그 모양을 흥미롭게 감상했다.
그의 연주를 볼 때마다 소리를 누를 때 어떻게 저렇게 한 방에 깊숙해지지? 싶었던 포인트도 조금 절제되어 있다. 이게 다 하이든 듣다가 놀라지 말라고 그러는 게 분명하다.
13시에 듣기에 딱 기분 좋고, 딱 내가 원하는 만큼 세심하지만 그게 또 너무 티 나지 않게 노래되는 그의 ‘정도’가 내 마음 안으로 쏙 들어온다.
첼로라면 진지한 방향으로, 꽤 진중한 목소리만 깊숙이 낼 것 같겠지만 그가 일부러 몸이 있는 쪽으로 힘을 끌어당기고, 활 밖으로는 ‘산뜻함’을 잊지 않을 때 저 소리를 내가 담아보기에도 전혀 무리가 되지 않는다.
가뿐하다!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그를 절대 ‘가볍다’고 표현해서는 안 되겠다.
2악장에서 첼리스트가 눈을 감고 등 뒤 단원들의 소리를 꼬옥- 기다렸다가, 활로 경사가 깊지 않은 사선을 타고 내려왔다.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부드럽게 타고 내려앉는다.
무대 한가운데 저 회색-내 눈에는 그 색으로 보인- 실선이 눈앞에 기다랗게 그려지는데, 저것을 보러 내가 여기 왔구나. 그걸 알았다.
꼭- 시간을 들여야만 따라갈 수 있는 소리였다. 그는 무대 앞쪽에 있어야 하고, 나는 까만 아래쪽에서 눈을 깜빡-깜빡 하고 있어야 했다. 가까이 앉았을 때에야 그 소리가 거기 있었음을 뚜렷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볼 수 있는 저, 물러난 채로 태어나는 저 고요한 소릿줄! 그 소리가 몇 번이나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가라앉는 동안, 내 안에서는 오히려 같은 방향으로 기쁨이 너그럽게 타올랐다. 재밌다. 재밌다!
그럼 저 활이 반대로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간다면? 분명 신나고 재밌는 일이 벌어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3악장을 미리 상상하고, 그가 첼로 한 대로 바닥에 자리 잡는 풍경을 눈에 담고 또 담았다.
아니나 다를까, 분위기가 급격히 ‘흥’으로 타오르는 3악장에서는 그가 내보일 수 있는 재미가 한층 자유롭게 전해올 때마다 내 안에서도 데굴데굴 재미난 쳇바퀴 하나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 이런 장난스러운 생각도 했다. 어제 28일 공연도 그렇고, 오늘 29일까지. 아~ 정우찬 첼리스트 연주 잘하는 거, 첼로 잘 켜는 거 부산에 소문 다 난다~ 소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