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베토벤>이 3년 만에 돌아온다. 2023년 초연엔 <베토벤 시크릿>이란 제목으로 무대에 올랐지만, 재연엔 ‘시크릿’을 떼어냈다. 제목 변화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 재연 <베토벤>은 스토리·캐릭터·인물들 간의 관계성·넘버·무대·연출 등에서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며 관객을 다시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뮤지컬 <베토벤> 길 메머트 연출과의 라운드 인터뷰가 2026년 4월 9일 서울 강남구 빌딩 숨에서 진행됐다. 초연에도 작품을 연출했던 길 메머트는 3년간 한국 뮤지컬 시장과 한국 관객의 정서를 연구한 모든 것들을 작품 수정에 아낌없이 쏟았다 밝혔다. 한국인의 보편적 취향을 간과한 채 초연을 만들었다고 겸허하게 말문을 연 그는, 베토벤에 대한 존경과 새 역할에 도전하는 배우를 향한 감사를 표현했다. 또한 그는 <베토벤>은 단순한 재연이 아닌 혁신적 변화를 맞을 것이라며, ‘베토벤 2.0’으로 업그레이드될 작품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남자’의 이야기에서 위대한 ‘작곡가’의 여정으로
Q. <베토벤>이 3년 만에 관객을 다시 만납니다. 재연을 맞이한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2023년 초연을 만들며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초연 때보다 여러 상황에 익숙해졌습니다. 초연의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재연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Q. 초연의 <베토벤 시크릿>이 아닌, 재연은 <베토벤>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이상 비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모든 걸 다 알죠. (웃음) 초연 <베토벤 시크릿>에서 ‘시크릿’의 의미는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유럽의 베토벤 애호가들은 편지의 비밀을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한국 관객들은 실제 편지의 비밀보단 작품의 서사를 더 중요하게 본단 걸 깨닫고 시크릿, 즉 편지에 대한 것들은 재연에서 걷어냈습니다.
초연엔 베토벤을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로 만들었다면, 재연엔 ‘작곡가’ 베토벤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더 집중했습니다.
Q.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데요. 재연은 초연과 비교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합니다.
우선 안토니 캐릭터 및 안토니와 베토벤과의 관계성이 바뀌었습니다. 안토니가 불멸의 연인이었던 초연과 달리, 재연 안토니는 베토벤 음악 여정의 뮤즈로 등장합니다. 청력을 잃어가며 좌절하는 베토벤 곁에서 안토니가 여러 도움을 줄 것입니다.
또한 재연을 준비하며 베토벤의 내면을 어떻게 묘사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내면 갈등을 더 치밀하고 설득력 있게 전개할 예정입니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무대 세트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재론칭보다 더한 새로운 변화, ‘베토벤 2.0’입니다.
Q. 초연도 시즌1과 시즌2로 나눠지며 공연 중에도 많은 수정을 했습니다. 초연 땐 어떤 아쉬움이 있었을까요.
독일 작가(미하엘 쿤체)의 관점과 정서가 더 부각된 것이 초연이었습니다. 저 또한 독일인이다 보니, 유럽 정서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생각을 바꿔야 한단 걸 알게 된 지난 3년이었습니다.
Q. 한국 공연 및 한국 관객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베토벤>은 일본에서도 공연된 적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엔 공통된 정서가 있었습니다. 베토벤이 이미 결혼한 여성인 안토니를 좋아하는 건 양국 관객이 모두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을 한국 관객의 보편적 정서에 맞게 수정해야 한단 걸 깨달았습니다.
19세기 유럽 문학을 보면, 대부분 결혼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엔 사랑 없는 정략결혼이 많았으니까요. 그럼에도 초연 당시 결혼한 여성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에 대한 의견이 많이 나온 걸 보고, 한국 관객의 정서와 취향을 간과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안토니가 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자유를 찾는 맥락도 포함돼 있었는데 전달이 잘 안된 것 같습니다.
초연 첫 공연 날, 안토니 남편 프란츠와 변호사 피초크가 욕조에서 돈 파티를 벌이는 장면에서도 여러 의견이 쏟아진 걸 보고 반성했던 기억도 납니다. 아바(ABBA)의 유명한 노래인 ‘Money, Money, Money’와 같은 분위기를 주려고 했는데 이 또한 한국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재연엔 욕조가 안 나옵니다. (웃음)

베토벤의 우주와 르베이의 우주가 만나다
Q. 뮤지컬 넘버들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넘버도 많이 바뀔 예정입니다. 초연 넘버는 베토벤의 음악에 실베스터 르베이의 편곡이 들어갔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관객이 르베이의 오리지널 음악을 원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베토벤 음악의 우주와 르베이 음악의 우주를 하나의 음악적 우주로 구성한 것이 재연입니다. 즉 재연에서 베토벤과 르베이 음악의 비율은 거의 반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둘을 딱 잘라 나누지 말고, 하나의 흐름으로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재연을 준비하며 쉴러의 시를 바탕으로 9번 교향곡을 작곡하는 베토벤의 여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젊을 땐 분노로 살았지만, 말년엔 조화를 추구한 사람이었습니다. 재연은 베토벤 인생 막바지에 집중하며, 9번 교향곡을 만드는 과정을 클라이막스에 배치했습니다.
