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역사적 유물에 불어넣은 생생한 봄의 생명 - 연극 '낮은 칼바람'

글 입력 2023.11.2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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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낮은 칼바람>은 살아있는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둔 이 작품은, 시간에 의해 벌려진 틈새에도 빛바래지 않고 관람객들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생동감은 배우와 대본의 디테일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해본다면, 각각 배우의 '재현성'과 그 기반이 되는 대본의 '캐릭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 외조부의 실제 이야기와 나카무라 신타로 사건을 바탕으로 완성한 것이라는 작품의 설명처럼, 이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당시 상황을 재현한다. 작품 자체의 '캐릭터'와 배우의 '재현성'은 개념적으로 구분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일단 배우들의 재현성에 초점을 두고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사실 텍스트 지향적인 성향의 관람객으로서, '좋은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대답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배우들이 재현하는 '현재의 공간'은 보통 대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정해진 배역의 틀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그들이 한 해석이 관람객에게 전달되는 것은-애당초 관람객이 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외현적인 면면뿐이기 때문이다-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게 내 평소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좋은 연기'란 텍스트를 충실히 전달하는 것이다. 발성과 움직임의 자연스러움, 캐릭터와 배우의 외모의 조화로움이 판단 근거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연극 <낮은 칼바람>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배우로서 표현한 <낮은 칼바람>의 생동감은 이러한 관점으로만 분석할 수 없다.

 

내가 이러한 판단을 하게 된 근거는, 교보문고에서 e-book으로 한번 출판된 바 있는 <낮은 칼바람>의 원 대본에 있다. 대본과 연극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순서를 잠깐 빼두고, 대본을 중심으로 보면 금석이나 부근 좀 더 강인한 인물로 표현된다. 포수는 좀 더 자비롭고 무딘 성격으로, 수염과 종수는 좀 더 알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사는 좀 더 이기적인 인물로, 중사는 좀 더 순진한 이상주의자로 표현된다.

 

이번 연극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변형이 이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무대 위에 등장한 캐릭터는 대본보다 더 다채로운 방식으로 표현된다. 복녀는 미워할 수 없는 사회성을 발달시킨 인물로, 금석이는 유약하지만 심지가 굳은 인물로, 포수는 냉혹하고 대화가 통하지 않지만, 그만큼이나 결벽에 가까운 순수성을 지닌 인물로 표현된다. 수염은 좀 더 경박하고 사기꾼 같은 인상으로 묘사되며, 종수는 인간적인 면모 뒤에 의뭉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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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사와 하사는 이 작품의 결말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크게 변형되었다. 중사는 따뜻한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유지하면서도 날카롭기 짝이 없는 현실적인 인식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사는 작품 초반부터 묘사되었던 대로 믿음직하지 못한,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인물로 묘사된다.

 

모든 캐릭터가 생동감 있지만, 작품의 주제를 뚫는 '타협할 수 있는 부분에서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변형된 중사 캐릭터와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할 수 없었던' 포수의 충돌, 어른들이 벌여놓은 전쟁판에서 한국 소를 돌보면서 포수의 순수함을 인지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글을 가르쳐 준 중사에게 깊은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금석의 변화는 그야말로 이 작품을 하나의 시대 너머의 차원까지 끌어올린다.

 

이러한 캐릭터의 변형뿐만 아니라 각 장면에서 대본의 범위를 벗어나는 배우들의 틈새에도 행동과 대사는 변형된 캐릭터를 더 살아있게 한다. 여러 장면에서 변형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지목해보라고 한다면, 하사가 총을 가져오는 시간을 끌기 위해 중사가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는 장면, 그것을 보고 자신에게 유일하게 따뜻한 온정과 자비를 보여준 것이 선생님임을 깨달은 금석이 중사를 풀어주는 장면을 꼽을 수 있겠다.

