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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20개의 명화, 20개의 역사를 담고 있는 책이 도착했다.

   

오랜만에 읽는 비문학으로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표지 때문이다. 자신의 아들 황태자 이반을 죽이고 정신이 든 이반 4세의 크게 확장된 눈에 공포와 절망, 좌절과 죄책감이 담긴 일리야 레핀의 <이반 4세와 그의 아들, 1885>을 보고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보면 안 되는 것을 보는 것 같은 두려움과 현실에서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 시선을 옮길 한 사람의 충혈된 사백안을 볼 수 있는 상황이라 더 그 인물을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그림인데 마치 사진처럼 현실로 다가오는 이 역사의 현장을 더 알고 싶었기에 멈출 수 없이 책을 구했다. 이미지로 확인했던 것보다 책은 더 컸고, 각 목차의 주인이 되는 그림 외에도 역사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명화들이 높은 품질로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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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레핀, 이반 4세와 그의 아들, 1885, 캔버스에 유채, 199.5x254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오랜만에 읽는 양장본 책의 위엄에 받자마자 이반 4세의 역사를 읽어 나갔다. 그는 총명하며 대공인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패혈증으로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사망한 후 어머니까지 갑작스럽고 의심스럽게 사망한 후에 8살의 나이에 생존하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하고 힘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는 역사가 담긴 작품이었다.


작품만 해설했을 때는 황태자비를 폭행하여 아이가 유산되게 만들고 자기 아들 황태자를 때려죽인 미치광이 황제였으나, 이반의 삶의 역사를 들여다보았을 때 우리는 그의 삶을 안타깝게 여길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는 것만이 아니라,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살피며 한 인간의 선택에 집중하게 만든다. 단순히 한 사람을 편집증에 사로잡힌 미친 황제로 만드는 역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처럼 살아남기 위해 잔인함에 익숙해진 사람의 선택을 들여다보게 한다.


책을 읽어 나가며 왜 작가는 제목을 <위험한 그림들>이라고 지었을지 생각했다. 단지 각 그림이 누군가의 죽음, 참사, 전쟁, 세상을 바꿀 변화를 담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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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싱어 사전트, 개스드(독가스에 중독된 군인들), 1919, 캔버스에 유채, 231x611.1cm, 런던 제국 전쟁 박물관

 

 

일리야 레핀의 〈이반 4세와 그의 아들〉 이후로 눈길이 간 작품은 비교적 최근에 있던 역사를 담은 존 싱어 사전트의 〈가스전(독가스에 중독된 군인들)〉이다. 1919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가스에 중독된 병사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19세기 초까지 역사적 사건을 그린 역사화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의 모습을 그리는 등 영웅 서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처럼 전쟁은 많은 사람의 희생을 대가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고발하는 작품도 있다. 이 그림도 전쟁을 ‘영웅 서사’로 소비한 시선에 정면으로 균열을 낸다.


화면 속 병사들은 붕대를 눈에 감은 채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줄지어 걷고 있다.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앞사람의 몸뿐이다. 이 장면이 더욱 잔인한 이유는, 그들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던 동료들의 죽음에 슬퍼할 여유조차 없이 살아서 피를 흘리며 걷고 있다. 죽음보다 더 긴 고통이 남아 있는 상태,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될 상처의 시간을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 직면하게 된다.


제2차 벨기에 이프르 전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역사라는 큰 틀에서 보던 전쟁을 참전한 병사, 한 인간이 겪는 무책임한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서 겪는 고통을 그림을 보는 사람이 체험하게 한다. 이 작품을 보며 ‘국가’, ‘명예’, ‘승리’라는 단어들이 얼마나 쉽게 개인의 삶을 지워버리는지 생각한다. 지워진 자리에는 결국, 이름 없는 개인의 고통만이 남는다.


이 작품은 우리는 왜 전쟁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는지 스스로 묻고 답을 찾도록 한다. 이프르 전투를 비롯한 베르됭 전투, 솜강 전투 등 제1차 세계대전은 전쟁이 지속할수록 소모적이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것임을 확실히 알게 한 악몽 같은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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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외젠 르네프뵈, 갑옷을 입은 오를레앙 성의 잔 다르크, 1886~1890, 500x375cm, 캔버스에 유채, 팡테옹

 


쥘 외젠 르네프뵈의 <갑옷을 입은 오를레앙 성의 잔 다르크>는 평범한 한 인간이었던 잔 다르크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 기적’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를 담아낸다. 3년 동안 천사들이 찾아와 조국을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열여섯 나이에 그 부름에 순종한 그녀는 프랑스의 승리를 이끄는 상징이 되었다. 잉글랜드와 백년 전쟁을 하고 있던 프랑스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던 중에 잔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프랑스의 비협조적인 대처로 인해 잉글랜드에서 이단 재판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놓이게 되고 결국 화형대로 이끈다.


잔 다르크의 작품이고,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았지만 글을 모두 읽고 나니 잔 다르크의 승전보에 힘입어 왕조를 이을 수 있던 샤를 7세의 선택에 의문이 생겼다. 그 역시 또 다른 선택의 순간에 놓여 있었다. 잔 다르크가 잉글랜드군을 향해 진격한 덕분에 대관식을 치른 그는, 그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며 중요한 파리 공방전에 지원군을 제때 보내지 않는 결정을 내린다. 잔 다르크는 다음 전투에서 잉글랜드의 포로가 되고, 죽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갑옷을 입은 오를레앙 성의 잔 다르크>는 전형적인 역사화의 모습처럼 잔 다르크를 영웅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지 않는다면 그저 프랑스에서 활약한 위대한 전사로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이 담고 있는 것은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국가를 위해 바친 너무나 평범했던 한 인간의 선택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한 인물의 생명을 외면한 또 다른 인간의 선택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결국 이 작품은 묻는다. 조국을 구하라는 신의 계시가 찾아오고, 이단 재판에 넘겨지거나 왕이 되었지만 자신보다 국가의 사랑을 더 받는 존재가 있는, 자신의 자리가 또 위협받을 수 있는 극한의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하며 각자에게 놓인 상황에 현명한 답을 하는 것이 얼마나 지혜가 필요한 일인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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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파리 생라자르 역-기차 도착. 1877, 캔버스에 유채, 81.9x101cm, 포그 미술관

 

 

책을 모두 읽은 후에 비로소 <위험한 그림들>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선명해진다. 이 그림들이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죽음과 전쟁, 비극적인 사건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림은 사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현장에 있던 인간의 선택을 현재로 가져와 지금 우리 앞에 발생하는 것처럼 빠져들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림 속 인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들을 평가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사적 사건에 대해 알수록 선택 앞에 선 인물처럼 또 다른 ‘나’를 마주하게 된다. 이반 4세의 눈에서, 전쟁 속 부상 당한 병사들의 걸음에서, 잔 다르크와 샤를 7세의 극적인 선택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이 질문은 과거에서 끝나지 않는다.

 

1차 산업혁명의 시작점을 담아낸 클로드 모네의 <파리 생라자르 역-기차 도착>을 떠올리면, 마치 증기기관차의 발전처럼 기술이 먼저 도착하고 인간과 환경이 그 변화를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 지금 AI 기술을 마주한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증기기관이 생산 방식을 바꾸고, 철도가 세상의 속도를 바꾸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기회를 얻고 누군가는 자리를 잃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변화 역시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과거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인간의 모습이다. 시대와 기술은 달라졌지만, 선택 앞에 선 인간의 고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 그림들이 ‘위험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역사를 우리가 먼발치에서 평가할 수 있는 안전한 과거로 남겨두지 못하게 하고,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이입되어 삶의 선택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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