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조각] 에세이를 좋아하기 시작하는 마음

일상 조각 여섯번째. 반과 반
글 입력 2024.04.2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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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는 마음


 

“좋아하는 작가 누구세요?”라는 질문에 언제나 나의 대답은 비슷했다.

 

“한강, 조해진, 박솔뫼 작가님 글을 좋아해요. 우다영, 한정현 작가님의 글도 자주 읽고요. 최근엔 누구였더라, 임선우 작가님 소설도 너무 좋았어요.”

 

이 대답을 들은 누군가는 이렇게까지 편독이 심하다니, 라고 놀랄 수도 있겠다. 언급한 분들은 전부 소설가이다. 현실을 기반으로 축조된 허구의 세계를 읽는 일, 이것이 독서의 즐거움이라 믿고 그 세계를 탐구하기를 즐겼다. 책장을 덮기 전까지 지금 내가 사는 세계와 비슷하기도 한 동시에 전혀 다르기도 한 세계에 흠뻑 빠지는 시간, 그 허구의 세계에서 느낀 점들을 다시 나의 세계로 가져와 실제 내 삶이 조금씩 바뀌는 과정이 쌓이는 시간을 좋아했다.

 

이러한 나의 지난 독서 이력을 생각하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편독이 심한가?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또 누군가 내게 “그럼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뭐예요?”라고 물으면 그때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목정원, 아침달) <아무튼, 클래식>(김호경, 코난북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황선우‧김혼비, 창비)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디플롯)… 이 외에 여러 책을 병렬독서 중이에요.”

 

나열한 책 제목에서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들은 전부 소설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에세이, 인문사회, 교양과학, 예술로 분류되는 각양각색 분야의 책들을 읽는 중이다. 한 권을 진득하게 다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것도 아니다. 어느 책의 몇 장을 읽었다가 덮고 또 다른 책의 일부를 읽는 요상한 독서법을 가진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중에서 읽고 있는 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에세이’ 분야였다.

 

누군가가 창조한 세계에 빠져 책장을 넘기는 대신, 누군가가 자기의 내면을 집요하게 응시한 시선, 주변 세계를 섬세하게 바라본 시선을 담긴 문장을 들여다보는 요즘이다.

 

이런 독서법을 추구하기 시작한 시기가 언제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확히 에세이 만드는 일을 내 업으로 삼기 시작한 이후다. 2022년 여름을 기점으로 나의 독서목록은 크게 소설에서 소설이 아닌 책으로 바뀌었다. 좋아하는 소설가의 출간 작품을 따라 읽고, 그들의 신간을 소장하고, 매년 나오는 소설 수상집(예를 들어 ‘젊은작가상’ ‘올해의 문제소설’ 등)의 목록을 유심히 살피던 시절은 어느 순간 막을 내렸다. 그 대신 에세이로 분류되는 이야기들을 주로 읽고, 서점에 가면 신간 혹은 인기 에세이 평대를 기웃거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소위 ‘기깔나게’ 쓰는 작가님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이 글을 쓰며 새삼 최근 아침마다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를 들어갈 때 한 번도 소설 카테고리를 먼저 눌러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러니 '막을 내렸다'는 표현은 너무 과장스러우면서도, 마냥 과장은 아니다).

 

어느덧 내 주위에 놓인 책들이 이삼 년 전과는 달라지고 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에세이, 좋아하세요?


 

평소 ‘에세이’라는 분야가 매력적이라 생각했지만, 스스로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마음이었다. 아마도 오랜 시간, 허구의 세계에 훨씬 더 마음을 쉽게 뺏기는 독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보다는 사회의 한 모퉁이에 서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조명하는 이야기에 더 시선을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현실 세계와 닮은 구석이 그다지 없어 상상의 여지가 풍부한 이야기 혹은 사회의 단면을 조명하는 책을 좋아했기에 에세이는 왠지 여기도 저기도 아닌 책이라고 쉽게 단정짓는 마음이 있기도 했다.

