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을 여러 곳 다니다 보면, 같은 음악을 들어도 공간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공연을 사랑하고 이를 업으로 삼으면서 자연스럽게 ‘공연장’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궁금증도 커진다.
이런 질문에 답하듯, 도서 <콘서트홀×오케스트라>는 콘서트홀과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음악의 관계를 중심으로, 음향 설계의 비하인드부터 세계적인 건축가와의 협업 과정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저자는 음향 설계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 도요타 야스히사다. 그는 나가타 음향설계 로스앤젤레스 사무소 대표로 활동하며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필하모니 드 파리, 엘프 필하모니 등 약 30개 콘서트홀의 음향을 담당해 왔다. 현재는 후쿠야마 예술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지방 콘서트홀 활성화에도 힘쓰고 있다. 이 책은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콘서트홀을 둘러싼 기술·예술·사회적 맥락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오케스트라와 홀, 음향
우선 좋은 소리란 무엇일까. 음악을 오랜 시간 공부한 전문가들조차 이 질문의 답을 쉽게 정의할 수 없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의 음향과 앙상블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분명 존재한다.
책의 초반부는 오케스트라 연주자 사이의 거리와 홀의 음향으로 시작한다. 무대 위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연주 위치와 각 사이의 거리는 언뜻 보기에 특별한 의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연주 위치와 이들 사이의 거리는 오케스트라 앙상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흥미로운 점은,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너무 가까이 앉는 것’을 불편해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타 악기와 함께 간단한 합주를 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이러한 연주자들의 입장도 이해된다. 오케스트라는 결국 같은 무대에서 모두가 함께 연주해야만 하므로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의 소리가 옆 연주자의 것에 묻히는 등 다양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연주자 간 거리만큼 음향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홀의 구조다. 그중에서도 음향 반사판은 연주자향 음향 질을 조절할 수 있는 요소이다. 쉽게 말해 부분적으로 무대 위의 소리를 연주자에게 돌려주는 역할이다.
▲ Main hall of Suntory Hall, Photo by Nick-D. (Image via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특히 이 책에 언급된 산토리 홀과 도쿄 문화회관의 사례는 꽤 흥미롭다. 산토리 홀은 반야드 형태의 전문 콘서트 홀이지만, 당시 도쿄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는 이전부터 다목적 홀인 도쿄 문화회관에서 연주해 왔다. 그래서 초기 산토리 홀에서의 오케스트라 음향이 소리가 좋지 않다는 피드백을 들어온 바 있다. 연주자의 익숙함 역시 홀 내부의 구조만큼이나 소리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렇듯 콘서트 홀에서는 사소하게 보이는 요소들 마저 오케스트라의 소리와 앙상블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하나의 거대한 콘서트 홀을 설계하고 건축하는 일련의 과정에서는 어떤 요소도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이 책에는 저자 도요타가 프랭크 게리, 장 누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와 협업했던 에피소드를 실어, 이러한 유명 콘서트 홀을 만들기까지의 작업 기준과 방식 등을 실어 독자의 흥미를 끌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오케스트라
<콘서트홀×오케스트라>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콘서트홀과 오케스트라에 대한 고민도 담아 시대의 흐름과 현장성 사이에서 업계가 마주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진다. 이러한 확장적 논의는 음향 이론을 전달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오프라인 경험의 가치와 온라인 기술의 확장 사이에서 무엇을 지켜야 할지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구조적 관점에서 일본 오케스트라의 경우 한국에 비해 민간 자본이 전체 생태계를 지탱하고 있다. 특히 일본 오케스트라 연맹에 등록된 정회원 단체만 약 25개이며, 지역마다 자생력을 갖춘 오케스트라가 존재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서울과 수도권에 일류 단체가 집중되어 있고, 재정의 대부분을 국가 보조금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두 국가 모두 팬데믹 기간 중 비대면 공연의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그만큼 어려운 과제를 떠안은 상황임은 동일하다. 결국 앞으로는 고품질 영상 송출과 디지털 마케팅 비용, 오프라인의 감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디지털 수익 모델을 창출해야 하며, 데이터 기반의 정교한 관객 분석과 지역사회와의 정서적 유대를 통해 스스로 가치를 입증해야만 한다.
옛날에 레코드판이 CD가 됐을 때 아주 깨끗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어 이제 공연이 필요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말이 나왔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지요. 디지털 콘서트홀이 있는 스트리밍 시대가 되어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봅니다. 스트리밍 공연은 실제 공연과 나란히 존재하는 동시에 코로나가 사라진 후에도 남아 있을 겁니다. 제2, 제3의 코로나가 와도 오케스트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아닐까요?
- <콘서트홀 × 오케스트라>, p.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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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차별점은 형식과 시선에 있다. 도요타와 음악 저널리스트 하야시다 나오키의 대화체 구성, 그리고 사회적 관점에서 해설을 더한 우시오 히로에의 글이 어우러져, 전문적인 음향 이야기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음향 설계의 기초나 콘서트홀의 역사도 친절하게 풀어, 관련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도 진입 장벽이 낮다.
오케스트라와 콘서트홀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을 풀어낸 이 책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본질은 음악이다. 좋은 공간이나 뛰어난 지휘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음악’이며, 그 음악을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관건이다. 앞으로 공연장에 갈 때 콘서트홀의 형태와 구조, 오케스트라의 배치, 소리의 균형과 앙상블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 책의 독자라면 콘서트홀 안과 밖의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고 새롭게 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