Q. 베토벤의 일부 음악은 한국에선 생활 친화적입니다. ‘엘리제를 위하여’처럼요. 그래서 초연 땐 몇몇 멜로디가 뮤지컬 넘버로선 와닿지 않는단 평도 많았습니다.
공항에서 짐을 찾는데 ‘엘리제를 위하여’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와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 또한 문화권마다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재연은 ‘엘리제를 위하여’ 멜로디를 활용한 넘버는 삭제될 예정입니다. (웃음)
박효신과 홍광호, 다른 색깔의 두 베토벤
Q. 재연이지만 거의 새로운 작품일 것 같습니다. 음악이나 연출 말고도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캐스팅에도 관여하셨나요?
새로운 배우들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시즌이 될 것입니다. 저도 캐스팅에 관여하긴 했지만, 제가 한국 배우들을 잘 알진 못하니 emk의 선택을 전적으로 믿고 맡겼습니다. emk가 새 도전에 어울릴만한 배우들을 캐스팅한 거라 믿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운 베토벤으로 합류한 홍광호의 <데스노트>를 인상 깊게 봤었는데, 그가 함께해줘서 기쁩니다. 홍광호는 유명하지만, 전 배우의 유명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홍광호와는 이제 연습을 하루 했을 뿐이지만(4월 9일 기준), 매우 기대가 됩니다. 뮤지컬을 만들고 연습하는 과정은 정글 탐험과 같은데, 홍광호와 함께라면 멋진 탐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박효신과 홍광호, 두 베토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두 사람은 정반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다릅니다. 연출로선 전혀 다른 두 에너지를 받아들이며 작품을 만드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박효신은 예술가로서 예민하고, 내면에 잠재된 힘이 아주 깊은 사람입니다. 홍광호는 그와 반대로 굉장히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여정으로 홍광호의 내면에 잠재된 연약함을 일깨우고 싶습니다.
Q. 캐스팅 발표와 함께 홍광호가 반년 동안 매일 4시간 이상 피아노 연주 연습을 했다는 게 알려졌는데요. 초연엔 상대적으로 베토벤의 지휘가 부각됐는데, 재연엔 베토벤의 연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초연의 피아노 연주는 핸드싱크였지만 이번엔 배우들이 직접 연주할 것입니다. 알려진 것처럼 홍광호는 오랫동안 피아노를 연습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영화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복싱 영화를 준비하며 복서 역할에 완벽히 몰입했던 것처럼, 홍광호 또한 이번 작업에 배우로서 모든 욕심과 열정을 쏟아붓고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베토벤과 모차르트, 두 천재 예술가의 삶
Q. 미하엘 쿤체가 만들고 흥행시킨 전작들(엘리자벳·레베카·모차르트)과 초연 베토벤의 결은 다릅니다. 베토벤이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요.
쿤체는 다른 것,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밥 딜런이 어쿠스틱 기타에서 일렉 기타로 전환한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요. 비교하자면, 베토벤은 모차르트와는 다른 방향성과 이야기로 전개하길 원했습니다.
모차르트는 기성세대와 갈등하는 젊은 예술가이지만, 베토벤은 모차르트에 비해 나이가 든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베토벤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없거나, 섹시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웃음) 예술가의 내면에 있는 걸 표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베토벤을 다룰 땐 모차르트와는 다른 새로운 표현법이 필요했습니다. 엘리자벳이나 레베카와도 다르게 가고 싶었고요.
뮤지컬은 베토벤 인생 세 시기 중 마지막을 다룹니다. 오페라에 가까웠던 초연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부족했던 게 사실입니다. 재연 땐 그런 부분을 보강하며 새롭고, 날 서고, 엣지있는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베토벤 음악으로 뮤지컬을 만든단 것 자체가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점이라 생각합니다.
Q. 재연은 음악가로서의 베토벤을 부각한다고 하셨는데요. 이 점에서 모차르트 뮤지컬이 연상될 수밖에 없는데, 둘의 구체적인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베토벤의 청력 상실은 자신의 의지로 맞이한 게 아니며,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모차르트는 태도나 과음 등 자신이 만든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반짝이는 재능과 엔터테이너적인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었죠. 베토벤은 목표 지향적이었으며, 음악을 다른 차원으로 만들며 룰을 도발했습니다. 9번 교향곡에 합창을 넣은 혁신가이기도 했고요. 당장 인정 못 받더라도, 미래를 생각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는 예술가가 베토벤이었습니다.
베토벤의 이러한 태도는 우리도 닮고 싶은 점입니다. 재연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쉬운 길을 걷는 건 도전이 아닙니다. 우리는 베토벤처럼 깊은 곳에 숨은 황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영원한 유산, 베토벤의 음악
Q. 여전히 전쟁이 일어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국에 연출가로서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요.
우리 작품은 음악을 창조했고 음악은 모든 예술을 대변합니다. 저 또한 모든 삶을 예술에 바쳤습니다. 예술을 식사에 비유한다면 메인 코스와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경제가 좋지 않을 땐 예술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술은 우리 삶의 정수이며, 석탄을 다이아몬드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베토벤의 음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진지한 투쟁과 음악은 인류의 유산입니다.
베토벤은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사람일 것입니다. 그가 남긴 유산인 음악은 번역이 필요 없는 만국 공통어입니다. 음악 덕에 독일 사람인 제가 이렇게 서울에 있는 것처럼요. 변하지 않는 예술의 가치를 작품으로 전달하고 싶습니다.
Q. 베토벤 재연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시나요?
스토리 전개의 속도감을 높이고, 대본은 영화 시나리오처럼 만들고, 더욱 버라이어티하게 에너지를 높여서 만들고 있습니다. 모두의 성공 의지가 대단합니다. 관객에게도 우리의 열기가 닿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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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초연은 공연 중에도 적극적으로 관객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작품을 수정했다. 길 메머트 연출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3년간의 치열한 고민 끝에 초연과는 다른 <베토벤>을 탄생시켰다. 룰을 도발하고, 혁신과 투쟁을 멈추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며 걸었던 베토벤처럼 새로운 <베토벤> 또한 새 역사를 써 내려갈 예정이다. 2026년 6월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베일에 싸여 있던 ‘베토벤 2.0’의 모습이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