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궁을 내 곳으로, 미로를 내 길로 [문화 전반]

각자의 미궁과 미로에서 벗어난 사람들, 영웅 테세우스와 메이즈러너의 주인공 토마스
글 입력 2024.04.2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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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속 영웅 테세우스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기 위해 그가 살고 있는 미궁에 들어가게 된다. 뛰어난 설계자 다이달로스가 만든,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 그 끝에서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당당히 미로를 빠져나온다. 영화 메이즈러너의 주인공 토마스는 미로 속에 갇히기 직전인 친구들을 두고 보지 못하고 문이 닫히기 전 그 안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그 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그리버가 돌아다니는 위험천만한 곳으로 미로에서 밤을 보내고 살아서 나간 사람은 없다. 하지만 토마스는 끝내 살아남아 동료들까지 구해 미로 밖으로 나온다.

 

미궁(迷宮)과 미로(迷路). 전자는 걷다 보면 안(중심)에 이르고 후자는 걷다 보면 바깥으로 향한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둘 다 그 안에 발을 디딘 사람을 헤매게(迷) 만들고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살면서 마주치는 헤맴도 마치 이들과 같다. 내가 들어와 있는 이 미궁인지 미로인지는 도대체 출구를 알 수가 없다. 게다가 그 끝이 영웅 이야기나 영화처럼 성공적일 가능성이 높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테세우스와 토마스는 미궁과 미로 안에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에 대해 아는 채로 들어간 반면 우리 인생에서는 그 안에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 모르는 것이 보통이다. 오로지 지금 살고 있는 내 삶만이 너무나 불투명하고 모호하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고 그 앞을 안다면 인생이 아니지만, 이 불확실성은 언제나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들어갈까 말까. 이 모험을 할까 말까. 어쩌다 들어가고 나서는 내가 여기 왜 들어왔을까. 나갈 수는 있을까. 마음 속에서 망설임과 두려움이 끝없이 반복된다. 

 

이럴 때 생각해야 할 게 있다. 미궁과 미로는 내가 들어가 볼까 망설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내 눈 앞에 보이게 된 것이라는 거다.

 

메이즈러너의 등장인물 갤리는 미로 속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미로를 넘어 바깥으로 나가려는 토마스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다. 토마스에게나 미로가 밖으로 이어지는 통로지, 갤리에게 미로는 벽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미궁이나 미로는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들어가려는 사람에게만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정복할 수 있는 사람도 바로 나다. 이걸 알게 되면 미(迷)는 더 이상 날 헷갈리게 하고 미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직 ~하지 못하다’는 뜻의 미(未)가 된다. 결국 미궁과 미로는 내가 아직 가 보지 못한 곳, 가보지 못한 길, 미개척지가 된다. 만일 기꺼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면, 그건 거대한 헤맴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붙잡은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 들어왔다 해도 여전히 근심은 남아 있다. 하지만 두렵고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오지 않아도 될 길을 기어코 선택한 나의 결단과, 내가 이 곳에 왜 들어왔는지에 대해 생각하면 두려움이 가신다.

 

아마 테세우스와 토마스는 각자 미궁과 미로에 들어가기 전, 똑같은 말을 들었을 것이다. ‘거기 들어가서 살아 나온 사람은 없다’고.

 

그러나 테세우스에게는 자기 나라 젊은이들이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희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테세우스는 그 강한 신념 덕분에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은 채 결국 괴물을 무찌를 수 있었다. 토마스는 죽더라도 차라리 미로에서 죽겠다는 결심이 있었을 만큼 자유를 원했고 또한 친구들을 구하고 싶어 했다. 그 마음이 무모할 만큼 용감한 추진력을 만들었고, 토마스는 친구들과 함께 미로의 출구를 발견하고 바깥 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테세우스와 토마스는 자기들 앞에 놓인 미궁과 미로를 정복했다. 스스로 헤매기를 택하고,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결코 잊지 않으려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가 두 사람에게서 닮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들어갔으면 돌아보지 말자. 그리고 이 곳에 내가 왜 스스로 발을 들였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테세우스와 토마스가 각자의 미궁과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던 이유도 그 마음가짐을 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헤맴을 망설이지 말자! 겁이 나도 기어이 헤매는 사람이 되자. 

 

내가 스스로 그 안에 발을 들이고 끝내 빠져나왔을 때, 헤맴의 ‘미’도, 아직 모름의 ‘미’도 모두 사라지고 오직 로(길)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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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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