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인터뷰를 하면 어떨까.
이름 모를 이들이 가득한 인터넷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이 글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당신은 우리의 운명일 수도 있다. 당신은 (아마도) 그녀를 모른다. 두근두근 상대를 알 수 없는 블라인드 데이트를 하는 기분으로,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의 가장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저는 무슨 일을 하는 누구인데요… 그런 부가적인 설명 없이, 아주 섣부르게 가까이 타인에게 다가가 볼까.

은진의 하루
안녕하세요. 오늘 인터뷰는 얼굴 모르는 독자들이 ‘박은진’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갈 수 있는, ‘초면이지만 아주 사적인’ 인터뷰가 될 것 같아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제 세계를 넓혀가는 삶을 지향하는 23살 박은진이라고 합니다. 제가 학생이다 보니 원래는 학교나 과를 함께 소개하고는 하는데, 오늘은 아주 사적인 인터뷰라고 하니 이렇게 저를 소개하고 싶었어요.
이런저런 수식어 없이 자신을 소개하는 게 오늘의 인터뷰에 딱 맞는 것 같네요. 인터뷰를 하는 지금 오후 4시 정도 됐잖아요. 오늘 하루는 무엇을 했나요?
요즘 싱가포르에 와서* 신기한 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된다는 거예요. 아침 6시-6시 반쯤에 눈을 뜰 때도 많아요. 오늘은 7시에 일어나서 기숙사 식당에서 카야 토스트를 만들어 먹었어요. 캐나다에서 온 친구랑 점심을 먹었는데, recess week** 때 한국 여행을 갈 예정이라고 해서 같이 여행 코스도 짜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이 인터뷰가 끝나면 같은 기숙사 하우스**에 살고 있는, 한국에서 온 다른 교환학생 분과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고요.
*은진은 싱가포르에서 교환학생 중이다.
** NUS가 실행하는, 학기 중 일주일간 수업이 없는 휴식 주간. 교환학생들은 춘절(Chinese new year) 연휴와 recess week를 맞아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은진이 생활하는 NUS(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의 기숙사는 House라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기숙사에 5개의 House가 있고, 각 House는 해리포터 기숙사처럼 상징 마스코트가 있다고. 은진이 생활하는 House는 독수리가 마스코트라고 한다.

나름 바쁜 하루네요. 그런 매일매일 중에서도 하루를 ‘은진답게’ 지탱하는 루틴이 있는지 궁금해요. 하루 습관 중에 ‘이것만은 꼭 한다!’라는 게 있다면요?
두 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학교 가기 전에 텀블러를 씻는 거예요. 여기는 식당마다 물이 다 유료여서 학교에 텀블러를 가져가 물을 받아 생활해요. 아침마다 텀블러를 씻으면서 ‘오늘도 화이팅 해야지!’하는 생각도 하고, 오늘 할 일을 떠올리기도 해요.
나머지 하나는 밤에 하는 산책이에요. 싱가포르가 지금 한국으로 치면 딱 5월 날씨라서, 낮에는 덥고 밤에 꽤 선선하거든요. 산책길을 따라서 걷다 보면 이곳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잘 느껴져요. 친구들이 잔디밭에서 춤을 추고, 프리스비*를 하고 있거나 잔디밭에 삼삼오오 앉아 있기도 하거든요. 전체적으로 무엇을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자유를 즐기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같아요.
*원반(디스크)을 던져 주고 받는 스포츠의 일종.
은진의 교환학생
‘은진의 하루’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지금 싱가포르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고 있는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교환학생으로 지낼 국가를 싱가포르로 정했던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어렸을 때부터 교환학생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어요. 하지만 교환학생이라는 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보니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다 싱가포르에 여행을 갔었는데, 여행이 끝날 때쯤에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싶어 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너무 좋았거든요. 여행의 한 코스로 배를 탔었는데, 그 배 위에서 “나 싱가포르로 교환학생 올 거야!”하고 외쳤어요. 지금 그 말이 현실이 된 셈이죠.
그런 순간이 있었다니, 영화 같은데요.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니 예전과는 다른 삶의 습관이나 마음가짐이 생겼을 것도 같아요.
맞아요. 두 가지 정도가 바뀐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제가 조금 더 친절해지고 상냥해졌다는 거예요. 이곳 사람들은 사소한 순간이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늘 친절을 베풀거든요. 도로의 자동차 운전자나 지나가는 모르는 행인일지라도요. 상냥한 친구들을 많이 만난 덕도 있어요. 제가 싱가포르 학기로 2학기에 오게 된 거라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은 이미 친해졌을 텐데, 새로운 얼굴인 제게 늘 반갑게 말을 걸어줘요. 그런 환경 안에서 있다 보니 그들의 영향을 받아 친절해지고 상냥해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점이에요. 학교에서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친구들과 가까워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먼저 수업 끝나고 밥 먹자고 연락하기도 하고, 다가가려고 노력하면서 친구를 사귀려고 하다 보니 점점 더 적극적으로 되어가는 것 같아요. 덕분에 평소에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요.
저에게는 한국에서의 은진이도 늘 웃는 얼굴로 먼저 다가와 주는 사람이었는데요. 그 이상으로 변할 수 있다니 놀라워요. 그럼, ‘싱가포르에서의 은진’과 ‘한국에서의 은진’에게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조금 더 쿨해진 것 같아요. (웃음)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인드가 강해졌다고 하나? 어제도 기숙사에 들어가려는 데 방 열쇠가 작동을 안 해서 방에 못 들어올 뻔했거든요. 사무실에 찾아가니까 점심시간이었어요. 예전이라면 방에 못 들어가는 것도, 사무실에서 영어로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것도 다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것 같은데, 어제는 ‘지금이 낮이어서 다행이다. 밤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넘길 수 있게 됐다는 게 달라진 점 같아요.
이것도 환경이 많은 영향을 준 걸까요?
여기가 ‘싱가포르여서’ 달라졌다기보다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서는 해보지 못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까, 거기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 거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렇군요. ‘교환학생 자아’ 같은 거네요. (웃음)

