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우리가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을 우리는 왜 이토록 오래 지키고, 또 찾아 나서는 걸까. 기술이 발달하면서 거의 모든 모습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원래 있던 자리와 형태를 가능한 한 그대로 보존하려 애쓴다. 그렇게 수백 년을 견딘 유물 앞에 서면 나 역시 말로 다 담아내기 어려운 경외심을 품게 된다.
서헌강의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에 담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우리 유산을 바라보다가 문득 몇 가지의 새삼스러운 질문이 떠올랐고, 내가 건넨 대화도 동시에 시작되었다.
지나간 시간에 거는 대화
경복궁의 전경, 서헌강 (p.38)
궁궐과 왕릉, 석탑과 고분, 오래된 집과 그곳을 살다 간 사람들의 시간까지. 서헌강의 카메라에는 대개 자신보다 훨씬 긴 세월을 지나온 것들이 담긴다.
그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에 계속 말을 건다. 그곳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전부 알아내고 싶다는 듯 이쪽에서 보고 저쪽에서 보고, 빛이 달라지면 다시 바라본다. 거의 일방적인 대화다. 공간에 새겨진 세월과 그곳을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지금의 빛을 만나 그의 렌즈를 통과한다.
그와 유물이 그렇게 오래 대화를 나눈 끝에 닿은 어떤 이해가 사진 속에 남는다. 그 사진이 오래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인지, 그것을 바라본 현재의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오래전 누군가가 만든 것 위로 지금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시선이 포개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이 다시 지금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에게 닿는다. 몇백 년의 시간이 그 짧은 순간 안에서 겹쳐진다.
이미 끝나버린 시간에 말을 걸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곳이 품은 이야기에 어떤 빛과 공기가 어울릴지 생각하고,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안개의 양, 계절과 날씨까지 헤아린다. 그리고 기다린다. 계속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이 원했던 단 한 순간이 찾아오기를.
서헌강은 그런 순간을 쉽게 우연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연이 지나갈 자리를 미리 알아보고, 그곳에 가서 오래 기다린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읽을수록 나는 이상하게도 오히려 우연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와 사진의 인연부터가 그랬다. 누나가 카메라를 건넨 순간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카메라를 내민 누나의 손은 우연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카메라를 받아 셔터를 누른 것은 그의 선택이었다. 이후 사진에 영감을 준 스승들을 만난 일, 긴 시간을 견딘 문화유산이 그의 앞에 남아 있었던 일, 어느 날 풍경 사이로 빛이 스며들고 안개가 내려앉은 일까지. 그가 할 수 있는 준비를 모두 마친 뒤에는 늘 자신의 바깥에 있던 무언가가 마지막 한 조각처럼 끼어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숙련이란 어쩌면 우연이 찾아올 자리와 순간을 알아보는 능력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천재성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사진이라는 예술을 천재성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는 일이 오히려 어려워진다. 시간도 필요하고, 공간도 필요하다. 무엇을 보고 싶은지 상상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기다림도 있어야 한다. 어떤 장면을 보여주고 싶은지 생각하고, 거기에 무엇이 필요한지 헤아리고, 그것이 찾아올 장소와 시간을 짐작한 뒤 정말로 그곳에 가 있어야 한다.
가야역사유적지구 합천 옥전 고분군, 서헌강 (p.236)
그가 빛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몇 시쯤 어느 방향으로 빛이 들어오는지는 알 수 있다. 안개를 불러낼 수도 없다. 하지만 안개가 낄 것 같은 날, 남들보다 먼저 그 자리에 가 있는 방식을 썼다.
그래서 그는 계속 피사체와 오래 대화를 나누었다. 이곳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어두워야 하는지, 밝아야 하는지. 맑은 날이어야 하는지, 흐린 날이어야 하는지. 그 공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순간은 아마 그곳을 만들고 거쳐 간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 안에 있을 테니까. 그 이야기와 가장 닮은 빛과 공기를 찾으려면 계속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 장의 사진이 만들어진다. 오래 쌓인 노력과 기다림, 그리고 끝내 예상할 수 없었던 찰나의 무언가가 뒤엉켜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오래 준비했고, 필연이라고 하기에는 마지막 한 조각이 스스로 만들 수 없는 식으로.
시간을 견뎌내고 여전하다는 것
그러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우리는 왜 오래된 것들을 남겨두는 걸까.
