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은영의 책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삶과 관계, 상처가 담긴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목차마다 내게 남은 감정은 달랐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생각하는 즐거움을, 어떤 이야기에서는 소통의 필요성을 느꼈고, 또 어떤 이야기에서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마지막에는 죽음과 기억,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잠시 벗어나 바라보는 일까지 생각하게 됐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생각을 나눈다는 것
목차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으면서 나에게도 이런 교수가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와 제자가 함께 집에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서로에게 마음이 가고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는 관계처럼 느껴져 한편으로는 둘이 연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야기 속 수업처럼 하나의 주제를 두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수업도 생각났다. 이런 수업은 학생의 입장에서 즐거우면서도 불편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반론하고, 때로는 수긍하면서 내가 모르던 사실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선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상대를 얕잡아보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끼어들면 토론하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진다.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일이 좋다. 나와 다른 생각을 만나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고민하게 된다. 그런 과정이 나를 조금씩 성장하게 해준다. 평소 나는 하나의 문제를 순응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문제점을 굳이 꺼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 물꼬를 틀기 시작하면 궁금증은 계속 증식한다. 하나의 사건에 관해 온갖 감정이 들끓고,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빙빙 돌아간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깊숙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귀찮다는 이유로 심연을 들여다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편하다는 이유로 사고를 멈춘 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나면 오히려 개운하다. 뇌 운동을 한 것처럼 머리가 유연해지는 느낌이 든다. 물론 생각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한쪽으로만 생각이 치우치면 유연함 대신 편견이 생길 수도 있다. 생각이 굳지 않도록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는 결국 더 나은 것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나의 욕구다.
P.75
‘골똘히 한 생각을 써 내려간 글 속에서 당신은 당신 나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토록 나약해 보이는 당신 안에도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고 흔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글로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보이는 당신도,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라도 증명하고 싶었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일 년: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
목차 ‘일 년’에서는 외롭게 사무치는 고독감과 불안, 슬픈 감정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이 정말 서로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일인지 생각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적절한 추임새를 곁들여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속마음을 꺼낼 용기가 없는 것일까. 가슴 속에만 계속 담아두면 감정이 곯아버리거나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해 펑 하고 넘쳐버리지는 않을까.
나 역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 편안해질 때가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상대방에게 내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상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르기도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다 미간에 주름이 생기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며 가끔 생각한다.
나 자신이 뭐라고 이렇게 열심히 반응해주고 위로해 주는 걸까.
사람은 소통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일까.
나는 일방적으로 내 감정만 토로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도 없다.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배가 고픈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묻고 싶다. 사소한 질문과 대화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확인하며 살아간다.
우리 가족은 나를 제외하고서 자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고통과 슬픔을 꾹꾹 눌러 담고 참는다. 버티면서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같이 살다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진작 원하는 것을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싶어 원망할 때도 있다. 우리 가족이 좋으면서도 어떨 때는 서운하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면서도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는 선에서 재미있게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 서로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순간이 좋다. 소통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서로의 상태를 묻고 마음을 나누는 순간이 쌓이면서 관계도 조금씩 깊어지는 게 아닐까.
답신: 사람답게 살기 위한 분노
목차 ‘답신’을 읽을 때는 화가 났다. 어린 학생이었던 언니에게 부모님의 제대로 된 사랑과 보살핌이 있었다면 학교에서 만난 교사와 그런 관계를 맺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에서도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가 자신보다 어린 동생을 챙기기 위해 어른 행세를 했다. 정작 어른들은 무관심하게 방관했다. 그 결과가 한 사람의 삶을 망가뜨렸다.
그렇다면 그 교사만 없었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잘못만으로 끝낼 수 없는 문제다. 아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가정과 사회의 방관까지 함께 바라봐야 한다. 특히 아이에게 ‘창녀’, ‘천박하다’와 같은 말을 하는 어른의 모습에서는 분노가 치밀었다. 여성을 향한 성범죄와 성차별로 상처받고 죽는 사람들이 지금도 존재한다. 자기 생각이 왜 잘못되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했던 수많은 폭력과 차별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소설을 읽고 있는데도 이렇게 상세하게 한 여성의 삶과 상처가 가슴속에 스며드는 게 괴롭고 참담했다. 화가 나서 가슴속에서 용암이 들끓는 것 같았다.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으려는 여성들의 입장은 참으로 고독하고 참담하면서도 굳세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같은 여성이면서 너는 왜 그런 힘든 일을 굳이 나서서 하느냐고.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내가 안 하면 누가 하지?
나는 거창한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이다.
P.179
‘결국 찢어버릴 편지를 쓰는 마음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존재하는구나.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는 이 편지를 없애려 해.’
이모에게: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목차 ‘이모에게’를 읽으면서는 죽음과 기억에 관해 오래 생각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던 또 다른 사람까지 죽어야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완벽히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살인범은 한순간에 목격자를 죽여 없애지만, 시간은 아주 천천히 기억을 지워간다.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과 추억, 고통과 행복을 희미하게 만든다. 어쩌면 시간은 가장 느린 방식으로 기억의 목격자를 없애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누군가는 오히려 속이 후련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더 큰 공허함과 후회를 느낄 수도 있다. 미워했던 사람이 죽은 뒤에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 수 있다. 대체 죽음이 뭐라고 우리는 이렇게까지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걸까. 싸우고, 소리 지르고, 악을 쓰고, 짜증 내고, 경쟁하고, 때리고, 무시하고, 서로를 짓밟으면서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이 복잡할 때 나는 우주 사진을 본다. 납작하게 펼쳐진 시커먼 우주와 그 공간을 메우는 형형색색의 별들, 행성, 블랙홀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껴진다. 동시에 내 몸이 구석구석 잘 붙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마치 내가 지구를 떠안아 책임지고 있었던 것처럼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내가 사는 공간에서 잠시 벗어나 잠시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면, 그보다 훨씬 거대한 세계가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한다. 내가 짊어지고 있던 모든 것이 잠시 작아진다.
P.265
‘밤 비행을 할 때면, 검은 하늘을 날아가고 있을 때면 나는 종종 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이모를 느낀다. 이모의 시선은 조종실 너머에, 비행기 너머에, 밤하늘과 대기 너머에 있다. 희박한 공기와 낮은 온도, 여러 층을 올라가면 결국 사라지는 대기와 우주 공간의 시작. 내가 아는 하늘은 그런 것이지만, 그런 순간에 나는 문득 옛날 사람들의 믿음을 떠올린다. 환한 낮이 아니라 어두운 밤에만 지상에 닿는 저 너머의 눈빛이 있다는 믿음을 말이다.’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가는 일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으며 목차마다 다른 생각을 했다.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책을 덮고 나니 결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혼자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으며 다시 생각한다. 혼자 마음속에 담아두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한다. 상처받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 앞에서 잠시 고개를 들어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기도 한다.
나는 앞으로도 나와 다른 생각을 만나며 내 생각의 범위를 넓혀가려고 한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마음을 숨기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과 힘든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려 한다. 너무 완벽한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애쓰지 않고, 때로는 마음의 경계를 조금 낮춰 다른 사람과 편하게 마주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말과 기억, 표정과 행동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