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How about You (3)

글 입력 2024.04.2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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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카페에서 일한다. 게으른 사장과 무례한 손님들과 함께 하는 매일매일이 그녀는 지겹고 고달프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직업은 택배기사다. 그의 고객들은 불친절하고 왕처럼 대접받기를 원한다. 그는 이런 대우를 받는데 지쳤고, 성질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서 일하는 여자와 택배 트럭을 모는 남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만나게 된다.

 


2편에서 계속…

 

앞서 말했듯 촬영이란 현실을 마주하는 혹독한 과정이다.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담아 각본을 만들지만 상상력 속에서 축조된 세계는 현실과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시행착오는 늘 생긴다. 오늘은 바로 그 시행착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첫 촬영은 동아리 건물에서 진행되었다. 여자 주인공이 사는 빌라를 촬영하는 부분이었다. 사실 나는 작품의 주요 무대가 되는 여자 주인공의 집을 학교 근처에 있는 실제 빌라에서 촬영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팀원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일단 촬영을 진행할 정도로 충분한 크기의 복도를 보유한 빌라가 없었다. 또한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을 멀리서 롱 쇼트로 담아 이야기를 마무리하길 원했다. 그러기 위해선 편복도 형태의 빌리가 필요했으나 대부분의 빌라는 두 집이 마주 보는 중복도 형태였다. 주변 이웃들에게 소음 등의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실제 빌라가 아닌 동아리 건물에서 촬영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물론 각본을 쓴 나로서는 불만이 생겼다. 동아리 건물이 아무리 빌라와 비슷하게 생겼다 해도 실제 빌라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 건물은 계단이 건물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위치해 있었다(덕분에 전혀 빌라처럼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문앞에는 동아리 이름을 알리는 현판과 각종 물품들이 너저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허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장점도 분명히 있었다. 우선 학교 건물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양해를 구하기도 쉬웠고, 오랫동안 반복해서 촬영을 하기에도 부담이 적었다. 복도 크기도 제법 넓었다. 무엇보다도 건물 자체가 ‘ㄷ’자 형태다 보니 라스트씬의 롱 쇼트를 촬영하는 것이 가능했다(반대편에서 주인공들을 찍으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 빌라는 아니었지만 이야기 속의 현장을 충실하게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대안 장소였던 셈이다.

 

결국 우리는 동아리 건물에서 촬영을 진행하기로 했다. 대신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은 최대한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미리 양해를 구해 현판은 떼어냈고, 복도의 물품들은 한쪽으로 치워 두었다. 미처 치울 수 없는 곳은 엑스트라들을 급하게 섭외해 적재적소에 교묘하게 배치함으로써 화면에서 가려버렸다. 카메라 쇼트 역시 주인공들만 담길 수 있도록 최대한 타이트하게 당겼다. 건물 외관 등의 풍경 장면도 모두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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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예기치 못한 상황은 다음 촬영에서도 이어졌다. 2회차 촬영은 카페와 아파트 입구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카페는 부회장 누나가 이전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 미리 양해를 구해 섭외를 해놓았다. 카페 주인은 친절하게도 마침 오늘은 장사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며 우리에게 마음껏 공간을 사용하라며 인심 좋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는 사용료를 드리지 못하는 미안함과 그 못지않은 감사함을 담아 음료와 음식들을 주문했다(하다못해 매출이라도 올려드려야지). 그 사이 연출팀은 미리 그려놓은 콘티를 보며 카메라 위치를 계산하는 등 잠시 후 이어질 촬영을 준비했다. 잠시 후 여배우가 도착하자 우리는 두 번째 촬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촬영은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짧은 바늘이 마침내 ‘9’를 넘어가기 시작하자 몸이 급격하게 처지기 시작했다. 물론 마음은 그와 반대로 조급해졌다. 어쩌면 오늘 안에 계획한 분량을 모두 찍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1회차 촬영과 달리 2회차 촬영은 장소를 직접 섭외해서 진행했다. 섭외라는 것은 서로 간의 신뢰와 약속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돌발 상황에 대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돌발 상황이란 바로 ‘추가 촬영’이다. 안 그래도 부회장 누나는 충분히 사장님께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서라도 추가 촬영만큼은 반드시 없어야 했다.