 

하나의 장면을 대표적으로 설명했지만, 이 작품의 수많은 장면에서 끊임없이 캐릭터의 입체적인 면모가 드러나면서 감정의 변형이 일어난다. 각 배우가 재현하는 그 장면에는 대본만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목소리, 행동, 눈빛의 교환에서 만들어지는 은근한 생동감이 있다. 이런 디테일들이 살아숨쉬는 수많은 장면이 모인 이 작품이 어떻게 살아있지 않을 수 있는가.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변형으로 대본에서는 술술 읽히던 부분이 잘 읽히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이는 필연적인데, 다소 단편적이었던 각 캐릭터가 생동감이 생기면서 더 예상할 수 없는 장면들이 연출되었기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포수는 대본보다 '일본군'의 흔적을 알아채고 대본보다 빠르고 가차 없이 아이들 외의 모든 인물을 포박하고 살해한다.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들의 표현은 다채로워진 만큼 그 의도를 읽기 힘들게 만들어 포수의 행동을 더 극단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여기에 작품의 대사들이 당시 시대상을 잘 재현하고 있어 쉽게 들리지 않는 대사들이 어우러지고, 대본에 없었던 장면들이 삽입되면서 작품이 덜 직관적인 형태로 전달된다. 하지만 이러한 변형은 분명 아주 환영할만한 것이다. 현실이 그것과 똑 닮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작품을 보는 내내 가상의 인물들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한 장소에 모아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한 인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이 작품의 틀이 단단히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고, 배우들이 그 이상으로 작품을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이 글의 서론에서 이야기했던 주제로 돌아가서 비유아자면, 배우들이 만들어낸 '재현성'은 대본의 '캐릭터'에 말도 안 되는 인간의 생동감을 입혀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투박하게 비유하자면, 피그말리온의 석상에 영혼을 불어넣은 아프로디테가 배우들의 역할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영혼을 넣기도 전에 대본 자체가 실제 사람과 구분되지 않은 틀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틀로써 제공된 이 작품이 끌어나가고자 하는 메시지는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매섭게 애는 추위가 가장 약한 사람들을 먼저 덮쳤고, 약한 사람들은 서로 지탱하기 위해 오두막집을 함께 세우기도 했지만 결국 서로 해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추위를 버텨내는 그 누구도 아주 어린 아이들만은, 늑대들과 포수들마저도 한국의 어린 소와 순수한 눈망울 가진 사슴은 죽이지 못했다. 왜냐면 그 어린 것들은, 한 소절만 아는 노래를 계속해서 입으로 굴리고, 그 누구보다 미세한 마음을 잘 포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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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작품에서 금석이 짐을 싸들고 겨울 밖으로 나간 마지막 장면이 가장 좋다. 비록 어머니의 땅, 한국의 땅을 짓밟고 이제는 북진을 위해 조사 나온 일본인 중사는 금석 이에게만은-더 상황이 나빠졌다면 그 역시 버렸을 것이겠지만-, 랭보의 시를 읽어준다. 늑대들이 차마 술 취한 아버지를 죽일 수는 있어도 어린 송아지를 죽이진 못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살아남는다.

 

그들이 살아남는 것은, 어른들의 자비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이 추위 속에서도 희망을 주는 존재기 때문이다. 중사가 가슴 한 속에 교과서를 들고 오게 하고, 조선 반도 자체에 환멸감을 느껴 떠나온 포수가 자신의 남은 재산을 맡길 만큼, 그들은 어리기 때문에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오두막에 남겨놓은 군빵을, 어른들은 하나의 증거로 포착하지만, 아이들은 그냥 먹는다. 첫 번째로는, 그들이 약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약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애정을 빠르게 포착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순수성은 고귀하지는 않지만, 삶을 그대로 살아있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이토록 차가운 날에, 수많은 전쟁과 분쟁으로 시끄러운 소식 속에서 나도 수사슴 하나를 상상했다. 수사슴은 저 바깥을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나는 그 녀석을 보면서 손에 만져지는 따뜻한 가죽과 고기를 상상하며 군침을 삼키면서 총을 쏘았는데, 왜 녀석은 죽지 않은 걸까? 어쩌면 나는 녀석의 가죽과 고기보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순수한 눈망울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을 더 원했던 건 아닐까? 그건 박제할 수도 먹을 수도 없으니 손에 움켜쥐면 죽고 말 것이다. 포수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녀석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에서 햇살을 받는 상상을 한다. 금석이와 부근이, 틀에서 온전히 벗어날 이제는 상상도 가지 않는 따뜻한 고향을 돌아가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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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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