국가무형유산 옹기장 정윤석, 서헌강 (p.110)
수백 년 전 사람들이 살았던 궁궐을 관리하고 그들의 능을 보존한다. 오래된 돌 하나까지 가능한 한 원래 있던 자리를 지키게 하고, 훼손된 부분이 생기면 지난 기록을 샅샅이 뒤져 본래의 모습에 가깝게 되돌려놓는다. 과학과 기술이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필요와 편의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세상에서 생각해 보면 꽤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래 버텨온 것들이 앞으로도 계속 그 자리에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앞에서 이상하게 위로받는고, 때로는 안녕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나 역시 오래된 공간과 마주하면 장엄하고 고귀하다는 감정이 이해보다 빠르게 먼저 들어선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라지지 않고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기묘하면서 동시에 이상한 안도감도 들고,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로움과 마주한다. 천 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온 물건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말수가 줄어들게 되는 것까지, 쉽게 설명할 수 없지만 사람들끼리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에 휩싸인다.
감정이 먼저 찾아온다는 건, 우리가 문화유산에서 원하는 것이 정보나 쓸모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있다는 의미였다.
사진을 비롯한 기록은 과거의 모습을 증명할 수 있다. 무엇이 어디에 있었고, 어떻게 생겼는지 아주 정확하게 남길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과 사물이 실제로 그 자리에 남아 내 눈앞에 놓이는 일은 기록을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만든다. 그곳을 살았던 사람들이 바라보았을 풍경을 같은 자리에서 바라본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밟았을 돌 위를 내 발이 다시 지나간다. 몇백 년 전 누군가가 매만졌을 물건이 사라지지 않고 여기까지 와서 내 눈앞에 놓여 있다.
이런 순간에는 시간이 그저 지나가버리는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이미 죽은 사람과 지금 살아 있는 내가 하나의 공간과 사물을 사이에 두고 잠깐 연결된다. 서로를 알 수도 없고, 같은 시대를 살 수도 없는데 이상하게 같은 것에 닿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연결을 필사적으로 지켜낸다. 절대로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을 어떻게든 이어놓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인간은 지나간 것과의 관계를 좀처럼 완전히 끝내지 못하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대답 없는 것들에게
수원화성, 서헌강 (p.88)
이미 사라진 사람의 집을 남겨두고, 그들이 쓰던 물건을 보관한다. 이름을 기록하고 오래된 이야기를 계속 읽는다. 그들이 살았던 장소를 굳이 찾아가기도 한다. 끝난 시간과 끝난 삶을 향해 우리는 자꾸만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는 과거의 것들에게 계속 말을 건다.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두려운 미래와 쉽게 흔들리는 현재 앞에서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오래된 것을 찾는다. 수없이 깎이고 부서졌는데도 아직 그 자리에 있는 것. 세상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끝내 남아 있었던 것. 나보다 훨씬 긴 시간을 견뎌낸 것이 지금도 눈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그 여전함에 잠시 현재를 기대 놓는다.
오래된 것을 지키는 노력은 과거만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수백 년 전 누군가의 시간과 지금 나의 시간이 만나고, 한 번도 알지 못했던 사람의 삶이 내 삶 위에 잠깐 겹쳐진다. 시간과 시간이, 사람과 사람이 포개진다. 그때 우리는 혼자서 존재할 때보다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더 단단해진다.
서헌강이 오래된 유물 앞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듯, 인간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은 채 묵묵히 여전한 것들에게 말을 걸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들에게서 돌아올 대답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겹쳐보는 동안 내가 찾고 있던 대답을 만들어보고, 내가 보고 싶었던 장면을 스스로 그려보는 과정과 더 가까웠다.
말을 거는 동안 끊어졌던 시간은 잠시 다시 이어진다. 사라진 자리가 복원되고, 잊힌 이름이 다시 불린다. 그렇게 오래전 누군가의 흔적이 아직 여기까지 당도해 있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지금 내가 겪는 상실도, 언젠가 맞이할 나의 죽음도 어쩌면 완전한 끝으로만 남지는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지금 현실에서는 누구도 내게 정답을 쥐여주지 못하니까, 과거를 살다간 이들이 내린 정답이라도 붙잡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오래된 것들을 지키고, 찾아가고, 다시 말을 건네는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