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스 아웃>은 추리 영화에 목말라 있던 사람들에게 단비 같은 시리즈물이다. 그중 가장 최신작인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이하 '웨이크 업 데드 맨')은 푸아로, 홈즈에 이어 아이코닉한 탐정으로 자리 잡은 '브누아 블랑'의 세 번째 수사 이야기다.
길거리 복싱 선수였으나 회개한 뒤 신부가 된 '주드 신부'는 무례한 부사제에게 울컥해 그만 주먹이 앞서고 만다. 결국 그는 한 시골 마을의 보좌 신부로 발령받게 된다. 그런데 도착한 성당이 어딘가 이상하다. 십자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자국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성당을 이끌고 있는 '윅스 신부'는 신부라기보다 사이비 교주에 가까워 보인다. 윅스는 새로 온 주드 신부를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그의 주변에는 이상하리만큼 독실한 신도들이 모여 있다. 이 낡고 기묘한 공동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어 무력감을 느끼던 찰나, 윅스 신부가 살해당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주드가 지목되고, 그때 탐정 브누아 블랑이 등장한다.
시리즈 세 편 중 가장 전개가 꼬여 있고, 그렇기에 반전도 가장 많다. 진범의 갈피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이야기가 뒤집힌다. 그런데 이 영화의 재미는 단순히 예측불허한 반전이 많다는 것이 아니다.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에서 언제나 더 재미있는 것은 반전 그 자체보다, 반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마음이다.

이번 작품 역시 1편처럼, 용의자와 탐정이 함께 사건을 수사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사람에 대한 호의'가 이 시리즈에서는 늘 중요한 변수가 된다. 누군가를 속이고 이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것처럼 보이는 미스터리 안에서, 뜻밖에도 베풀어진 친절과 신뢰, 양심이 사건의 흐름을 바꿔버린다. 그래서 블랑의 수사를 따라가다 보면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 쾌감뿐만 아니라 묘한 안도감까지 느끼게 된다. 이번 영화는 그 매력이 가장 정점에 달해, 멋진 추리 영화를 넘어서 어느새 회개와 용서를 다루는 종교영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윅스 신부와 주드 신부의 대비를 통해 종교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말한다. 둘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신을 말하는 신부지만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다. 윅스 신부를 통해 영화는 종교가 얼마나 쉽게 권력과 결합하고, 사람을 선동하고, 타인을 배척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지 신랄하게 보여준다. 윅스에게 신앙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도구일 뿐이다. 윅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옳다는 사실이다. 그의 신앙은 사람들을 '우리'와 '그들'로 나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위험한 존재로 간주하고, 두려움을 자극해 공동체를 결속한다. 반대로 주드에게 중요한 것은 점점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주드의 신앙은 끊임없이 자신 바깥으로 향한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용서하고, 자리를 내어준다. 특히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주드는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처음의 주드 신부는 나쁜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주먹부터 나가는 사람이었다. 정의감은 있지만 그 정의를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는 몰랐다. 그가 낡고 사악한 교회를 바꾸고 싶어 하는 젊은 신참 신부라는 설정은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만드는 동시에 영화를 이끄는 강력한 감정적 동력이 된다. 사건을 겪으면서 주인공이 배우는 것은 더 세게 싸우는 법이 아니라 오히려 정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용서하는 것이었다. 주드 신부는 점점 성자가 되어간다.

두 신부의 대비 사이 브누아 블랑이 서 있다. 블랑은 신을 믿지 않는다. 종교가 만들어온 폭력과 위선의 역사를 줄줄이 읊는 장면이 나올 정도로 그는 종교에 냉소적이다. 반면 주드 신부는 신을 섬긴다. 당연히 두 사람의 세계관은 충돌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둘은 잘 통하는데, 왜냐하면 둘 다 상대에게 자신의 세계관이 옳다고 증명하는 것보다 눈앞의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드는 블랑을 개종시키려 하지 않고, 블랑 역시 주드를 어리석은 신앙인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서로를 설득하는 대신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블랑은 자신이 그토록 경계했던 종교가 주드라는 사람을 통해 분명 실천되고 있음을 목격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신은 존재하는가?'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당신의 신념은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가?'에 가깝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가지는 것은 꼭 종교인이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도 말한다. 무신론자인 블랑 역시 주드와 같은 곳에 도달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결국 사람은 연민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아주 비슷한 믿음 앞에 선다. 누군가는 그것을 신앙이라고 부르고, 다른 누군가는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을 뿐이다.
1편과는 다른 느낌으로 매력적인데, 인물 한 명 한 명의 캐릭터성이 가장 재미있었던 게 1편이라면, 주인공과 사건 전반에 가장 몰입하게 되는 것은 단연 이번 영화이다. 또한 조쉬 오코너가 연기한 주드 신부와 시리즈를 끌고 가는 브누아 블랑 다니엘 크레이그의 케미스트리 역시 좋다. 이번에도 명배우들이 총출동해 연기 구멍이 없고, 그중에서도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타노스'를 연기했던 조쉬 브롤린이 명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현 미국 사회를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상당히 많은데, 'wall'이라는 대사부터 목소리와 헤어스타일까지 누가 봐도 윅스 신부가 트럼프를 연상시킨다.
다만 이렇게 스타들로 꽉 찬 앙상블 캐스트를 꼭 쓸 이유가 없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이전 두 편에서는 이 용의자 리스트 앙상블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였을 만큼 중요한 요소였다. 반면 이번 작품은 주드와 블랑, 윅스의 삼각 구도가 워낙 강하다 보니 다른 인물들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희미하다. 유명 배우들을 모아놓은 것에 비해 비중이 놀랄 정도로 적은 인물도 있다. 차라리 신인 배우들을 기용했다면 더 신선했을 것 같다.

<웨이크 업 데드 맨>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추리극 끝에 믿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믿으며 산다. 종교일 수도 있고 정치적 신념일 수도 있고, 정의나 상식,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믿음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있느냐일 것이다.
<웨이크 업 데드 맨>은 살인사건의 정답을 찾아가는 추리 영화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너무 쉽게 '정답'이라고 믿어버리는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영화다.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가 수많은 반전 끝에 보여주는 가장 멋진 반전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