은진의 일기장
은진이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활짝 웃는 모습이 떠올라요. 예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재미있고 신나는 걸 찾는 게 습관”이라고 말한 적도 있잖아요. 요즘 은진이의 긍정 에너지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게 있나요?
일단 너무 좋아하는 나라에서 살아보는, 그런 흔치 않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영향을 되게 많이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항상 하나도 힘들지 않고, 행복하기만 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한 번쯤은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꿈꾸던 삶의 모습이 지금과 비슷한 것 같아서 그 사실이 되게 감사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싱가포르에 오게 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는데, 루틴이 생겼다는 게 꽤 긍정적인 영향을 줘요. 루틴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국에서는) 딱히 해본 적이 없었는데, 루틴이 있으니 하루가 예상 가능해지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찾아갈 수 있더라고요. 그게 요즘의 행복한 포인트 같아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안정감을 찾은 느낌이군요. ‘꿈꾸던 삶의 모습이 지금이랑 비슷하다’라고 했는데, 그렇게 거시적으로 지금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은진이의 긍정 에너지가 느껴지는 부분이네요. 그러면 반대로 은진이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생각도 있나요?
저는 예전부터 계획이 꼬이게 되면 일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거에 대한 두려움이 큰 편이었어요. 생각해 보면 그런 점이 저를 부정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여기서 만난 새로운 친구가 있거든요. 그 친구가 최근에 쿠알라룸푸르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가기 전부터 계획을 엄청 열심히 짜더라고요. 근데 여행을 다녀오더니 하는 말이, 계획대로 된 게 아무것도 없었대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엄청 속상하고 짜증 났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그 친구는 그게 또 좋은 경험이 됐다고 웃으면서 얘기하더라고요. 그런 게 되게 좋아 보였어요. 계획대로 흘러가면 너무 좋겠지만,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그렇게 되지 않는 건 사실 내 잘못이 아니기도 한데, 그걸 너무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멋진 사고방식을 가진 친구네요. 함께 있다 보면 그런 사고방식을 체화할 수도 있겠어요.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에요. 2026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났네요. tmi지만 저는 최근에 생일을 맞아서 1년 뒤의 저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는데요. 은진이가 1년 뒤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궁금해요.
최근에 많이 한 생각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거든요. 두세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요. 그래서 그게 무섭다기보다는, 그냥 1년 뒤의 나는 어떤 예상하지 못하는 모습이 되어 있을까 하는 기대가 돼요.
1년 뒤면 교환학생도 끝나있을 거고, 한국에 돌아온 지도 시간이 꽤 지나있을 거예요. 1년 뒤의 모습은 과거의 제가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진 모습이잖아요. 과거의 저에게 예의를 지킬 수 있도록, 미래의 저도 그걸 잘 이어받은 사람이 되어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응원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
마치 그녀에 대해 꽤 많은 걸 알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글을 우연히 읽게 된 당신이 길에서 그녀를 마주치더라도, 아는 척하며 인사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먼 땅의 타인이더라도, 질문 몇 개로 싱그러운 웃음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1년 뒤의 나에게 ‘예의를 지켜라!’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오늘과 내일을 버틸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당신은 (아마도) 그녀를 모른다. 이 인터뷰를 읽기 전까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