 

그러다 에세이의 세계에 흠뻑 발 담그게 해준 책을 만났다. 그 책은 한정원 작가님의 책, 『시와 산책』(시간의흐름)이다. 단어와 문장, 단락과 여백 사이, 한 사람의 삶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글에는 어떤 형용하기 어려운 (좋은) 냄새가 났다. 읽을 때마다 좋아지는 꼭지와 문장이 달라지지만 언제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두 문장이 있다.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 (…) ‘나’라는 장시(長詩)는 나조차도 미리 짐작할 수 없는 행들을 붙이며 느리게 지어진다.”

 

- 『시와 산책』 25쪽

 

 

“사람은 매일 오늘을 잃고, 영원을 얻지 못한다. 그 상실을 나만의 시어가 달래줄 것이다. 무언가를 희망할 용기가, 단 하루 솟아오르는 도시처럼 융기할 것이다.”

 

- 『시와 산책』 73쪽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냄새를 맡으며 발자취를 따라 걷는 일이 좋아졌다. 이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사람이라는 사실도 좋았다. 에세이는 어느 다른 분야의 책보다도 진한 '사람 냄새'가 난다. 자기 삶을 솔직하게, 날 것의 느낌으로, 낭만적으로, 뚜렷하게 응시하며, 어쩔 땐 과시적이거나 작위적인 느낌으로 남긴 각양각색의 글들은 그 사람이 평생의 삶 동안 다듬은 문체로 쓰인다.

 

그 문체를 따라 읽다 보면 누군가에게 듣고 싶던 말을 들으며 공감과 위로를 받거나 나와 비슷한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혹은 내가 여태 보지 못했던 세상의 이면을 알게 되거나, 단단한 내 마음의 벽을 부수는 강렬한 펀치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그 어느 다른 분야의 책들보다도 에세이는 이런 감정들에 다가가기 쉽다. 많은 독자들이 다른 분야의 책들보다 에세이를 쉽게 들춰보며 한 장 한 장 넘길 수 있는 이유는 여기서 생긴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에세이가 가진 사람 냄새에서 비롯된다. 에세이로 분류되는 책들은 어느 논문의 인용, 연구 결과, 신문 기사, 역사적 사실, 사전적 정의 등 딱딱한 사실의 세계와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 대신 자기 삶과 밀착된 사실을 기반으로 직접 보고 듣고 겪은 것을 통해 바라본 세계를 이야기한다. 그 솔직한 목소리가 전하는 울림은 에세이에 마음이 확 가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 이후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세계를 또렷하게 응시하고 치열하게 들여다본 삶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에세이를 ‘절반’ 정도는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와 산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은 것이 21년의 일이었고, 그 후로 사들이는 책들에 에세이가 책장과 책상의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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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년 기준 책상에 올라와 있는 책들

 

 

그렇게 예전보다는 에세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품은 채, 에세이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겨우 걸음을 뗀 수준이지만. 짧은 시간 동안 에세이와 다른 분야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피며 나는 에세이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어느 날에는 짧게 남긴 편집 일기에 이런 말을 남겼다.

 

 
“누군가의 삶을 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와 공감 혹은 그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는 에세이의 힘을 다시금 느꼈다.”
 

 

만든 책이 세상에 나가 독자에게 닿으면, 한동안은 독자 후기를 찾아본다. 에세이 책의 후기를 보면 저자가 자신의 삶을 착실하게 들여다본 글에서 자신의 삶을 빗대어 보고, 그것에 공감과 위로를 얻기도 하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힘과 조언을 찾아내기도 하는 것 같다. 내가 그간 다른 에세이를 읽고 그랬듯이 말이다.

 

 

 

에세이는 어디에 있을까


 

에세이를 만드는 사람이 되자, 에세이가 놓인 위치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에세이는 굉장히 오묘한(혹은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다. (요즘은 등단 여부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중요치 않지만) 소설, 시처럼 신춘 문예로 등단해서 어떤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분야도 아니고, ‘문학’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몇 년 전, 소위 에세이 붐이 일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에세이 시장은 꾸준히 커져 왔고, 지금은 수많은 에세이 신간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에세이를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한 가지 슬픈 점이 있다. 어느 분야의 책들도 비슷하겠지만, 에세이는 독자들에게서 더 빨리 잊힌다는 점이다.

