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플라톤 '국가'를 읽고 이야기 나눌 것들 [도서]

글 입력 2023.06.1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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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를 향유하고 나서 토론한 이야기들의 기록

 

- 지혜로운 자는 무엇일까?

- 나의 모습은 어떤 배움의 형태를 지니는가?

- 내가 생각하는 이데아란 어디에 있는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향유하며, 지혜로운 자란 무엇인지, 나는 어떤 모습인지, 내가 생각하는 이데아란 어디에 있는지 정리해보았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선

무지(無知)의 지(知)와 무지(無知)의 무지(無知)


 

소크라테스는 선이라는 게 모든 것을 통괄하는 지식이라고 주장했다. 무지의 지는 선(통괄하는 지식)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무지의 무지는 선을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무지보다는 무지의 지가 낫다고 주장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가 현명하지 않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으며, 바로 이 한 가지 점에서는 역설적이게도 남들보다 더 현명하였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지혜와 관련하여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는 자가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을 통해서 보는 나의 모습



라파엘로 _ 아테네학당.jpg

 

 

대학교에서의 배움에 관한 자세와 생각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의 오른쪽 끝에 위치한 고대그리스 화가 아펠레스에 비유하여 이야기 할 수 있다. 아펠레스는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어떤 자의식을 느낄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전의 그리스 화가들은 예술가 라기보다는 기술자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르네상스에 이르러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다양한 지식들을 동원했고 이를 통해 신분상승을 이뤄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어떤 진리를 탐구하는 행위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현실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새롭게 규정한 아펠레스처럼, 나는 문화콘텐츠학과 학생으로서 세상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고 표현하기 위해서 개방적인 배움의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관점에 대해서는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세상에 던져야 할 이야기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는 도전을 하고 있다.

 

대학교에서의 배움이라는 것이 현재 내가 수강하고 있는 강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의 신분일 때 느낄 수 있는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하는 것들이 많아야, 세상에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대학교에 들어온 3년이라는 시간동안 새로운 자극과 대화를 쫓아왔었다. 적극적인 배움의 자세를 통해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할 것이며, 이 과정을 통해 자아를 느끼고 세상에 영향력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사점과 차이점


  

 

유사점은 두 철학자 모두 사물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플라톤이 감관(감각과 관찰)하는 것과 이성으로 인식하는 것은 다르며 후자는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은 본질은 현실 밖에 있으며, 인간 지각으로 경험할 수 없고, 순수 이성 즉 이데아라는 것 안에 본질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은 현실에 있으며, 중요한 것 즉 이데아는 현실 속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우선, 나는 감각과 관찰이 우선적으로 이뤄지고, 그것이 현실속에 존재한다는 의견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주의 사상에 동의하는 바이다. 물론 플라톤의 초월주의 사상과 같이 차가운 물을 만지고 난 후에 미지근한 물을 만지면 따뜻하게 느껴지고, 뜨거운 물을 만지고 난 후에 똑같은 온도의 미지근한 물을 만지면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많은 감각들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내가 인식하고 있는 것이 옳은것인지, 본질이라고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 인도인 동료가 명상을 영업하면서 ‘마음이 현재에 있어야 행복하다. 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후회하고 미래에 있으면 불안해한다’라고 말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말은 나에게 마음 즉 본질이 현실에 있어야 안정된 채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본질이 우리가 인지하는 현실에 없다면,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을 믿지 못하고 혼란을 겪은 채 모든 상황들을 이데아에 있다고 맡겨버리게 될 것이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을 무기 삼아 많은 것들을 회피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현실 속에 감각하고 관찰하는 것들을 본질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세상에 살아갈 에너지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 속 본인이 관찰하고 경험하는 것들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세상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하는 힘이 생긴다.

 

 



[박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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