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Review] 어른에게도 응원가는 필요하니까 - 2026 렛츠락 페스티벌 [공연]

현대인을 위한 응원가, 락앤롤!

by 최수경 에디터
2026.10.06 14:03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tempImage2qDldi.jpg

       

       

      학창 시절에는 운동회나 축제만 열리면 같은 반이라는 이유 하나로 자연스레 한편이 되곤 했다. 평소에는 그리 친하지 않았던 친구와도 어깨를 걸고 같은 박자에 몸을 움직였으며, 누군가의 승리를 마치 나의 일처럼 바라보며 목이 쉬도록 응원했다. 그때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이는 일이 그리 특별한 경험인 줄 몰랐다.

       

      사회인이 된 후로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몫을 해내는 데 익숙해진다. 힘든 순간에도 스스로 견디고 다시 일어나는 일이 당연해지면서, 누군가와 한목소리로 무언가를 외칠 기회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그렇게 저마다의 몫을 감당하는 삶에 익숙해질 무렵,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린 2026 렛츠락 페스티벌을 찾았다. 하늘을 향해 일제히 뻗어 올라가는 수많은 손, 음악이 고조될수록 거세게 부딪치는 몸, 서로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노랫말. 그곳에는 어른이 된 뒤 어느새 잊고 지냈던, ‘함께 무언가를 외치는 감각’이 살아 있었다.

       

       

       

      손끝으로 건네는 ‘I LOVE YOU’


       

      tempImageQdkHK1.jpg

       

       

      록 페스티벌이 처음이었던 나는 공연을 즐기면서도 틈틈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은 언제 뛰기 시작하는지, 어떤 순간에 소리를 지르는지, 무대를 향해 어떤 방식으로 호응하는지.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손짓이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들은 종종 엄지와 검지, 새끼손가락을 펼친 채 무대를 향해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처음에는 막연히 록을 상징하는 손짓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의미를 찾아보니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미국수어(ASL)에서 이 손 모양은 ‘I LOVE YOU’를 뜻하는 ILY 사인이다. 알파벳 I, L, Y의 손 모양을 하나로 결합한 것으로, 상대를 향한 사랑과 애정을 표현한다고 한다.

       

      바로 옆 사람의 말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을 만큼 큰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목소리 대신 손짓으로 마음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대를 향해 일제히 뻗은 손들은 저마다 ‘당신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다’고.

       

      처음에는 그저 낯설어 바라보기만 했던 나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을 따라 손을 들어 올렸다. 노래 몇 곡이 흐르는 사이, 나 역시 조금씩 이곳의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슬램!


       

      tempImagecFcs81.jpg

       

       

      록 페스티벌에서 처음 마주한 또 하나의 낯선 풍경은 ‘슬램’이었다. 슬램은 록과 메탈 공연에서 널리 볼 수 있는 격렬한 춤의 한 형태다. 음악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면 관객들 사이에 자연스레 거대한 원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그 안으로 뛰어들어 서로 몸을 부딪치며 음악을 즐겼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그저 거칠게만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록 페스티벌이 가진 해방감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풍경 같았다.

       

      생각해보면 어른이 된 뒤에는 무엇이든 ‘적당히’ 하는 데 익숙해진다. 너무 크게 기뻐하지 않고, 너무 크게 소리치지 않으며, 감정을 표현할 때조차 은연중 적당한 선을 긋는다. 나 역시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하지만 록 페스티벌에서만큼은 그 수많은 ‘적당히’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뛰고, 팔을 힘껏 흔들고, 목이 아플 만큼 노래를 따라 부르며.

       

      정돈된 일상에서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고 감정을 쏟아내는 동안, 잠시 평소의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경계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저 음악이 이끄는 대로 뛰고 외치며 지금 느끼는 감정에 온전히 몸을 맡기면 그뿐이었다. 그제야 사람들이 왜 이토록 큰 음악과 뜨거운 열기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소리쳐도 괜찮구나.

       

       

       

      현대인을 위한 응원가


       

      tempImager3MzRn.jpg

       

       

      크랙샷, 크라잉넛, 노브레인, 국카스텐, 자우림 등. 밴드마다 음악도, 그들이 지나온 시대도, 무대 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랐다. 그런데 여러 무대를 거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니, 서로 다른 음악 사이에서 묘하게 닮은 정서 하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삶이 언제나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직면하면서도, 그렇다고 그 자리에 계속 주저앉아 있지는 말자는 이야기였다. 다시 일어나자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때로는 남들이 정해놓은 답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번 살아보자고. 그렇게 가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거칠게만 들렸던 기타와 드럼 소리마저 어느 순간 누군가의 등을 힘껏 두드려주는 응원처럼 다가왔다.

       

      록은 세상이 언제나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찬가라기보다, 엉망인 순간에도 일단 다시 한번 일어나보자고 외치는 응원가였다. 그리고 그 외침은 무대 위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티스트가 먼저 노래하면 객석의 수천 명이 같은 노랫말로 화답했고, 혼자였다면 마음속으로 삼켰을 말도 그곳에서는 기꺼이 큰 소리로 외칠 수 있었다.

       

      서로의 이름도, 직업도, 이곳에 오기 전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도 알지 못했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면 저마다 다른 고민과 문제를 마주할 사람들이었을 테다. 그럼에도 노래가 흐르는 몇 분 동안만큼 모두가 같은 박자에 몸을 움직이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문장을 목청껏 외쳤다. 그 수많은 목소리 사이에 내 목소리까지 포개지는 순간, 이상하리만큼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우린 좋지 아니한가


       

      tempImage8g9ayp.jpg

       

       

      그제야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보아온 풍경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무대를 향해 높이 들어 올린 손도,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서로 부딪치던 사람들도, 목이 쉬도록 노래를 따라 부르던 목소리도 결국은 같은 마음을 향하고 있었다. 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살아가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보자는 마음.

       

      그날 난지한강공원에서 내가 만난 록은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잠시 한곳에 모여 서로의 목소리를 포개는 일이었다. 어른이 된 뒤로는 좀처럼 부를 일이 없었던 응원가가 이곳에서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누군가의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저마다의 삶을 계속 살아갈 우리 모두를 위해서.

       


      그래도 우린 좋지 아니한가

      바람에 흐를 세월 속에

      우리 같이 있지 않나

       

      이렇게 우린 웃기지 않는가

      울고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에

      우린 태어났으니깐

       

      - 크라잉넛, <좋지 아니한가> 中

       

       

      2026LRF_MAIN POSTER_FIN.jpg

       

       

       

      최수경 에디터.jpg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최수경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세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합니다

      최수경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Opinion] 행복을 처방하던 의사는 왜 배낭을 멨을까 - 꾸뻬씨의 행복여행 [영화]
      2. 02 [Project 당신] '인생 영화가 뭐예요?'에 대한 세상에서 가장 긴 답변 [자기소개]
      3. 03 [Opinion] 집은 떠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 서도호 개인전 [전시]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