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표는 상대방의 세계로 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거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존중해야 한단 말이야.”
헤르만 헤세의 이 문장을 좋아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세계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끝내 나와 다른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주 ‘하나’라는 말을 사용한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결국 하나가 되는 것.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인데 말이다.
나는 그 다름을 인정하고 싶다. 참 어려운 지점이다. 어쩌면 평생 풀어야 할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내가 모두 알 수 없는 그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세계를 함부로 바꾸려 하지 않는 것. 나는 그런 태도가 더 깊은 사랑으로 느껴진다.
얼마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발견했다.
“다만 끝까지 이 둘(부부)을 일체화시키지는 않고 싶었습니다.
떨어져 있던 것이 하나가 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거든요.
부부라서 더 그럴 것이라 생각했어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 어긋난 것은 어긋난 채로 받아들이는 것이
저에게는 리얼리티가 있는 것이어서요.“
- 고레에다 히로카즈 X 이동진 평론가 대담 중
부부를 꼭 일체화시키지 않는다는 것. 서로 다른 채로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사랑. 나는 둘이 하나가 되는 마법 같은 사랑 이야기보다, 다름을 품은 채 함께하는 사랑 이야기가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랑의 서사를 장면처럼 담아낸 노래들을 소개한다.
1) LAMP - 戀人へ (연인에게)
好きな季節はみじかいもので
좋아하는 계절은 짧아서
気づかないうちにとけだしてゆく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녹아내려가
移ろう景色のなかでひとり
변해가는 경치 속에서 혼자
僕はたたずみ 君を想う
나는 잠시 멈춰서서 너를 생각해
일본의 혼성 밴드 LAMP의 두 번째 앨범에 수록된 ‘연인에게’라는 곡이다. 문학적인 가사와 잔잔한 편곡은 봄날의 산들바람과 같은 로맨스를 상상하게 한다. 사랑이 시작될 때의 마음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한 사람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되는 마음. 노래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2. today – pj morton
Don’t need an anniversary
기념일이 필요하지 않아
to tell you how much I love you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는 데
Don’t need a holiday
휴일이 필요하지 않아
to tell you how much I love you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는 데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특별한 날은 필요하지 않다. 기념일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그냥 오늘. 오늘이면 충분하다는 것. 어쩌면 사랑한다는 것은 거창한 순간보다 이렇게 평범한 하루를 함께 채워가는 일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별것 없는 하루들.
3. sgt. pepper shoelaces - Randy Newman
사랑의 환상 뒤에 놓인 현실을 가장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영화 <결혼 이야기>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다. 랜디 뉴먼의 음악은 두 사람이 사랑했던 시간과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나는 이 음악을 사랑의 어긋남만을 보여주는 곡으로 듣고 싶지는 않다. 서로 다른 삶을 선택하는 일도 사랑의 한 장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노래를 들으며 느끼곤 한다.
사랑에 정답이 없듯, 사랑을 담은 노래에도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 설렘으로 시작하는 사랑, 평범한 하루를 함께하는 사랑, 때로는 서로 다른 길을 바라보게 된 뒤에 남은 기억.
*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은 완벽한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의 모습으로 사랑했던 순간을 담은 노래들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도 결국 그런 장면들의 모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