 

그러나 조급한 우리의 마음과 달리 촬영은 사소한 곳에서 자꾸만 발목을 잡혔다. 무엇보다도 카메라를 옮기고 구도를 잡는 데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능숙한 감독들은, 특히 제한된 시간 속에서 서둘러 정해진 분량들을 소화해야 한다면 콘티 순서대로 장면을 찍기보다는 순서에 상관없이 한 위치에서 찍을 수 있는 장면들은 가급적 모두 찍고, 카메라의 위치를 옮긴다(반면 우리는 콘티 순서를 너무 정직하게 따랐다). 만약 살림이 넉넉하다면 여러 대의 카메라로 동시에 여러 구도에서 찍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영화 촬영이 처음이었던 당시의 오합지졸들에게 그런 노하우가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이러한 자잘한 변수들의 합은 우리의 촬영을 늦은 밤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

 

촬영은 결국 밤 10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3시간을 예상했던 촬영은 그의 두 배인 6시간 남짓 만에 겨우 마무리를 지을 수가 있었다. 그래도 추가 촬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위로라면 위로였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의 촬영은 끝이 아니었다. 아직 아파트 촬영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허나 촬영을 강행하기엔 배우들은 물론이고 스태프도 모두 지쳐 있었다. 막차시간이 신경 쓰이는 팀원들도 있었다. 결국 감독과 부회장 누나가 나서서 오늘 남은 분량은 다음에 찍자고 제안했다. 더 이상 촬영은 이어가기란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그 분량은 애석하게도 결국 촬영기간 내내 찍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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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촬영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변수들이 늘 존재한다. 갑작스런 비바람에 촬영이 엎어지는 것은 예삿일도 아니다. 촬영 시간은 언제나 모자라다. 애써 그린 콘티가 막상 카메라에 담았을 때 별로인 것처럼 느껴져서 새로운 구도를 짜내야 하는 일도 종종 있다. 배우나 로케이션이 펑크나는 일도 있다.


아무리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정교하게 시간 계산을 하고, 플랜A가 엎어지는 것에 대비해 수많은 대비책을 준비해도 우리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의 수들을 완벽하게 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현장에서는 눈앞에 펼쳐진 사태에 대해 즉흥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순발력과 결단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감독이 가져야 할 하나의 소양이기도 하다. 영화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감독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변수들이 항상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선물 같은 돌발 상황도 종종 있다. 가령 How about You를 찍으면서 다음 촬영을 위해 이동을 하던 우리는 택배 트럭 하나가 길가에 정차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덕분에 우리는 배달원에게 양해를 구해 그가 배달하는 사이 남자 주인공의 직업(택배 배달원)을 보여줄 수 있는 실감 나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이렇듯 가끔은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을 해결하면서 영화를 찍는 재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현장의 묘미를 만들어내고, 궁극적으로 영화가 가진 ‘즉흥적인 매력’이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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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완성본은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받아볼 수 있었다. 10분의 러닝타임이 지난 후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물론 지금 와서 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서툰 작품이다. 미처 찍지 못했던 분량도 있었고, 핸드헬드로 찍은 장면들은 너무 흔들려서 무엇을 찍은 건지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심지어 사운드 녹음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결국 사운드를 모두 날리고 배우들을 따로 불러 후시녹음을 진행해야 했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많은 애착이 담긴 작품이다. 우리는 모두 완벽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현장은 변수들로 가득하다. 덕분에 우리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 절망할 수 있다. 허나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진짜로 중요한 건 이 상황을 어떻게 넘기는가에 있다. 그리고 영화를 찍는 묘미도 바로 거기에 있다. 


진짜 영화는 현장에서 비로소 시작이 된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봐야만 좋은 감독이 될 수가 있다. 우리에게 들이닥친 이 느닷없는 상황을 어떤 임기응변과 재치로 유연하게 넘길 수 있는가. 좋은 감독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 혹은 성장을 결정하는 건 당신의 바로 그 선택에 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다. 우리를 낙담시켰던 그 일이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줄지도. 마치 내가 다음 촬영지로 이동하던 중에 우연히 택배트럭을 마주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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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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