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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남겨진 사람들 [도서/문학]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었더라면.

by 정예진 에디터
2026.08.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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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


 

비대면 시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빛의 속도로 변화되어 가는 현재를 살아감으로써, 나는 정신적 단절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분명 세상 어딘가에 누군가 세상의 흐름에 뒤처져 외로움이라는 정신적 아픔을 겪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애써 외면하기 바빴다.


‘외로움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뼈에 사무칠 정도로 깊숙히 파고드는 감정인 듯하다. 귀찮고 바쁘다는 상황을 핑계로 무언가를 놓치고 또 마음대로 버려둔다. 그것을 다시 주우러 향했을 때는 이미 흩뿌려져 사라져 버리게 되고, 되돌릴 수 없이 안타까운 슬픔만이 공기 속을 파헤치고 다닌다.


가족이든 친구든, 그 누군가가 되었든 익숙함이 너무도 촘촘하게 스며들어 있어 ‘나중에, 다음이 있으니까’라는 방패를 내세워 외면하고 또 외면한다. 언제부턴가 안부를 묻고 대면 만남을 가지는 것을 기피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아주 찰나의 시간이라도 소중한 사람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자신의 세상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지지대를 만들어주는 것임이 분명한데, 우리는 이러한 감정적 지지에 대해 굉장히 무지하고 회피적인 성향을 보인다.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미디어를 탐색하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속 깊은 이야기까지 전부 공유할 수 있는 현세대에서 어느샌가 직접 대면하여 마음을 공유하는 일이 크나큰 사치가 되었다. ‘바쁜데, 굳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누군가의 외로움과 권태라는 서글픈 감정까지 챙겨주고 보살필 수 없다고 말하며 관계를 단절하기 시작한다.


비대면 디지털 시대로부터 점차 도태되어 가고 있는 노년층 어르신들은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죽도록 맞서 싸우고 계신다. 디지털화에 점차 뒤처지는 것뿐만 아니라 몸도 마음도, 점차 사람들과 가족들에게서 더욱이 멀어져만 간다. 미디어의 다양성과 기술적 발전을 긍정하는 것은 좋지만, 우리 내면의 감정 또한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감정과 쉽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나 자신의 외로움 또한 안녕한 건지 오랜 시간의 성찰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따뜻한 말 한 마디


 

"내 가족, 내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만 있다면.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모른다."


외로움이라는 어려움이 넘쳐흐르는 감정을 고찰하고 나니,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외로움을 마음의 테두리 안에서 고립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이 터져 나온다. 인간은 타고나길 외로움을 안고 세상에 던져지는 것 같아, 고독과 공생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이 아주 작은 외로움이 큰 불씨가 되어 사람을 더는 일어서지 못하게 한다.


답은 아주 간단했다, 소중한 사람을 위한 한 마디. 그런데 그 한마디가 때로는 매우 무겁게 다가오기만 한다.


누군가의 내면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외로움을 가두고 없애는 데 거창한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 아마도 그것은 자그마한 배려가 섞인 대화를 통해서 시작될 것이다. 아주 작은 그 친절, 그 특정한 배려가 우울과 죽음이라는 레퍼토리에 갇힌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상대의 목숨을 건질 수도 있는 동아줄과도 같다는 비유를 마음에 간직해두는 것이 좋다.


스스로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용기를 고이 간직할 수 있다면, 언젠가 주변 사람들을 더욱 소중히 하는 사랑의 진정성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체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감사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이전까지는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점차 성장하고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면서, ‘감사’라는 개념이 사람 한 명에게 건네는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저 상황에 휘둘리고 물이 흘러가는 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과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능동적으로 삶을 이어가는 것은 천지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땅과 닿지 않는 멀고 먼 하늘, 그 정도의 차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나는 매번 감사보다는 불평을 늘어뜨리곤 했다, 미디어의 영향 때문인지 사춘기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어서인지, 짙은 농도를 기록하는 감정의 재단과 끝없는 비교가 마음을 어지럽히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을 타인에게서 특정해 낼 수 없듯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하고 특별한 일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진흙 구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발버둥 치기 마련이어도, 타고난 능력과 성향은 모든 사람에게 마땅히 주어진다.


나를 보좌해주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을 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해한다. 많고 많은 감정을 느끼고, 현재 ‘감사’라는 개념에 대해서 깊이 고찰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매 순간을 감사해하며 내일을 향해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다 보니 어느새 주변 환경이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하게 느껴졌다. 나를 이전보다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


 

"당신과 나,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다.

단지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배부른 소리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과도 같다. 다가오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꽃이 지고 다시 피어오르는 것처럼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이를 거스를 힘이 인간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그저 자연의 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그렇게나 불쾌하고 꺼림직한 일일까? 물론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힘겹고 무거운 일이지만, 본의 그대로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불쾌함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아직 한국에서 장례식과 장례지도사의 인식은 긍정적이지 않다. 장례식을 다녀온 사람에게 귀신이 붙는다고 소금을 뿌리는 집도 허다하고, 장례지도사 또한 다른 직업들과는 다르게 환영받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무언의 압박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죽음은 응당 마땅한 것이기에 사랑하는 가족도 언젠가 떠나보내야 하고, 나도 마찬가지로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영원이라는 것은 없기에, 우리는 모두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게 되어 있다.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또 없을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상살이가 편해졌다는 말을 많이 듣기는 하지만, 정작 많은 사람의 마음속이 곯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술 발전을 통한 정신적 웰빙과는 반대로, 아이러니하게도 정신적 아픔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때로는 과학의 무궁한 발전이 완전히 무관한 일처럼 느껴진다.


"게임, 스마트폰, 쇼핑, 음식, 술, 관계, 도박... 많은 이가 무언가에 중독된 채 살아가고, 우울증에 시달린다. 그러나 중독을 치료해야 할 심각한 병으로 보는 시각도 부족하고, 우울증을 앓는 사람을 이해하고 지원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요즘 꽤 많은 사람이 상대를 비교하고 재단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유일무이를 고집해서 그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정상성에 어긋난다는 점을 주입하고 있고 그렇게 사람의 정신은 곪아가고 어둠 속으로 하염없이 끌려가게 되는 듯하다.


아주 어렵고 처참하게 앓게 되는 이 우울증을 포괄한 수많은 정신 질병을 사람은 자신의 판별 기준에 따라 판단하곤 한다. ‘왜?’, ‘숨겨진 이유’에 집중하지 않고 그저 우울증이라는 증상에만 집착하여 사람을 도마 위에서 수없이 난도질한다.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이제는 먹고살기 편하니까 우울증에 걸린다고, 나약한 사람들이 배가 불러 걸리는 병이 우울증이라고 일컫는 사람도 꽤 많다. ‘배부른 소리’, 이 가시 같은 한마디가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는 사실을 회피하기만 바쁘다.


조금은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 아주 작은 배려와 이해가 사람의 간극을 메꾸고 마음을 치유해 주는 데 큰 보탬이 된다는 것을. 사람은 타고나기를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크다고 한다, 자신의 상황과 힘겨움만이 눈앞에 놓여 있고 정작 주위 사람과 다른 사람의 피투성이 상처는 무시해 버린다.


서로가 겪는 고통에 대한 이해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일지도 모른다. 그 아주 자그마한 이해의 시작이 깊어지는 마음의 병에 대한 바리케이드이고, 서로를 향한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는 유일한 처방 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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