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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만약 햄릿이 요가를 했더라면 [운동/건강]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 으억!

by 유예현 에디터
2026.08.17 19:45

한 달 전쯤, 요가를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동작을 시작할 때부터 든 불길한 예감을 무시하고 꿋꿋이 다리를 머리 뒤로 넘겼다. 이내 몸이 폴더폰처럼 접힌 기묘한 자세가 되었다. 허리가 바르르 신호를 보내오는 듯했지만 유일하게 한 번에 이 동작을 해낸 수강생이라는 자부심에 그 외침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사실 수강생은 나 포함 3명이었다).


다시 다리를 천천히 내려 폴더폰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는데 폴더폰의 조인트 부분이 고장 난 것 같았다. 허리가 붕 떠서 도무지 바닥에 닿지 않는 것이었다. 아, 이거 큰일 났네, 생각하는 중에 차분한 명상 음악이 귓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허리 대신 가오를 택한 대가일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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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일어나서 요가원을 나서니 통증이 잦아들었다. 누워 있을 때만 그랬던 건가보다, 움직이다 보면 나아지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허리의 시큰대는 감각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는 그날 알바를 하러 가야 했고, 당일에는 대직을 구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조금 두고 봐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버스를 타자마자 그 생각이 틀렸음을 온몸으로 증명해 버렸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험했던 기사님의 핸들링에 따라 버스는 양옆, 위아래로 거칠게 흔들렸고, 그때마다 나는 허리에 번개를 맞는 듯한 통증을 견뎌야 했다.


"끄윽. 으억! 으그윽…!"


내적 비명을 수십 번 삼키며 버스에서 내리니, 나는 165도 정도의 각도에서 영원히 멈춰 버린 폴더폰 꼴이 되었다. 허리를 제대로 펼 수도, 굽힐 수도 없는 상태. 하지만 여전히 약 5시간의 H라인 스커트와 살색 스타킹, 플랫 슈즈의 정갈한 외모와 친절이 요구되는 근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장 난 폴더폰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장시간의 근무를 마치자, ‘귀가’라는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앉느냐, 서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챗지피티는 허리가 나간 햄릿에게 번거롭지만 현명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앉느냐, 서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자세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 15분씩 자세를 바꾸어 가며 귀가하도록.”


몸이 불편해진 순간부터 나는 몸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저릿한 통증이 그곳에 내 척추가 있음을 매 순간 알려 줬으니.


만약 햄릿도 허리가 나갔더라면 뭐가 됐든 결정을 더 빨리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몸의 통증은 즉각적인 해결을 요하는지라, 그 목적을 중심으로 모든 행동이 재정렬되고, 고민의 시간은 단축된다. 그의 저서 ⟪햄릿과 돈키호테⟫에서 투르게네프는 햄릿과 돈키호테를 서로 대척되는 지점에 두고 햄릿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햄릿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먼저 분석과 진단과 자기중심과 그에 따른 불신이다.


(중략)


햄릿은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자신의 자아 역시 매몰차게 의심의 대상에 올린다. 그는 지나치게 사려가 깊고 공정한 나머지 자신의 내부에서 스스로 발견한 것에 만족할 수 없다. 자의식이 강하고 자신이 나약한 존재임을 알고 있는 햄릿은 자신의 힘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깨닫는다. 하지만 햄릿에게는 이런 자의식 자체가 일종의 힘이다. (43)

 

 

모든 싸움을 머릿속에서만 치르는 햄릿은 무언가에 몸으로 부딪쳐 본 적이 있을까?


투르게네프에 의하면 햄릿의 힘은 ‘불신’에서 나온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 자신 너머의 존재에 대한 불신, 그리고 삶에 대한 불신.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삶이라는 것이 햄릿에게는 얼마나 괴리감이 있는가.


그렇게 햄릿의 삶은 자꾸만 몸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햄릿은 보이지 않는 것, 느껴지지 않는 것을 맹렬히 쫓지만 제 몸을 움직여 그것과 부딪힐 힘은 없다. 하지만 햄릿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은 삶을 의심할 수 있지만, 몸은 삶을 살아내는 일을 좀처럼 유예하지 못한다.


앉을 것인지 서 있을 것인지 고민하다가도 허리가 찌릿하면 일단 자세를 바꾸게 된다. 생각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이 생각을 끌고 가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의심하는 햄릿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더 나은 사유가 아니라, 사유할 틈도 없이 자신을 현재에 붙들어 놓는 몸이었을지도 모른다.


허리가 나아진 뒤로, 나는 다시 꾸준히 요가를 하러 간다. 하늘을 숭배하듯 팔을 뻗어 보고, 햄스트링의 한계를 느끼며 몸을 접어 보고, 사방팔방으로 꺾고 비틀고 늘려 본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재밌었다고 말하니 선생님은 뭐가 그렇게 재밌었냐 되물으신다. 그러게. 나는 왜 몸을 혹사하는 것 같은 이 행위에 재미를 느끼는 걸까, 생각해 보니 성장을 멈춘 지 한참 된 줄 알았던 내 몸에 아직 배울 것이 남아 있어서 그랬나 보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에 소질이 없었던 나는 내 몸을 꽤 오랫동안 ‘운동을 못하는 몸’ 정도로만 알고 살았다. 공부를 못하면 공부를 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새로 배우면서도 몸에 대해서만큼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로 쉽게 결론을 내렸다. 덕분에 키가 다 자라고,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어서도 내 몸에 대한 정보는 업데이트된 지가 한참이었다.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야 유연한 것과 힘이 센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 내 팔은 생각보다 힘이 없고 다리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는 것, 종아리는 쉽게 뭉치고 굳는다는 것, 상체가 꽤나 경직돼있어 숨이 들어오는 정도가 굉장히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도 머리처럼 관찰하고 익히고, 새로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재미를 느낀 것은 이 뒤늦은 학습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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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햄릿이 요가를 했더라면, 그는 더 이상 햄릿이 아닌 채로 늙어 갔을 것이다. 투르게네프가 햄릿의 힘이라 부른 그 지독한 자의식도 몸을 배우는 동안 조금씩 힘을 잃었을 테니까. 몸과 생각의 속도가 서서히 맞춰져 생각이 너무 앞서 나갈 때면 몸이 제동을 걸어 주고, 숨이 들고 나는 제 흉통을 가만히 응시할 줄도, 세상의 문제가 많은 것만큼 제 몸에도 아주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생각의 무게에 못 이겨 깊숙이 파묻혀 있던 고개를 들어 바로 앉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햄릿이 요가를 했더라면. 요가복을 입은 약 서른 살의 덴마크인 아저씨를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모르겠다, 허리가 한 번쯤 나가 봐야 그 아저씨도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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