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시장에서 발견하는 예술의 가치 [미술/전시]

시각예술의 작품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느끼는 단상
글 입력 2023.12.2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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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Usplash, Kimi Lee

 

 

세상 대부분의 가치는 돈이라는 척도에서 자유롭지 않다. 실리나 합리보다는 낭만과 감각을 쫓는 예술도 별수없다. 예술 역시도 상품화되는 순간 그 성공의 바로미터는 흥행도가 되고, 흥행도는 매출에 비례하며, 이는 곧 돈이 입증한다. 그리고 여타 장르가 티켓파워나 판매부수 등에 의존할 때 미술은 그 이면의 산업구조를 짊어진다. 바로 미술시장이다.


미술시장은 원본의 작품을 물리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여타 예술시장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는 미술만의 차별화된 특장점이지만, 동시에 도무지 정답을 낼 수 없는 골칫거리를 낳기도 한다. 투명한 수적 논리를 따르는 자본주의의 시장 구조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예술 장르를 만났을 때 생겨나는 필연적인 결과다.


흔히 시각예술 장르의 아티스트를 설명할 때 마켓형 작가라던지, 전시만 하는 작가라던지 등의 수식어가 붙을 때가 있다. 이때 전자의 경우 유독 비판적인 어조로 거론된다. 말 그대로 잘 팔리는, 꼭 장식품처럼 상업성이 짙은 작품을 일컬을 때 사용되는 단어기 때문이다.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정체성은 내려놓고 얄팍한 그림만을 기계적으로 생산하는 이들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경우다.


이와는 얼핏 대조적으로, 후자의 표현은 그들의 작품성을 인정하는 표현 같다. 전시만으로 수익을 내기란 쉽지 않기에 생계보다는 예술 자체를 순수한 목적으로 삼는 이들, 결과값이 돈으로 환원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껏 표출하는 이들을 묘사하는 단어 같다. 하지만 이 표현 역시 결국엔 그들의 한계를 확정한다. 페어나 갤러리의 벽 위, 또는 경매장에서 마주치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형 설치나 미디어, 퍼포먼스 등 회화 여타의 매체를 시장 구조의 사각지대로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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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Unsplash, Yeonhee

 

 

이 현실에서, 미술 분야를 직접적인 소비보다는 간접적인 향유의 목적으로 지켜봤던 입장으로서 옹호하기 편했던 측은 언제나 후자였다. 예비 컬렉터와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미술의 현장을 지켜보려고 찾아갔던 장소는 페어장이나 경매장이 아닌 미술관이나 대안공간, 신생공간들이었다. 현실과 타협하는 미술보다야 자기 색깔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선구자적인 미술이 멋져 보였고, 그게 곧 예술의 정체성인 전위성이라 믿었으며 무한한 자유의지에 푹 빠진 미술이 진짜배기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확신으로 굳어지지는 못했다. 미술의 사전적 정의는 여전히 미적인 시각 표현의 일체를 가리키지만, 미술이 아우르는 범위는 과하게 거대했기 때문이다. 미적인 시각표현과는 거리가 먼 리서치 기반의 작업들부터 공중에 발산되고 흩어져 사라지는 행위예술, 또는 일회성의 인터랙티브 아트까지. 이들이 과연 예술이라는 외연에 포함될 수 있는 이유가 뭔지 회의감이 드는 건 상업적인 작품들을 봤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접근법이나 매체 사이의 우월을 가리려는 판단이 체질적인 취향을 앞서자 그 무엇에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과연 예술은 무엇이고, 우리 삶에 굳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원론적인 질문만 빙빙 맴돌 뿐이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이러한 생각들이 예술을 누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마음가짐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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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Unsplash, Jessica Pump

 

 

마침내 내가 합의한 결론은, 시각예술의 수많은 목적들 중 지금껏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것’ 이 한 가지를 내가 유독 과소평가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그야말로 예술의 본질에 가까웠는데도 말이다. 예술은 애초부터 우리 삶의 필수재가 아니었다. 순전한 유희와 본능을 쫓는 행위에서 시작해, 현실이 적시지 못하는 목마름을 해소하는 데까지 확장되며 그 갈래가 다양해졌을 뿐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같았다. 바로 애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 삶의 필수재가 아닌, 일종의 사치재에 가까운 작품에 금액을 지불하고 소유한다는 행위가 지니는 의미는 과소평가될 수 없었다. 책정가를 기꺼이 지불하거나 때로는 입찰을 거듭하며 적지 않은 금전과 작품을 맞바꾼다는 것 말이다. 누군가의 기쁨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그 작품의 존재가치는 납득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정답만 쫓아야 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정답 없음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예술뿐이다. 그곳에서마저도 취향의 우열을 가릴 이유는 없다.

 

물론 적지 않은 이들이 재테크의 요량으로 얄팍하게 접근한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작가의 예술세계를 소장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한 이들이 분명히 있다. 근 몇 년 사이의 과도한 투기와 버블, 수요에 비해 한정된 선택지, 작가의식을 밀어내는 과도한 상업화 등 미술시장을 좀먹는 병폐를 대신 꿰차야 하는 것은 본능을 좇아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존재다. 예술이 돈의 논리로부터 자유할 수는 없지만, 그 기저의 배경이 여타 산업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희망은 찾아볼 수 있다. 다른 그 무엇이 아닌, 바로 예술이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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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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