 

그것은 에세이가 다른 분야에 비해 ‘지금, 여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이기도 할 것이고, 수많은 신간이 나오기에 자연스레 독자들도 새로 나온 재미있는 책을 따라가기 때문인 것도 있다. 특히 에세이는 대개 출간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책이면 알게 모르게 퇴물 취급을 받기 일쑤다. 책에 담긴 이야기가 영원히 독자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은 욕심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충분히 닿을 수 있는 독자들에게 닿기도 전에 미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건 안타깝다.

 

그럼에도. 에세이는 분명 접근성이 좋은 산문이다. 글을 쓰는 저자에게도, 읽는 독자에게도 말이다. 간혹 이런 접근성 측면에서 에세이에 선입견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내가 예전에 그랬듯이 말이다). 대표적으로 에세이는 진지하지 않다고, 가볍게 쓰인다는 편견이 있다. 당장 ‘지금’만을 다룬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에세이가 다른 분야의 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밀도를 가졌을 수는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만을 조명하는 측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에세이에 가지는 선입견, 이것은 에세이만 가질 수 있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2023년 대한민국 성인의 종합독서율(문화체육관광부 발표)은 43%로 집계되었다. 열 명의 성인 중 여섯 명의 성인이 일 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는 결과였다. 해가 갈수록 책 이외의 다양한 매체 사용, 그 외의 이유들로 책을 집어들지 않는 독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간단히 생각해봐도 기본 200쪽의 종이로 만들어져 묵직한 무게감을 가진 책을 가지고 다니거나, 스마트폰보다 큰 전자책 뷰어를 들고 다니는 일보다는 작고 가벼운 스마트폰으로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일이 무겁지도 않고,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우리는 '도파민 중독'의 위험을 이야기 하면서도 선뜻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을 실천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누군가는 '가볍다'는 이유로 멀리 하는 에세이가 오히려 지금의 예비 독자들에게는 더 매력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책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일단 책이 재미있는 콘텐츠를 가졌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에세이에 기대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 동시에 독자들이 에세이라는 분야에 왜 선입견을 품을 수밖에 없는지, 실제로 출판 시장에서 에세이가 독자의 시선으로 보기에 어떻게 비춰지는지, 에세이들은 독자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을 만큼 가치 있는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나오고 있는지를 분명 면밀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절반을 넘으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에세이가 아닌 다른 분야의 책만 읽던 나는, 이제는 에세이 근처에서 가장 많이 서성이는 독자가 되었다. 하나의 계기로 무언가를 좋아하기 시작한 작은 마음은 그 마음이 절반이 넘어가기 시작해야 겨우 ‘아, 내가 이걸 이렇게나 좋아하는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에세이를 좋아하는 마음 역시, 좋아하기 시작한 지 꽤 오래 지나서야 깨달았다.

 

또 무언가를 좋아하기 시작하고 마음이 커지면, 주변의 다른 것들도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에세이를 좋아하기 시작하고,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종국엔 사람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넓은 세계를 각자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의 문장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그 문장을 쓰는 주체인 사람과 그 사람의 시선이 닿아 있는 다른 사람의 모습에 나도 눈길을 주게 되었다.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기 시작하고 점차 스며들기 시작한 것처럼, 모두에게는 평생 좋아하게 되리라 예상치 못한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나이가 한 살 더 먹을수록, 개인이 가진 취향은 좁고 깊게 단단해지는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새로운 세계를 만나 좋아하는 마음을 품게 되는 일은 언제나 기껍다.

 

그러니, 예전의 나처럼 에세이에 편견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기꺼이 눈에 띄는(제목이나 표지, SNS 책 홍보 콘텐츠 속 카피 모두 좋다) 에세이 한 권을 펼쳐 그 속의 문장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그러다 자신의 마음과 맞닿는 문장을 만나게 될지도, 자신과 몹시 닮은 작가님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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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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